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말고 자기 마음은 잘 보살피고 사느냐고 걱정해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고마운 사람들이고 고마운 질문이다. 그렇고 말고, 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진짜 상담가일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썩 잘해나가고 있지 못하다.
내담자 이야기를 듣다가 따라 우는 것은 기본이고. 저녁 내내 암담한 이야기만 듣다가 돌아오면 어쩐지 내 삶도 덩달아 아득해지는 날도 많다. 굽이치는 인생 역정에 집중하다 보면 밥을 거르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밥만 거르면 그나마 다행이다. 볼 일도 못 본체 붙잡혀 있는 날도 부지기수다(하루아침에 아버지께 버림받은 후 고아원에서 열두 명의 아이들과 한 이불을 덮게 된 여자의 사연을 듣다가 저기요, 잠깐만요, 하면서 자리를 뜬다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일인가 생각해 보라).
누군가의 이야기에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물론 그만큼 귀하고 신비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공감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상대의 눈빛과 숨소리에 신경을 곧추세우다 보면 상담이 끝나고 난 후에도 신경이 원래의 느긋한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이 다이얼만 돌리면 마음이 알아서 채널을 변경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런 날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보기도 하고, 슬리퍼를 끌고 가까운 공원을 어슬렁거려 보기도 한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본래대로 무디게 돌려놓으려는 것인데. 생각만큼 채널 변경이 쉽게 되지는 않다. 때로는 몇 날 며칠이 걸리기도 하고, 가끔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봐도 도무지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지 않는 탓이다.
알고 지내는 몇몇 상담가에게 그들만의 채널 변경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일이 끝나면 호숫가 벤치에 족히 한 시간은 멍하니 앉아 있는다는 사람, 골방에 처박혀 기타를 치고 나면 어느새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컵라면을 옆에 끼고 신간 만화를 읽다 보면 세상일이 절로 잊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단순한 그이의 신경 구조가 얼마나 탐이 났는지 모른다.
날 선 신경을 무디게 하는 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나로서는 자신만의 비법을 찾은 이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암담하건만, 나를 이 길로 접어들게 만드신 김 선생님은 차원이 다른 말씀으로 사람을 기겁하게 한다.
“선생님은 어떻게 기운을 충전하세요?”
“충전할 게 뭐 있나? 하루하루가 설레지 않아?”
“...”
사십 년 이 일을 해오신 베테랑은 확실히 다르다. 나 같은 하룻강아지는 감히 넘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남의 마음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돌보아야 진짜 상담가다. 마음 주파수 하나도 제대로 돌려놓지 못하는 한심한 상황이다 보니 초짜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아까울 정도지만. 인생이란 본디 안개 속을 걷듯이 더듬더듬 방법을 찾아 나가는 지루한 과정이라지 않나. 애초에 이 구역에 쭉 뻗은 대로는 없다. 내게 맞는 길을 찾아 더디게 걸어보는 수밖에.
P.S.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희소식 한 가지를 전한다. 얼마 전부터 가까스로 잠드는 법을 찾았다. 침대 위에 빈백을 올려놓고 눕지 않은 듯 누우면 잠이 오더라는 것! 잠만 잘 자도 인생은 꿀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