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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May 08. 2020

03. '오늘'이 바로 당신의 로또

이미 로또에 당첨되었잖아요

눈 뜬 아침이 괴로운 적이 있으신가요?


학교 가기 싫다. 회사 가기 싫다. 알바 가기 싫다. 10분만 더...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날은 한 번쯤 꼭 있었을 것이다. 단 한번, 단 1초도 없었다면 당신은 긍정을 넘어선 어나더 레벨!




#1. 입이 방정이다


 한창 회사가 정말 가기 싫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즐겁던 일이 질리도록 싫어지던 때, "이러다 정말 암 걸릴 것 같아"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만들었던 회사. 다 지나고 아만자가 된 지금에서야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구나 깨달았지만...


 능력 없는 상사의 뒷감당은 온전히 내 몫이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회사. 새벽 2시에 클라이언트의 술주정을 받아내야 하기도, 본인이 화풀이를 할 데가 없어 나에게 하는 거라며 찰진 육두문자를 날리던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바뀐 내 모습도 맘에 들지 않았다. 나름 관리자가 되었을 땐 책임감 하나로 정직하게 일했지만 그에 대한 성취감은 전혀 없었고, 되려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 신물이 날 정도로 지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고 보니 남은 것도, 배운 것도 많은 회사였지만 다시 생각해도 심리적으로는 많이 지쳐있었다. 동시에 온 마음을 쏟았던 긴 시간의 연애도 허무하게 끝나버려 적잖은 상실감에 빠져버렸다.


 퇴사 후 처음으로 휴식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그 휴식을 만끽하고 지금의 회사에 둥지를 틀고 안정을 찾았을 때쯤 찾아온 것이 바로 요놈, 유방암이다.





#2. 이 지역 알아주는 체력왕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체력왕"이었다.

 대학 때 밤샘 과제를 하다가도, 가무를 좋아하는 흥 많은 나에게 친구의 "클럽 갈래?" 한마디는 나흘 밤을 잠 없이 지낼 수 있게 해 준 박카스 같은 유혹이었다. 비록 복근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수영, 필라테스, PT 꾸준하진 못했지만 틈틈이 운동도 해왔다.


 암 진단을 받기 전 1년간은 PT를 받으며 체력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이 피곤한 것은 단순히 오랜 휴식에 익숙해져 게을러진 것이라 여겼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업무 강도도 줄었는데 더 많이 힘들다 느껴지니 '아 이게 나이가 드는 건가 보다' 싶었다.

 이때부터 나의 몸은 내 의지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었다. 하루는 불면증으로, 하루는 쓰러지듯이 잠드는 변덕이 심한 몸이 되어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흥이 넘쳐도 이태원, 강남으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고, 한창 개너지 넘치는 반려견과의 산책도 나의 저질체력을 확인시켜주었다. 항상 주말 이틀 전부를 밖에서 보냈던 생활도 변해버렸다. 하루를 나가면 하루는 지쳐 쓰러지거나, 침대와 세트인 자발적 집순이가 되어 되어버렸다.





#3. 입력 오류,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아


 오늘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야지 눈을 떠보지만 눈이 떠지지 않는다. 대체 뭘 했다고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서는, 게다가 콧물도 줄줄 흐른다. 안 되겠구나. 난 이런 널 원한 게 아니지만, 내일의 널 위해 오늘은 일단 쉬어줄게 내 유리 몸아... 얼굴 두께를 두껍게 만들고 당일 결근을 택했다.


 항암 중인데 출근해도 돼?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간단히 임팩트 있게 말하자면 업무의 강도가 높지 않고, 회사에서 아만자인 나의 편의를 봐주고, 두꺼운 낯짝을 탑재하면 가능하다. 지금 나는 3박자가 어우러져 오히려 회사에 다녀오면 생기를 띤다. 되려 나에겐 지금 일을 하는 것이 (거의 출퇴근 위주) 심리적으로는 치료에 도움을 주는 상황이다.

 젊은 환자에게는 경력 단절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하는 두려움의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내 몸이 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심하게 느낀 것은 수술 후 9일 차 퇴원 전날의 일이다. 퇴원에 들떠 병동 산책을 마치자마자, 마지막 병원 밥을 먹자 룰루랄라 신나게 병실로 향했다.


 침대를 보자마자 온몸의 피가 땅으로 내려앉으며, 숨이 가빠오고 호흡이 되지 않았다.

 눈앞이 아득했다. 흐릿해진 시야로 내 손과 온몸은 떨리기 시작했고 속옷만 입고 스키장 한가운데 서있는 것처럼 시리도록 추웠다.

 혈압도 정상, 체온도 정상. 내 몸은 왜 이럴까,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간호사님이 주신 약 한 알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장장 3시간을 이불 세 겹을 덮고 씨름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멀쩡하다. 공황발작이었다.

 

 웃프게도 나는 조용해진 병실에서 배고파진 나를 위해 허겁지겁 사부작대며 마들렌과 주스, 카스텔라를 챙겨 먹었다. 이 와중에도 먹는 걸 보니 난 잘 살겠구나 느꼈다.


 그간의 스트레스와 불안이 나도 모르게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4. 당신은 이미 로또에 당첨되었다.


 어쩌면 아만자들이 투병 이후의 생활이 더 나은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의지대로 내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 때 체력왕이었던 나는 '이쯤이야 대수롭지 않아' 했던 산책코스도 지금은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또 새삼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 그리울 뿐 아니라, 나의 소중한 머리카락은 참 중요한 아이였구나 느껴지는 여름이 오고 있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만이 이 글을 접할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혹은 듣는 당신은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들이마신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잠들기 전 하루를 잘 견뎌낸 나를 위해 내쉬는 쉼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것인 줄 아는가!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로또에 당첨된 것이다.


 어제의 하루가 너무 괴로워 오늘 쉬고 싶다면 쉬어가도 된다. 단, 내일의 오늘을 위해 휴식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나는 가장 아름답고 생애 가장 젊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은 부. 럽.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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