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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Dec 01. 2021

연극 이야기 10_ 술래

손을 잡아야해, 손과 손을 천으로 이어.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이랑의 환란의 세대라는 노래를 공연을 준비하며 참 열심히도 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잘못되어도 ‘콱 죽어버리면 되지’ 라고 말해주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건 용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죽어버리자고 소원을 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시 살아감이 될지도 모른다. 나에게 홀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옆에 있는 당신들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 그렇게 우리는 천국에서 지옥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에게 당신들은 용기였고, 자긍심이었고, 울음이었다. 그 복잡한 정동을 모아 모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사랑이었다.


결국 또 하고 싶은 말이 사랑이냐, 라고 물을 지 모르지만. 나는 사랑 빼고 이 극을 도저히 논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눈치 없이 끼어들기도 하며, 결국에는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것을 어떻게 사랑 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잘 듣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극장을 에워쌀 때, 확신으로 가득차는 일만 가능했던 것이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고 의외로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이 꼭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인 거 같아서, 그것을 드러내려면 너무 많은 것을 여기 저기에 보여줘야 했다. 나를 구성짓던 수많은 역사들을 써내고, 그것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를 또다시 나의 입으로 무대 위에서 말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사랑에 부풀었지만, 다시 말해 겁을 먹고 굳기도 하였다.


그니까 글로 드러낸 나의 퀴어함을 무대 위에서 대사로 읊는 것은 꽤 공포스러웠다. 글을 쓸 때는 몰랐지,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것은 막 적어낸 문장들을 꼭꼭 씹어 음운 단위로 분석하는 일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분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헤치고 헝클어 놓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어느 소설가의 기법을 문단은 ‘Auto’, 자전적 글쓰기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그 소설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글쓰기로 완성되는 사랑은, 다시 글쓰기가 되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이었다. 공포스러운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고, 그 감정들도 껴안은 채, 너와 나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목소리로 뱉어내고, 몸을 던지고, 울어버리는 일은 분명히도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시절이 사랑으로 가득 차버렸다. 졸음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연습을 가는 일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의 일부분들을 붙잡고 콱 스스로 쥐어 박았던 일도, 빛과 소리와 호흡하는 법을 익혔던 것도, 서른 명이 함께 존재했던 일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것들을 무대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도, 나에게는 전부 사랑이었다.


눈치없지만 사랑스러운(그렇다고 치자!) 강산에게,

흥준이 되어줘서 고맙고, 강산이 되어줘서 고마워,

너의 이야기가 다 나의 이야기라서, 그래서 강산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너에게, 잠시나마 너가 되어 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너와 나의 몸에 끊임없이 새겨질거야


공연 내내 규칙적인 울음을 보이게 한 계란찜같은 살구에게도, 마감된 희관에게도, 부끄럽지만 당신들은 나에게 크나큰 용기였음을.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함께할 수 있어서 참 많이 사랑했다고, 느낌표를 찍어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있어! 죽어버리자- ! 는 살아버리자- !!! 가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객석에서 구구 절절 지난한 사랑을 지켜봐준, 가장 사랑하는 은빛 물결에게,

축축하고 비릿한 사랑을 던진다!

죽지말고 오래오래 우리 같이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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