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질 때, 비로소 가까워진다.

적당한 안전거리의 필요성

by 김똥남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든 공간에서 다른 객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기도 하고, 그리고 서로에게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감정도 있는 반면,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며, 종국에는 새로이 생겼던 감정이 증오로 바뀌며 관계가 종식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껍데기가 하나씩 생긴다. 그 껍데기는 새로운 사람에게 관심이나 호기심 자체를 갖게 하지 못하는 심리적 껍데기도 있고, 아예 나 자신을 바깥 세상과 단절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할 시간을 갖게 하는 물리적 껍데기도 있다. 그리고 보통 살아가면서 몇 겹의 껍데기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그 껍데기가 많이 쌓일수록 사람 간에 생기는 사소한 상처와 싸움들에 대해 점점 무뎌지게 된다.


하지만 무뎌진다고 해서 그 껍데기들을 믿고 막 행동해서는 안 된다. 무뎌진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슷해보이는 상처일지라도, 그 관계가 새로운 관계일 경우, 기존의 다른 관계에서 얻었던 상처와는 다른 별개의 상처가 또 하나 새겨지게 된다. 따라서, 유사한 상황에 대해 패턴이 머릿속에 새겨져 상처에 대응하는 것, 그리고 회복하는 것이 비교적 빨라지는 것일 뿐이지 아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관계도 방어운전이 필요하다.


내가 상처를 안준다고 해서 남에게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건 절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을 해도, 갑자기 뒤에서 달려와서 박으면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나듯이 혼자서 상처를 받은 것 같더라도 근원을 찾아보면 누군가의 행위에서 유발된다. 그러니 우리는 나로 하여금 생길 수 있는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미리 상처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접촉사고라도 최소화하기 위해선 미리 안전거리 확보를 해둬야 한다.


물론, 내 맘대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쉬웠다면 세상에 교통사고는 없을거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의 안전거리 확보가 힘든건 마찬가지다. 특히, 친구나 직장 관련된 지인보다도 우리는 연애감정을 느낄 때, 안전거리 확보를 잘 못한다. 이건 첫 연애 뿐만 아니 라, 몇 번의 연애를 거치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 담아둔 상대에게는 안전거리 확보가 힘든 것이 정상이다.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세상에는 너와 나, 우리 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에는 니가 들어간다. 나만의 향수 취향부터 음식 취향, 음악 취향, 그리고 영화 취향까지 모든 것에 니가 끼어든다. 내 스스로의 판단 기준과 오롯이 나 스스로를 위한 기준은 잠시 사라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직장인들의 평균 연애횟수 설문조사 결과가 약 4.3회로 집계되었다는 것을 보면, 그리고 대개 얼마 간의 연애 후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아쉽게도 연애 상대와의 즐거웠던 시간은 잠시뿐이고 대부분의 연애는 결국 헤어짐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생각만 해도,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좋았던 시간은 잠시뿐이고 결국엔 상대방에 대한 마음은 식는다. 좋았던 마음이 단지 식기만 할 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불운하게도 상대방에 대한 호감은 적대감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서로에 대한 감정의 크기만큼 지독한 후폭풍이 남는다.



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거리.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장소를 지날 때,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과 연관된 무엇이 기억날 때 우리는 지난 날에 대한 아쉬움, 미안함 등으로 점철된 후폭풍을 맞이한다. 내가 이별을 통보받았다면 남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그 사람에 대해 떠오를 모든 것들을 미리 없애야하고, 내가 이별을 고했다면 우연하게라도 그 사람의 잔재에 의해 떠오른 미안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통 분모가 적을 수록 좋다. 즉, 우리는 모든 생활에서 연인과의 공통분모를 두지 않는다면 조금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온전한 나의 삶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준비해나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우연을 피하기 위해, 나 혼자만의 공간, 내 집을 보호하게 됐다. 치우고 버려도 끊임없이 하나씩 툭툭 튀어나오는 흔적 하나하나가 무뎌진 후에도 나를 콕콕 찌르는 바늘이 됐었고, 휴식장소가 되어야 할 장소가 이별 후에는 좋았던 기억과 공허한 현실이 공존하며 괴롭게하는 장소가 됐었다. 결국 일 때문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며 대대적인 짐정리를 한 후에야 후폭풍에서 자유롭게 됐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내 집을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증폭시키는 곳이 아니라 내 감정을 안정화시키며 온전히 나만을 위한 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이는 연애가 아닌,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내 개인적인 공간이 침해될 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가족과 함께 하는 집에서 내 방의 자율성이 침해되었을 때의 적대감, 내 자취방이 친구들에 의해 아지트가 되어 자율성이 침해되었을 때의 적대감 등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최소한의 정서적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위한 최소 단위의 공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내 마음에 있는 사람을 아예 내 공간으로 들이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집이라는 장소가 결국에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는 만큼, 연인과 나의 공통분모가 되었을 때는 나중에 헤어졌을 때 의도치 않게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많은 추억을 맞닥뜨리고, 후폭풍 안에서 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방문에 대해서도 내 자율성이 침해될 때 내 공간은 괴로움을 낳는 장소로 변한다. 최소한 내 작은 방 한 칸만큼은 나의 내일을 위해 스스로를 아무의 방해도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두자. 이는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안전거리 확보가 되어 사소한 접촉사고부터 큰 교통사고까지 인간관계의 끝을 조금 더 멀리하게 도움을 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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