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 버리기

마음충전법 2탄

by 자화상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습관처럼 버릴 만한 물건을 찾는다. 시작은 늘 남편의 옷장부터다. 내 옷은 버릴 만큼 버려서 늘어진 티셔츠 하나 남은 게 없는데 남편은 다르다. 그는 옷을 사면 아까워서 바로 입지 못하고 얼마간 묵혔다 꺼내입는 꼽꼽쟁이다. 영영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옷도 막상 버리려고 현관에 내다 놓으면 나중에 작업복으로 쓰면 된다면서 옷장에 다시 쑤셔 박아 놓는다. 날마다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한테 작업복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인지 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남편의 옷장을 열었다. 여름 셔츠 다섯 벌이 새초롬하게 걸려있다. 손으로 주름을 펴 가며 팔을 넣어야 할 정도로 옷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애초에 다림질이 필요하지 않게끔 리넨이 섞인 옷으로만 고르는 나의 취향 덕택이다. 남편 마음이야 어떻든 나는 손이 덜 갈수록 더 만족한다. 이다지도 게을러서 자꾸 뭘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소유한 만큼 관리의 수고로움도 뒤따르는 법이니까 하는 소리다.

셔츠며 바지며 양말에 속옷까지 뒤졌는데도 오늘은 버릴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얼마 전, 여름 내내 걸어만 둔 셔츠 두 장을 내다 버렸더니 옷장이 가벼워진 탓인가 보았다. 남편 옷장은 이쯤하고 아들 방으로 건너가 보기로 했다.


아들의 장난감 상자는 버릴 것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폐기물 노다지다. 아들이 팔 년 동안 사고 모은 장난감을 그대로 두었다면 아마도 안방을 통째로 내주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틈만 나면 아들의 관심이 시들해진 장난감을 찾아 몰래 뒷구멍으로 버렸다. 덕분에 지금은 벤치 크기의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이 남은 전부다. 아들은 심심하면 장난감 상자를 통째로 뒤집어 놓고 놀 만한 것들을 찾는다. 그 속에서 손전등이나 돋보기 같은 것을 찾으면 기분이 금세 좋아져서는 이거 보라고, 자기가 어마어마한 것을 찾았다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면서. 처음 본 물건인 듯 애지중지하며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또 버릴 것을 찾아 나선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아들의 허락도 없이 참 많이도 내다 버렸지만, 여태껏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아들이 ‘엄마, 내 터닝메카드 어디 갔어?’하고 물으면 ‘글쎄, 엄마는 안 만졌는데 그게 어디 갔을까?’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럼 아들은 잠시 이상하다, 이상해, 하면서 터닝메카드를 찾아 집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침대 밑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요요를 찾게 된다. 그러면 아들은 원래 찾던 것이 그것이었다는 듯 또 한참을 재밌게 논다. 물건을 버린 게 들키지 않을까 잠시 긴장했던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늘 이런 식이었다. 크면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면서 난데없이 몇 년 전 누가 선물로 준 블루투스 마이크를 찾아 나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주던가. 티브이에서 어린애들이 나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을 보더니, 아들이 갑자기 자기 방으로 후다닥 달려가는 것이었다. 장난감 상자가 뒤집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조금 후, 아들이 비장한 얼굴로 다가와서 물었다,

“엄마, 마이크 어디 갔어?”

단 1%의 거짓도 없이 말하는데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뭐든 이 집에서 물건이 사라졌다면 내가 버렸다고 보는 게 옳다. 물건을 버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수집벽이 약간 있는 편이고 아들도 자기 물건이라면 아주 끔찍이 여긴다(곧 잊어버릴지언정). 고양이라도 핑계 삼고 싶었지만, 고양이가 마이크를 물고 가 혼자 노래를 불렀을 거라고 주장하다가는 여덟 살 아이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아이는 더 이상 세 살이 아니다.

“엄마가 안 버렸는데, 그게 어디 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끈기 있게 뭉그적거렸다. 그러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에 어서 티브이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게 안 된다면 아들이 마이크를 얼른 잊어버려 주기를 바랐고, 마지막 희망으로는 남편이 나서서 화제를 전환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티브이는 혼이 빠지도록 트로트 신동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아들은 어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마지막 믿었던 남편마저 지난번 자기가 아끼던 바지를 내가 덥석 내다 버린 것에 꿍해서 그랬는지 이참에 맛 좀 보라는 듯 실실 웃고만 있었다.

“엄마가 버린 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

연이은 거짓말 끝에 덜미가 잡히면 이런 기분이 들까. 아들의 의심 섞인 눈빛이 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끝까지 오기를 부렸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엄마가 그런 거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무슨 조홧속인지 그제야 오래전 마이크를 버리면서 스쳐갔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오르는 것이다. ‘아들이 다시 이걸 찾는 일은 없을 거야, 블루투스 마이크라지만 소리도 변변치 않잖아.’ 했던 것이.


실망도 잠시 아들은 뿅망치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는 걸까. 그러다 곧 ‘아니야. 아들이 마침내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지. 장난감 상자에서 뭘 빼내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는 않겠군.’ 하는 쪽으로 지혜가 모아졌다.


서랍장마다 가득한 살림살이들. 부엌 곁 창고에 쌓인 선풍기, 돗자리, 휴대용 의자, 비누와 치약, 명절에 받은 선물 세트, 일 년에 한 번 꺼내쓰는 간이식 풀장을 생각하면 명치께가 답답해져 온다. 따지고 보면 언젠가 요긴하게 쓸 물건이니 잘 두기는 두어야 할 텐데. 나는 오늘도 그것들이 다 사라지고 창고가 텅 비게 될 날을 그려보는 것이다.


P.S. 있던 물건을 정리하고 지중해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한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 글을 썼다. 제대로 된 독자라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맞을 텐데. 나는 죄다 내다 버리고 싶은 욕구가 먼저 치밀어 올랐다. 거실의 반을 채우던 4인용 가죽 소파를 치워버렸을 때 느꼈던 그 허허로움, 그 상쾌함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