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빌려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언제든지 읽고 싶을 때 펼치면 되겠지.. 하는 여유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만든다.
읽고 있는 책이 그렇다고 재미가 없거나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내 성향 탓도 있다. 강제성이 없으면 한없이 늘어진다.
학창 시절 괴롭기 그지없었던 시험들 덕분에 졸업이 가능했다.
부모의 강압이 때로는 필요하다. 특히 무언가를 배울 때.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배우거나 공부를 하거나 어떤 기술을 배우거나.. 어리고 서툰 때에 방목하듯 마음대로 하라고 놔두거나,그야말로 방치를 하면(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이지만)
무언가를 오랜 시간 애를 써서 습득할 수 있을까?
아이의 기질에 따라 조절은 해야겠지만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있어야 성취도가 높아진다.
책을 빌려 읽으면 완독 하는 책이 더 빠르게 늘어간다. 그래서 이번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다 읽으면 또 빌려오려고 한다.
추석 전에는 꼭 읽고 싶은 걸 골라와야겠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작가는 남자다.
쓰는 이의 성별에 따라, 혹은 책 속의 화자나, 인칭에 따라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는 폭에 차이가 많이 난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써도 작가의 성별에 따라 그 이해의 폭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답답하다.
(어떤 책은 여우같이 이런 틈새를 잘 비껴간다. 그럼 또 그것 때문에 정이 떨어진다.)
뻔한? 클리셰라고 해야 하나? 왜 남자가 주인공일 땐 부잣집 여자를 동경하고 그녀를 사귀고... 그런 스토리가 많이 등장할까?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것일까?
모두가 동경하는 부잣집의 이쁜 여자를 주인공 남자가 만나게 되는데, 이것도 그 여자가 지목을 해서 만난다. 그리고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 자본주의적인 원칙인가?
예전에 봤던 드라마(베스트셀러극장) '한소년'에서 그 소년이 자신의 개똥철학 같은 논리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가난한 남자는 부자 여자를 만나야 하고 부자 남자는 가난한 여자를 만나야 다 같이 잘 사는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도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르는 것인가?
주인공이 부자면 가난한 사람을 만나고 그 반대이면 부자를 만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인가?
20대였을 때 남자들이 여자를 만나면서 가진 재산이나 집안 배경에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그 흔한? 사실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진 것이 없으면 기왕이면 많이 가진 상대를 만나야 이후 삶이 고단하지 않으니.. 그런 현실 감각을 가지지 못하면 힘든 것은 나 자신인데..
이런 것이 싫으면 차라리 혼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여성 작가가 그리는 남자도 아마 그럴 것이다.
디테일하게 복잡한 남자의 심경을 그려내는 여성 작가는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이런 것들을 다 감안하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말 천재적인 작가라면 성별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류를 아주 디테일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설명하고...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겠지.
하지만 소설에서 이런 완벽성? 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불완전한 인간성을 그대로 드러내야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불완전해서 또 무한한 것이 인간인지라...
거기에 푹 빠져서 책 읽기에 몰입할 수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