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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더미 Sep 13. 2021

나도 엄마 사장님이 될 수 있을까?

엄마 천기저귀 사장님


천기저귀를 만들어 파는 엄마들이 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이들은 대부분 네이버 카페를 통해 직접 만든 기저귀를 판매한다. 나는 이 엄마 사장님들 덕분에 편하게 예쁜 일체형 기저귀(팬티형 천기저귀)를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


엄마 사장님이 만드는 기저귀는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 사장님들은 엄마가 아기 기저귀를 만들다가 사업으로 확장하여 판매에 이르게 된 경우가 많다. 대부분 혼자서 운영하는 조그마한 핸드메이드 사업이다. 아기에게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천기저귀를 만들어 팔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라고 생각했다.


이 사장님들이 판매하는 일체형 천기저귀는 한 장에 15,000원(10,000-20,000원 사이) 정도 한다. 10개를 산다고 하면 15만 원 상당이다. 오래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괜찮은 투자이지만, 처음에는 초기 비용이 비싸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작된 제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주문 제작이기에 결재 후 기본 3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느긋하게 살고 싶지만 내가 주문한 제품은 빨리 왔으면 하는 이기적인 소비자 중 한 명이다. 3주를 기다릴 바에야 내가 만드는게 빠르겠다 생각하며 기저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결론적으로 봤을 때 사장님에게 주문해서 받는 것이 빨랐을 것이다).



# 나는 기저귀 사장이 될 수 있을까?


낮에는 아기를 보고 아기가 잠들면 기저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기가 돌이 되기 전이어서 지금보다는 아기가 잠자는 시간이 길었기에 감히 기저귀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원단은 최대한 있는 것을 사용하고 고무줄 등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했다.


한창 기저귀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라 기저귀 만드는 것도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아기가 잠들기만 기다렸다가 열심히 공부해서 만들었다.



첫 번째 기저귀를 만들면서 나도 천기저귀 사장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기 기저귀를 만들어서 판매하다니. 집에서도 할 수 있고, 예쁜 기저귀를 만들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정말 꿈의 직업이다. 기저귀 도안을 그리고 천을 자르면서 기저귀 사장님이 되는 상상을 했다.


그럼 회사는 어떡하지? 회사에 10년 가까이 다닌 나는 아침에 출근 안 하고 집에서 재미있고 우아하게 기저귀를 만드는(나의 상상 속에서는 그랬다) 천기저귀 사장님이 좋아 보였다. 기저귀를 겨우 하나 만들고는 너무 뿌듯해서 신랑한테 자랑하고 또 더 자랑할 곳이 없어서 계속 옆에 두고 쳐다보고 사진도 찍고 했다.



내 새로운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저귀를 몇 개 만들고 나자 다시는 기저귀를 만들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재봉틀을 이용하여 일체형 기저귀 형태를 만드는 그것까진 재미있었다.


문제는 고무줄이다. 기저귀가 아기 허벅지랑 배에 부드럽게 밀착되게 하려면 (그래야 똥이나 쉬가 새지 않는다) 고무줄을 넣어야 한다. 고무줄을 잡아당기면서 고정하는 게 생각보다 힘이 들어가는 중노동이다.



한 개 만들었는데 손목이 무리가 갔다(나름 출산한 지 1년도 안된 산모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티단추를 다는데 손목이 후들거렸다. 한 개 만들고는 이렇게 골골되다니(나는 엄살이 좀 있는 편이라고 한다). 나는 엄살이 좀 있는 편이다. 이래서 천기저귀 사장님은커녕 사장님 밑에 취직하기도 틀렸다.


재봉틀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우아한 일도 아니었다. 재봉틀을 다루면 원단 먼지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재봉틀을 돌리고 나면 아기 일어나기 전에 옷도 바로 빨고 샤워를 해야 했다.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데 하나에 15,000원이라니…. 재료비 빼면 이윤이 많이 남아야 만원도 안 될 것 같다. 하나 만드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숙련된 사장님들은 한 시간이면 될까?


제품 제작부터, A/S 등 나는 절대 못할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2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이렇게 멋진 기저귀를 주문할 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기저귀를 구매한다.



# 저는 천기저귀 사용자로 남겠습니다


열 개도 못 만들고 천기저귀 사장님이 되려는 꿈은 접고, 천기저귀 사용자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것은 즐겁지만 직업으로 삼긴 어렵겠구나.


육아휴직 후 집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20대의 나와는 다른 꿈을 꾸었다. 바닷가 앞에 작은 가게를 열고 거기에서 손으로 만든 제품을 만들어 쓰레기 없이 파는 꿈. 공방처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이건 이미 생계가 해결되었을 때나 가능한 얘기겠지.


현실적으로는 내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회사에 돌아가서 상사의 기분을 맞추며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내 아기 기저귀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몇 개를 만들면 재밌을 수 있지만, 직업으로 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엄마들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지금 내 직업도 입사 전에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일이 되고 보니 굉장히 다른 느낌이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엄마 사장님들도 처음에는 기저귀가 좋아서 기저귀를 만들어 팔았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저귀 만드는 것이 즐거울까 궁금하긴 하다. 처음처럼 재미가 있진 않을 수도 있고, 지금도 다른 아기들이 기저귀를 입은 모습을 보면 뿌듯할까?


제 자리에서 오늘도 묵묵히 천기저귀를 만드는 엄마 사장님들을 응원한다. 천기저귀 사장님들은 아기에게 좋고, 환경에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제공한다. 그 덕분에 나는 힘들게 도안을 그리고 천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고무줄 다는 과정 없이 국산 핸드메이드 기저귀를 손쉽게 구해서 사용할 수 있다.




다음 편에는 천기저귀 판매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진은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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