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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Sep 01. 2024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산 낙지 10마리를 흡입하듯 먹어치우는 장면이 롱테이크로 나와서 가끔 생각나는 베스트셀러극장 에피소드가 있다.


187회 '권투'에는 주요 인물이 세 사람 나온다.

사업 실패로 떠도는 남자(박인환), 아내에게 쫓겨난 남자(정진), 그리고 가출 소년.

우연히 만난 이 세 사람은 지낼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내기 장기나 내기 권투를 벌여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mbti로 따지자면 박인환은 e 성향이 강해서 뭘 하자고 잘 꼬시는 편이고, i 성향이 강한 정진과 소년은 마음의 허허로움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그의 말을 따른다. 그들이 함께 다니면서 펼쳐지는, 일종의 로드무비 같은 에피소드이다.

별 재미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소설을 영상화하면 느낌이 달라질 있는데(내용이 추가되거나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베스트셀러극장은 소설의 여운을 많이 느끼게 해 줬다.

그래서일까? 노을이 지거나, 해가 뜨기 시작하는 간이역의 모습, 밥값을 안 내고 도망치던 거리의 모습들, 다시 만나 반가워하던 역전의 모습 등.. 그런 것들의 잔상이 많이 남는다.


본향을(가족들이 있는 곳)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빚쟁이가 되어,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견디기 힘든 이유들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그들은 동가식서가숙 떠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다시 돌아간다. 못 이기는 척하거나 오해를 풀거나.. 하면서. 한순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늘 마음에는 고향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떠돌아다니면서도 웃지 못했다. 낙동강 오리알처럼 박인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도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한다.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이 곧 고향일 텐데, 그곳을 떠나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살면서도 본향을 그리워한다.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싫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뛰쳐나와도 한 번쯤은 꼭 가고 싶어 진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애잔해진다.

명절만 되면 마음부터 쓸쓸해지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정, 형편들..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런 허허로움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럴 필요가 뭐가 있으랴 싶기도 한데, 그것으로 단단히 마음을 다잡으면서 '명절'을 나름 즐겁게 보내면 된다.

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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