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놀이터와 3살 아들의 푸시업

아들아, 이 치열한 세상을 어찌...

by 휴리릭

요즘 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집에 가기 싫어"입니다. 어린이집 하원할 때 보통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는데, 유모차에 타기 전부터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합니다. 아들은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인사도 대충하고 "산책"을 강력하게 외칩니다.


요즘은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유모차 대신 아들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서 나옵니다.

아, 물론 아들은 나오자마자 제 손을 내팽개치고 잽싸게 달려 나갑니다. "조심조심"을 강력하게 외치며 서둘러 아들을 따라갑니다.





자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들


산책을 나오면 아들은 무조건 자동차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밌는지 아들은 지나가는 자동차를 유심히 바라보더라구요. 그러다 가끔 경찰차라도 지나가면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삐뽀삐뽀다"를 외칩니다. 마치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듯이 말이죠. 안전하게 놀이터에서 놀면 좋겠지만, 아들은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 곳은 거부해서 산책하는 내내 아들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며 다녔었죠.


그러던 아들이 이제 자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색깔을 알게 되면서 주변에 피어있는 꽃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꽃 색깔을 이야기합니다. 대놓고 화려하게 핀 꽃보다는 조그맣게 피어있는 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벚꽃처럼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꽃보다는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꽃을 더 좋아하구요. 걸어가다 꽃을 발견하면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노란 꽃이다"를 외칩니다. 마치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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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20426_230924030_02.jpg 요새 아들이 좋아하는 조그만 노란 꽃입니다!



놀이터에 푹 빠진 아들


이전에는 스치듯 지나갔던 놀이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을 먹고 아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평일에는 아이들로 북적북적하던 아파트가 주말 오전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조용합니다. 그래서 전 이 시간에 산책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아이와 마음껏, 편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죠. 놀이터에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도 많습니다. 보통 오전 11시 정도 돼야 조금씩 아이들이 나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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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원동력은 미끄럼틀입니다. 그네, 시소 같은 건 아직 재미가 없나 봅니다. 오직 미끄럼틀만 탑니다. 한 번 타면 10번, 20번은 기본입니다. 아직 제가 불안해서 같이 미끄럼틀을 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고도 없이 먼저 혼자 내려가 버렸습니다. 벌써부터 아빠에게 독립하려 하다니... 대견하면서도 살짝 서운하네요.



내 것이었던 놀이터를 순식간에 빼앗기고...


어제도 여느 때처럼 어린이집 하원하고 놀이터에 갔습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군요. "우와 놀이터에 왔다!"라고 말하며 아들을 봤는데... 이미 아들은 미끄럼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미끄럼틀을 5번쯤 탔을 때쯤, 갑자기 놀이터에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어머니들 무리가 놀이터 투어를 온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이들 중 절반 정도가 낯선 얼굴이었거든요.


아이들은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각자 할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중 2명은 2개뿐인 그네를 서둘러 점령했고, 몇 명은 미끄럼틀을 향해 올라갔고(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는 아이를 포함해서), 몇 명은 그저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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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이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큰 아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7,8살 정도나 됐을까요... 그 아이들이 놀이터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분노의 질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그 좁은 공간에서 최대 속도를 올리다가 갑자기 미끄럼틀, 시소, 그네에 난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남자 어른인 저를 보고 잠깐 움찔해서 속도를 줄이다가도 곧바로 다시 속도를 올리더군요.


평화롭게 미끄럼틀을 타던 아들은, 미끄럼틀에 내려오자마자 "또 타"를 외치며 다시 미끄럼틀 계단으로 향하던 아들은... 아이들의 등장 이후 놀이터 구석에서 일시정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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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놀이터는 치열한 세상의 축소판이란다...


놀이터는 한순간에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속에서 겨우 25개월인 아들은 너무 힘이 없었습니다. 잠시 내 것 같았던 놀이터를 형들, 누나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아들에게 치열한 세상을 너무 일찍 알게 한 것 같아서 아빠로서 살짝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마냥 온실 속에서 아들을 키울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놀이터를 보고 있으니 저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남중, 남고라는 그 치열했던 6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학교라는 질서 아래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김없이 약육강식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학교라면 바로 폭대위가 열릴 일이지만, 그때는 그저 애들끼리의 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버티기 위해서 제 나름의 생존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체력, 체격, 두뇌, 권력 등... 뭐라도 1개 이상을 가져야 편할 수 있었던 6년이었습니다. 저는 체격이 작았기에 깡으로 버티고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친구들을 대표해 선생님과 협상(?)을 했던 적도 많습니다.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체격과 싸움 실력(?)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제가 가지지 못한 체격까지도 주고 싶은 것이 아빠의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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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등판을 가진... 헬스 마니아인 제 친한 동생은 제가 아들을 낳자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 누가 아들 괴롭히면 말씀하십쇼. 제가 바로 출동합니다!"

"든든한데 좀 무섭기도 하다... 아들 스스로 지킬 준비도 해야겠지?"

"그럼요! 험난한 세상입니다. 3살 되면 푸시업부터 시작하시죠!"


아들이 어느새 3살입니다. 아들아, 험난한 세상을 잘 이겨내려면 먼저 스스로를 지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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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이미 푸시업을 하고 있더라구요! 파이팅이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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