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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Jun 21. 2021

연극 이야기 4_ 이홍도 자서전을 보고

퀴어함과 퀴어하지 않음의 사이에서

스토리 구성과 연출 방식, 조명과 음향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퀴어와 소수자 서사는 어느덧 한국 문학과 연극계에서 전형성을 획득한 범주가 되었다.

범주가 되었다는 것은 범주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고,

범주화 과정에서 퀴어와 소수자 서사는 일종의 규범성 내에 갇히게 되었을 것이다.

이 연극에서 말하는 그 규범성은 곧 ‘정치적 올바름’ 아니었을까.

정치적 올바름이란 규범은 퀴어 서사의 강점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퀴어 서사를 억압하는 하나의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의 사망, 그 사망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당사자성’ 에 대한 핍진한 재현이다.

당사자성도 마찬가지로 퀴어와 소수자 서사에서 하나의 권력이자 규범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자기 고백적, 흔히 말하는 Auto 적 방식으로 서술하고 표현하는 것은, 여타의 서사와 구분지을 수 없는, 쉽게 비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힘은 역설적으로 실제의 사람들, 실제의 존재들을 지우는 일일지도 모름을 연극은 말하는 듯 했다.


연출적인 측면도 충격적이었다.

텍스트로 남아있는 희곡을 왜 연극으로 공연화하는가,

일차원의 텍스트를 어떻게 다층적인 무대 공간으로 전환할 것인가,

전환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무대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일,

앉으면 의자가 되고, 발 딛고 서 있으면 단상이 되고, 굳건하게 서 있으면 벽이 되는 이 자유로운 상상들이 무대를 채우는 순간들이 내가 생각하는 연극의 존재 모먼트였다.

난 그 상상력이 부족해서 다층적인 공간과 경계를 모두 지워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극을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경계와 장벽이 무엇이었나, 생각했다.


배우의 액팅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음향과 조명.

그것은 조용하고 섬세하면서도 자기 존재를 매순간 명징하는 듯 했다. 명징하면서도, 일정한 경계를 넘지 않는 것, 그 경계를 넘지 않으며 역설적으로 모든 경계를 부수는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점은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아무튼, 여하튼, 하여튼,

좋은 연극을 보고 나니 구구절절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튀어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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