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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May 06. 2020

01. 흔흔(欣欣)한 유방암 생활

꼭 슬프지만은 않아. 피하지 못했으니 즐겨볼까!

 2020년 5월 5일 아만자가 된 지 98일째. 드라마에서나 보던 암 선고는 약 100일동안 '나'와 주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병원 나이 31세, 올해로 33세 미혼 여성에게 특히나 유방암이라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수백 번 타고 난 후에야 비로소 현재는 초연해진 상태+괴짜의 기질로 암을 즐기는 상황(?)이다. 상상하지도 못한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추가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삶을 귀히 여기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1. 암 네 덕에 쫌 고맙다(?)


 암이란 이 녀석을 너무 증오하면서도 그래 암 네 덕에..라며 다행인 부분도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내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흔흔하다"라고 할 수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않아서 긍정적이려고 무던히 노력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끙끙 속앓이하던 성격은 감정 표현의 자유를 얻었고, "난 괜찮지 않아!" 당당히 말하는 용기를 얻었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다.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는데...밉지만 요부분들은 고맙다고 말해줘야 할 것 같다.




#2. 다양한 헤어스타일 해보기


 초진 조직 검사는 0기 암이라 칭하는 상피내암이었다. 아만자가 된 후 더  뼈저리게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

 당.연.히. 부분절제 일줄 알았던 수술은 BRCA 1 유전자 변이 당첨으로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케이스) 양측 전절제 및 동시 복원 수술로 범위가 확대되었고, 수술 후 침윤암으로 바뀐 암타입은 항암의 길로 나를 안내했다.


< 앞머리 → 숏컷 → 1/3 삭발< 앞머리 → 숏컷 → 1/3 삭발 → 완삭 > 순으로 짧아진 머리



나에게 약 4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수술 후 2주 뒤로 표준 항암 치료가 예정되었고, 항암 시작 후 2주뒤면 골룸의 길은 피할 수 없다. 숭덩숭덩 머리가 빠지면 적잖은 충격과 공포로 멘탈이 무너질 것 같아 빠지기 전에 미리 삭발을 하기로 했는데, 정확히 삭발 다음날 부터 머리의 잔디들이 뽑히기 시작했다.


평생 나에겐 없을 것 같던 헤어스크래치와 삭발로 일주일간 걸크의 매력을 한껏 발산할 수 있었다.



삭발 다음날 부터 골룸화되어 하지 못한 맨 왼쪽 머리





#3. 인생 화보 찍어보기


 프로필 사진찍기는 이전에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 였는데, "복근만들고 프로필찍기" 였었다. 쩔친이 되어버린 뱃살덕분에 불가능할 것 같던 기존 버킷리스트는 미루고 "삭발 프로필사진찍기" 가 추가되었다.

 항암 직전, 개동생 방울이의 슬개골 탈구 악화로 동시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함께 아픈 것도 기념인데(?) 사진 한번 찍자" 생각이 들자마자 끝내주는 추진력으로 삭발 후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우리 이제 아프지말고 건강해지자




#4. 가발 부자

 머리카락의 중요성은 삭발 직 후 알게되었다. 아무리 얇은 모자나 짧은 가발을 써도 무조건 더웠다. 항암 부작용으로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유도 있지만, 머리 카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렇게나 시원했던 것이라니..!

 탈모가 시작되고 이틀간은 울적한 마음이 사그러들지 않았다. 으쌰으쌰 이겨내보자하고 구매한 비싼 첫 항암가발은 어떻게 써도 "나 가발이에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듯 했다. 분명 샵에서는 예뻤던 가발이 시골 5일장에나 어울릴 것만 같은 스타일과 어색하기 짝이 없는 두상 라인을 만들어내며, 곰팡이 핀듯이 남은 머리카락들을 조롱하는 듯 했다.

 외출만 하면 자연스레 가발브랜드 쇼룸으로 향했다. 항암을 하게 되면 병원비 외에 이런 부수적인 비용들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평생 못해본 금전 FLEX 를 항암으로 하는 것 같다.

 이 가발 저 가발 써보고 비교해보니 꼭 비싼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제일 비싼 가발은 쓰고 나가지도 않았다. 5일장 여행갈때 쓰게 되지않을까..

 그리고 생각보다 인조모의 퀄리티가 정말 좋아서 인모보다 나은 것이 더 많다. 중고로 산 모자가발과 가장 저렴한 가발이 제일 많이 쓰는 아이템.

 현재 가발은 7개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가발 2개가 해외에서, 국내에서 각각 오고있는 중이다. 이 기회에 내 생에 가장 젊은 날 못해본 금발이며 은발이며 가발로 한번 해보는 거지! 라며 탈모의 서러움을 가발로 풀고있긴 하다. 비싼 것 대신 다양한 스타일로 항암 중에 가발 재미를 맘껏 누려보려고 한다.



 슬프게도 아무것도 쓰지않은 완전 삭발상태가 가장 편하고 시원해서 비니만 쓰는 날이 더 많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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