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깡 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단톡 방에 올려진 유튜브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마자 빵 터졌다.
뜻밖의 TMI.. 반려견 "신방울"님이 공덕동에서 산책하는 덕팔이를 껴안은 덕분에 까뭉 상사라는 이 단톡 방에 캐스팅(?)되었다. 까뭉 상사에는 참 센스 넘치는 견주가 많다. 나는 이곳에서 소비 요정&구매 독려 역할을 맡고 있다.
덕팔 누나와 1일 1깡 주제로 통화를 하며 한참 웃다가, 아 혹시 내가 지금 이 시간을 깡으로 버티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깡 지수는 얼마나 될까?
덕팔이 이야기 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dogpalee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8로 시작하는 나는 옛날 사람이 맞나 보다... 검색창에 '1일 1 깡 뜻'을 먼저 검색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분명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굳이 '1일 1 깡'의 뜻풀이를 하면... 우울할 때 비의 '깡'을 영상의 댓글과 함께 보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악플도 잘 쓰지만... 정말 댓글 천재들인 것 같다.
평생 엄복동, 정지훈 님을 볼 기회는 없지만 괜히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그의 깡 덕분에 많은 이들이 우울함에서 벗어났다!
비 깡 레전드 댓글 보러 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8ITi0ilDe4A
스스로 내가 깡이 세다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신하고 러블리한 여성들의 매력을 동경해왔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센 언니 프레임은 여전히 부정하고 싶은 이미지이다. 하지만 몇몇 이슈들을 보면 나름 한 깡 하는 여자 같다.
가끔(?) 무식하게 일하기.
10년 전 첫 사회생활의 인턴 시절 월급은 수습기간 80% 를 적용해서 60만 원이었다.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명함에 박힌 글자가 좋아서, 3개월을 왕복 2시간 거리임에도 철야와 주말 출근을 감내하고 다녔었다.
또 '나는 도면 스킬이 부족한 것 같아'라는 생각에 다니던 집 근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짐을 싸들고 한 여름에 홍천 컨테이너 박스로 일을 찾아 떠났었다. 비록 비둘기만 한 나방의 잦은 습격을 못 견디고 몇 달만에 도망쳐 나오긴 했지만..
쓸데없는 승부욕
고등학교 때 체력장을 하면 적어도 2등 안에는 꼭 들었던 종목이 있다. 오래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
체육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를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죽기 살기로 뛰어 오래 달리기는 결국 1등을 했던 적이 있다. 거기에 윗몸일으키기는 옆 친구보다 하나만 더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숫자를 채워 놓고, 다음날 허리도 못 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대학 체육 대회 때는 피구공만 들면 눈빛이 활활 타올라 피구왕 통키가 따로 없었다. "쟤 눈빛이 변해, 무서워" 피구 경기장 밖에서 수군대는 소리도 경기 초반에만 들렸다.
주삿바늘이 왜 궁금해?
나 스스로도 이해 안 가는 것인데, 주사 놓으며 혈관 찾는 간호사분들이 신기하고 멋있어서 빠-안히 주사 바늘을 쳐다본다. 요양병원 간호사님들은 주사 잘 맞아서 예뻐!라고 하시지만, 이번에 2차 항암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님은 내 시선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팔 전체를 보라색으로 만드는 실수를 하셨다.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후에 몸속에 남아있는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혈액이나 이물질을 배출해 내는 관을 10-15일 정도 달고 있게 된다.
나는 양측 전절제를 했기 때문에 각각 2개씩 총 4개의 수류탄을 달고 있었다.
수월하게 배액관의 양이 줄어들면 하나씩 제거를 하게 된다. 배액관을 막을 수 있는 피부조직 덩어리 같은 것을 빼내기 위해 간호사님께서 손으로 쭈욱 관을 밀어내는데, 이것을 "훑는다"라고 표현한다.
이 고통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유난히 심한 편이었다.
유방암 수술 후 배액관 훑는 고통이 심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훑을게요"라는 말이 얼마나 두려운지... 저절로 발을 동동 동동 구르게 하는 아픔이다.
그럼에도 수술 후 3일 차부터는 배액관이 막히면 안 되지..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간호사님이 오실 때마다 이거 훑어야 할 것 같다고 먼저 말씀드렸는데, 환자가 먼저 자진 납세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하셨다. 고통을 잊는 깡다구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의문이다.
종양내과 첫 진료 때, 미리 유방암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산쿠소 패치를 처방해달라 주치의 선생님께 요청드렸다.
"산쿠소 패치는 언제 붙이는 거예요?"
임상간호사님께 물었다.
참고로 나는 브라카 돌연변이+삼중음성으로 현재 임상에 참여 중이기에 임상연구 간호사님께서 세세하게 챙겨주신다.
"보통 24시간 전에 붙이시는데... 혹시라도 첫 항암이셔서 괜찮으실 수도 있으니 항암주사 맞는 중에 붙이셔도 돼요. 많이 두려우시면 미리 붙이시는 게 좋고요."
여기에서 쓸데없는 깡이 발동했다.
"그럼 일단 안 붙이고 가져올게요! (활짝+해맑음)"
결국 항암 주사 맞는 도중 핑 도는 어지러움에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 붙여달라 부탁드렸고, 당황한 어머니는 산쿠소 패치 위 방수테이프의 필름을 떼지 않았음을 샤워하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1차 항암 일주일 후 요양병원 퇴원 전 날이 되었다. 이제는 일주일간 항암 부작용으로부터 나를 지켜준 산쿠소 패치를 떼도 될 것 같다며 신나게 떼어낸 것은 방수 대일 밴드뿐이었다.
산쿠소 패치가 어디로 갔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나뿐인 딸의 첫 항암에 적잖이 긴장하고 놀라셨던 어머니는.. 비싼 산쿠소 패치는 포장을 뜯지도 않고, 방수 대일밴드 하나만 붙이는 실수로 나에게 플라세보 효과를 선물해주셨다.
1차 항암은 방수 대일밴드 덕분에 수월한 항암이었다. 반면에 이번 2차 항암은 산쿠소 패치를 붙였음에도 1차처럼 수월하지 않았다.
긍정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준 엄마의 큰 그림이다.
나의 이런 면은 깡이 아니라 무식함이나 무모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깡다구를 발휘한 공통된 시점은 어차피 해야 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 두 가지이다. 그리고 수술도, 항암도,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항암 선배들은 아직 2차 밖에 안 했으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쯧쯧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 표준 항암 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내 감정과 체력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어.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니 견뎌내는 수밖에!
혹시 모르지 않나!
내가 비(정지훈) 만큼의 '깡'을 얻게 되면, 김태희의 남자 버전인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그러니 1일 1깡으로 살아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