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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Jul 20. 2024

아버지의 초상

영화 이야기

한때는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좋든 싫든 아침이 되면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아버지가 안돼 보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한다.
지극히 고전적인 마인드라고 지금은 말하지만 80년대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했고.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 세세함을 다 알 수 없는 나이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남자의 부양과 여자의 출산을 기본 바탕으로 깔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현실을 잊으려고 영화를 볼 때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에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사회적 이야기들..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의 영화 같은  프랑스 영화를 한편 봤다.
서양이 동양을 자기네들 시선으로 왜곡하듯 동양인인 나도 그저 먼 곳에서 보는 서양은 아름다운 풍광과 여유로운 생활들과  풍족함.. 그런 것들로 여겨왔다.
미제, 외제 이런 말들을 듣고 하던 세대였고 가까운 대만 영화를 봐도 80년대 버블시대에 그네들은 우리보다 일본이나 미국에 대한 환상이 더 컸던 것도 같다.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아버지의 초상(the measure of a man 2015)을 봤다.
남자는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하는데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실직 후 오랜 기간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 직원과 면담하는데 직업이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다.
돈이 급하니 아끼던 트레일러를 팔려고 내놨다가 값을 흥정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들이 아주 세세하다.
남자의 아들은 장애가 있지만 꿈이 있어 행복해 보였다.
아들과 아내와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따뜻해 보였다.
아들이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뒷받침을 해야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집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남자는 아직은 쉬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2년여의 구직 끝에 찾은 일자리는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이었다.
물건을 슬쩍하는 이들을 색출해서 보안실로 불러들인다.
훔친 물건값을 내면 봐주겠다고 딜을 한다. 

돈이 없다,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는 등의 훔친 자의 말은 무시된다.
마트직원들도 감시를 받는다.
쿠폰을 몰래 챙기거나 포인트적립을 마음대로 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감시하고 추궁하는 일에 회의를 느낀 남자는 가장으로서의 위치와 주어진 현실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논리가 흑백처럼 구분되던 때는 자본주의를 백의의 천사쯤으로 여겼을까? 그렇게 여기도록 세뇌되어 왔을까?
가진 자는 점점 부요해지고 부족한 자는 점점 더 부족해져 갈 거라는 예측을 못했을까?
팽배해져서 터지기 일보 직전인 지금에서야 문제를 자각하지만 힘 있는 자들은 모르는 척하고
힘없는 자들은 말 그대로 힘이 없다.
지난하고 지난할 투쟁의 앞길만이 놓여 있다.
인간이 한낱 부속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음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선진국 사람이어도 힘없고 가난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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