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 조선인, 즉 자이니치로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부산 영도의 어느 어부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훈이는 구개구순열에 다리가 성치 않았다.
지금은 수술로 갈라진 입술을 어렵지 않게 복원할 수 있지만 1910년 당시엔 힘들었을 것이다.
장애가 있었지만 훈이는 아버지를 닮아서 온화하고 책임감도 강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가난했지만 훈이 어머니의 야무진 살림솜씨로 집안에도 윤기가 흘렀다.
중매쟁이를 통해 딸부잣집 막내딸 양진을 소개받고 결혼을 한다.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는 훈이처럼 입술이 갈라졌는데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죽고 말았다.
둘째도 병으로 죽고, 셋째도 저 세상으로 금방 떠났다. 이후 태어난 딸, 선자가 유일한 자식이었다.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선자.. 그러다 아버지 훈이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와 함께 하숙을 치며 살아간다. 부모를 잃은 복희 덕희 자매도 함께 산다.
그러다 어느 날 시장에서 한수와 마주친다.
생선 중개상 노릇을 하던 한수와 식재료 구입을 위해 장을 보러 온 선자..
선자를 뚫어지게 한수가 먼저 봤다. 첫눈에 반한 것처럼.
거기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한수의 아이를 가진 선자는 그가 일본에 처와 자식이 있는 유부남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의 후처가 되어 달라는 청을 거절한다.
예전에 선자 아버지 훈이의 도움을 받은 적 있었던 요셉은 평양에서 오사카로 동생 이삭을 초대하게 되고..
그는 경유지로 부산 영도에 도착하여 양진과 선자가 있는 하숙집을 찾아오는데 폐결핵으로 한동안
요양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를 가진 선자의 사정을 알게 된다. 이삭은 자신의 아내가 되어
함께 오사카로 가자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한다.
오사카에는 이삭의 형 요셉과 그의 아내 경희가 있었다.
그들과 시작된 오사카에서의 삶... 기나긴 일본에서의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선자는 한수의 아이 노아를 낳고 이삭의 아이 모자수를 낳는다.
이후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삶이 계속 이어진다.
요셉이 이삭을 오사카로 불러들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형제가 함께 있음으로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덜 수 있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평양보다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삭이 옥중에서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났고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 생계를 위해 벌이가 더 나은 나가사키로 갔는데 원폭 피해로 중화상을 입게 된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는 내내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다. 선자와 경희가 벌이에 나서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밖에서 자신이 여자에게 의지하는 못난 남자로 비칠까 두려워했다.
한편으로 조카들에게는 아버지만큼 따뜻했다.
가정을 일구고 산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이야 많이 변화되어 둘이 함께 안팎으로 잘 일궈나가려는 마인드가 성립되어가고 있지만
가부장적이었던 옛 시대에는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출산과 육아, 살림을 도맡아서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경제적인 쪼들림은 곧 남자의 무능이 드러나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요셉은 자격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좋은 생각으로 이삭을 오사카로 데려온 것과 나가사키로 돈 벌러 간 것이 결과적으로 비극을 초래했으니...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파친코와 다를 것이 뭐가 있나? 싶었을 것이다.
그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화상을 입은 후엔 내내 병치레를 오래 하다가 세상을 떴다. 반전 없는 인생을 살다가 떠났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 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들은 지금 상황이 어떠하든 자주 머릿속을 맴도는 상념 중 하나이다.
사람의 일생은 자기 의지대로만 움직여지진 않는다. 의지대로 걷기 위해 애를 쓰고 위험 앞에서 몸을 사리고.. 그렇게 노력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알고는 있지만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샛길로 빠져서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게 불행이라 여겨지면 머릿속에서 만약 **하지 않았다면... 이런 가정들이 끊임없이 떠오르게 된다.
선자가 이삭을 따라서 오사카에 가지 않았다면 아들 노아가 죽지 않았을까? 만약 그때 한수 말대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그의 후처로 부산에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을지언정 아들은 잃지 않았을까? 유교 사상이 짙었던 당시에 선자는 뱃속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주겠다는 선량한 이삭의 말을 따랐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노아가 자신의 핏줄을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결말 앞에서 선자의 엄마 양진은 속으로만 삭였던 말들을, 죽음이 다가오니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네가 그 남자를 노아의 아버지가 되게 해서 그 애를 부끄럽게 했데이. 네 고생은 네가 자초한 기다. 그 불쌍한 아이는 나쁜 씨를 물려받았다. 이삭이랑 혼인했으니 네가 운이 좋았데이. 억수로 좋은 사람이었다 아이가. 모자수는(이삭의 아들) 더 좋은 핏줄을 받았다. 그래서 일이 아주 잘 되는 기다."
이 말에 선자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노인들은 말이 너무 많고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종종 듣기는 했지만 선자 어머니는 딸에게 말하고 싶은 구체적인 생각들을 쌓아놓았던 것 같았다. 어머니가 선자에게 물려주려고 한 인색한 유산 같았다. 선자는 어머니와 다툴 수 없었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니 노아때문에 속상하제. 내도 안다. 니는 노아 생각만 한다 아이가. 처음에는 고한수였고. 이제는 노아제. 니가 그 흉악한 남자를 원했던 바람에 고생하는 기다. 여자는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된데이."
"그러면 지가 달리 우째야 했는데예?"
"참 나쁜 사람이었다."
"엄마, 그 사람이 엄마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예. 그 사람이 엄마를 안 데리고 왔으면..." (6.25 전쟁 난리통에서 선자 엄마 양진을 오사카로 데려온 건 고한수였다.)
"그 사람이 내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는 맞아도 흉악한 사람이다. 그건 바뀌지 않는데이. 그 불쌍한 애한테는 가망이 없었다."
"노아한테 가망이 없었다면 왜 지가 고생했십니꺼? 왜 지가 애를 써야 했십니꺼? 지가 그리 모자랐다면 그리 용서받지 못한 실수를 했다면 그거는 엄마 잘못이겠네예? ...아니라예, 엄마 탓 안 할랍니더.."
양진이 중한 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두니 속으로 쌓아둔 말들이 가감 없이 나오는 부분이다.
모녀 사이엔 별의별 말들을 다 하면서 사는데 이 정도라면 양호한 것 아닌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여하튼 양진의 저 말들이 노아가 죽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까?
일제 강점기 시절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해방 이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이미 삶터가 되어버렸기에)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이 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북한에도, 남한에도 속하지 못한 나그네 설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자이니치들의 삶...
더 나은 삶을 꿈꿨지만 결국은 아버지에 이어 파친코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솔로몬. 삶은 그렇게 계속 이어질 거라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단순히 체념의 삶을 산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것들... 인생은 딱 떨어진 정답이 없다. 700여 페이지의 책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