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똥남쓰, 30살인디

새로운 10년을 기념하며

by 김똥남

올해는 새해 첫날부터 추위가 살을 에는 듯이 유독 강했다. 찾아보니 평년보다 확실히 낮은 기온이라 내 엄살만은 아니었다. 나이 앞자리가 새롭게 바뀌는 해라 뭔가 하나는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평소보다 많이 추워진 덕에 그나마 지루하지만은 않은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작년까지는 한 해의 마지막날이면 가족이든 친구든 삼삼오오 모여서 TV 틀어두고 새해 카운팅을 들으며 새해를 맞곤 했는데 이번엔 이제는 입에 담기도 싫은, 볼드모트도 아니고, C씨 때문에 조용히 혼자 보냈다.


예전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힘들어서 잠시 술독에 빠져서 살았던 이후로는 마음 고쳐먹고 혼자선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하지만 2020년의 마지막날엔 뭔가 기분이 약간은 말랑해져서 야식으로 치킨 반마리와 맥주 한 병을 사왔다. 잠시 맥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의 대표 맥주인 카스나 맥스는 그 강한 탄산으로 맥주 본연의 무게감을 감춰 사실상 오줌과 다를게 없다고들 한다. 이미 그런 맥주들을 대체할 신생 브루어리들의 라거, 필스너, 에일 등이 시중에 많이들 나와있다지만 사실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맥주는 그 강한 탄산이 입속의 기름기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저씨 맥주다. 어쨌든, 기름진 KFC 치킨과 640ml짜리 카스 한 병으로 내 2020년의 마지막날을 축하(?)했다. 평소처럼 후딱 해치우기보다도 마지막날이니 여유롭게 한모금씩 홀짝대며 리모컨으로 연신 채널을 돌려가며 연말 시상식과 가요제를 봤다.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팅까지는 30분이 남았고, 빈 치킨 박스와 맥주잔을 치우고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억지로 새해 카운팅까지 기다리려고 잠시 베개를 세우고 벽에 기대앉은 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밖이 너무 추웠는데, 잠시 지인과 만나 간단히 저녁 먹으며 보냈던 그 짧은 시간조차도 나름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었나보다. 어쨌든, 카운팅도 보지 못한 채로 아침에 일어났다. 혼자 침대에서 눈뜨고 나면 20대였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30대 어른이 되어있길 기대했는데 바뀐 것 하나없이 평소의 나라서 당황스러웠다.


앞자리가 바뀌는 순간은 참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갈수록 좋은점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처음 앞자리가 바뀌던 열 살 무렵에는, 항상 나이가 많은게 대장이 되는 나이대이니, 나도 이제 조금씩 더 큰다는 생각 자체로도 마냥 좋기만 했다. 대학 입학을 목전에 뒀던 스무 살 때는 따스한 밥과 깨끗이 세탁된 옷들이 항상 준비된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는, 모든 것을 온전히 나 스스로 하며 살아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약간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처음 맞이할 성인이라는 자격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오히려 설렘이 컸다. 남중, 남고를 나오며 도무지 이성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여자친구도 사귀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감은 불안함을 압도했다.


30살을 기념하기엔 이만한게 없다.


반면, 그저께 처음으로 맞이한 서른이라는 나이는 좋은 감정보다도 진짜로 어른스럽게 행동해야할 것만 같은 생각에 부담감이 앞섰다. 주위 지인들이 서른이라는 나이를 먼저 맞이했을 때의 반응들이 먼저 생각났다. 크게 달라질 것 없이 그냥 나이만 하나 더 먹는 것일 뿐인데 뭐가 그리 유난이냐고 속으로는 혼자 비웃으며 겉으론 지인들의 우울함을 달래주곤 했었는데, 겉과 속이 달랐던 벌(?)을 받는건지 막상 내 나이의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고 나니 상상보다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좋은 점을 하나라도 찾아보려 해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서른부터라는 그런 근거도 없는 낭설 외에는.


아마 내일부터는 다들 2021년의 첫 출근을 할거다. 설레어 들떴던,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어색한 연말의 분위기도 끝났고 새해 첫출근 직전의 휴일도 이제 곧 끝난다. 내일부터 나이는 하나 더 먹어 30대의 작은 사회가 시작되겠지만 작년에도 그랬듯 변함없이 회사에선 친절한 김대리의 삶을, 가족에겐 아직 철없는 아들의 삶을, 누군가에겐 유쾌한 친구나 선후배의 삶을 살아갈거다. 그리고 당신들도 무탈히 내일도 그러길 바래본다. 올 1월은 중순까지는 계속 추위가 평년보다 강세일거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추워죽겠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오해의 눈초리로 약간은 더 서운할, 전에 없었던 슬픈 1월이다. 멋부리고 싶겠지만 코트보다는 패딩으로, 조금은 더 길고 도톰한 양말으로, 온기 빠져나갈 곳 없게 목도리로 꽁꽁 싸매고 2021년의 첫 출근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시작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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