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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훼 Feb 11. 2017

아버지와 아들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동영상 : http://tvpot.daum.net/v/seab7a5huYhauLJQ8B5sLuJ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인데 김상중은 당연히 으뜸인 연기력이고, 둘째 아들로 나오는 이로운이 여간 귀여운게 아닌지라 퍽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스토리도 재밌고 연기도 실감나는 와중에 김상중이 연기하는 아버지 역할이 내내 가슴에 남았습니다. 가족을 지켜내야 하고 먼 미래까지 생각하며 밥벌이를 해야하는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의 무게를 생각하니 저희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나기도 했습니다.   



이해를 돕고자 간단히 드라마 스토리를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김상중은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조참봉 집에 대대로 내려온 씨종 아모개입니다. 금옥이란 노비여인과 부부인데 첫째 아들이 열한살 길현이, 둘째 아들이 여덟살 길동이입니다. 첫째 길현이는 영특하고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쳐 주인댁 아들보다 글자를 더 잘 압니다. 동생을 살뜰히 보살피는 형이기도 하지요. 둘째 길동이는 해맑고 귀여운 아이인데 100년에 한번 조선에 나온다는 애기장수라고 힘이 쎄고 상처가 나도 빨리 나을 수 있는 아이지요. 노비이다 보니 주인내외와 아들로부터 억울한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지만 아모개의 가족은 지혜롭게 그리고 성실하게 잘 살아갑니다.



아이의 수준을 이해하는 대화

길동이가 힘이 장사이고 아직 어린 아이이다 보니 자신의 힘을 조절할 줄도 모르고, 때로는 자랑도 하고 싶어 불의를 보았을 때 참지 못하고 불쑥불쑥 나서게 됩니다. 그 시대에 노비와 같이 천하게 여겨지는 자들에게 애기장수 같이 특별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더욱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자기 힘을 감추며 조심히 살아가야 하지만 그러기에 어린 길동이는 아직 세상을 모르고 조절하기에 미숙할 뿐이었지요. 그런 길동이에게 아모개는 무작정 참으라고 강요하거나 윽박지르기보다 차근차근 아이에게 설명해줍니다.


링크 된 동영상이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재능을 감추라고 말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어린 길동이가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조곤조곤 말해주는 모습이 좋았고 길동이도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덕분에 차츰 자기 힘을 조절하려 노력하게 되었으니까요. 단순히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만이 좋아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거나 정말 안되는 행동을 했을 때는 설명할 겨를도 없이 단호하게 막고 훈육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아이이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조절하지 못하거나 통제하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길동이 아버지가 빛나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잘못하는 행동에 대해서 때로 꾸짖고 알려주더라도 미숙할 수밖에 없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화를 내지도 않는 것이지요. 때때로 부모님들은 “저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당연히 스스로 해야지.”라거나 “대체 왜 저렇게 안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어요.”라며 아이를 아이답게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동생이 있는 첫째 아이에게 더 기대를 거는 경우도 많구요. 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아이는 아이입니다. 어른도 때때로 조절이 안되는 감정이나 행동을 아이들은 더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믿음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 인상 깊은 장면은 길동이가 주인아들의 깐족거림에 못이겨 돌절구를 던져버리는데 그걸 보던 길동이 엄마는 주인아들을 지키려 몸을 날립니다. 그 덕에 큰 사고는 피했지만 주인아들은 얼굴에 작은 상처가 남았고 주인마님은 길동이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며 매질을 합니다. 억울하지만 이 사태를 보고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구하고자 길동이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을 따끔하게 혼내주겠다고 큰소리치며 산으로 올라갑니다. 힘조절을 못하는 어린 길동이의 손을 절구공이로 내려치려하지만 차마 그럴순 없어 눈물을 흘립니다. 길동이는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울기만 하며 손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있다가 아버지가 절구공이를 떨어뜨리자 품에 안겨 웁니다.   


한참을 둘이 부둥켜 안고 울다가 길동이를 등에 업고 내려오며 아버지가 묻습니다.

“어째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응겨.”

“아버지가 설마 나를 다치게 하겄소. 나는 손톱만치도 걱정 안했어라우.”

“허허 그런 놈이 울긴 왜 울어”

“그냥 슬퍼서 울었지라. 아부지 눈에 눈물 나니께 나도 괜히 슬프고 눈물이 안 나요”


아이는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참 단단해 보여서 보는 제 마음도 뭉클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 아버지가 해주는 말에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길동이었고, 아마 이 굳은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적금을 붓듯이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약속한 것은 지키는 일관성,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반응해 주는 민감성, 언제라도 뛰어가 안길 수 있는 편안함 등이 쌓여 아이는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묻고 배우게 되고, 권위가 바로 선 부모에게 순종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요즘 핸드폰 사용시간, 컴퓨터 사용시간, 숙제마치기, 친구들이랑 노는 시간 등등 아이와 규칙을 정하고 어기는 것을 수없이 반복하느라 씨름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어떤 집은 잘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떤 집은 부모님이 아이를 못이겨먹어 점차 아이맘대로 되기도 하고, 어떤 집은 부모님이 너무 단호하셔서 아이들이 원하는 걸 포기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잘 이루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강화와 보상의 원리 등도 있겠지만 잘 지켜지고 잘 유지되는 것에 대한 대전제는 부모와 자녀간의 믿음일 것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녀도 없을 것입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이해하고 채워가며 사는 것이 순리 일텐데요. 스쳐가는 드라마지만 저 또한 배울 점이 남아 쓰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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