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에서 방영하고 있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한동안 인기였습니다.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비슷한 육아 문제를 다룰 때면 종종 챙겨봤죠. 최근에는 잠 때문에 고민인 아들 때문에 야경증 관련 회차를 다시 보기로 봤습니다.
1년 전 방송이지만, 다시 보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은영 박사가 제시한 솔루션에 따라 아이가 조금씩 변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부모가 노력하면 대부분 개선이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제 자신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저는 바꾸지 않으면서 아들이 바뀌기를 기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방송에 나온 솔루션을 지침 삼아 아들을 바꿔보려 했지만 어김없이 실패하고... '나도 한 번 방송에 나가볼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우연히 어떤 일을 겪었고, 그 일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와이프가 찾아내버린 제 흑역사
제가 군대에 있을 때, TV에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방TV에서 하는 <열전! 천하무적>이라는 프로그램이었죠. 당시 저와 같은 군인이었던 윤계상 씨와 당시 아직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김나영 씨가 진행을 했었죠.
전설의 방송 국방TV <열전! 천하무적>
제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명백했습니다. 휴가를 준다고 했거든요! 군인에게 휴가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아무나 출연할 수는 없죠. 사전에 참가 신청을 받았고, 휴가가 걸려있었기에 경쟁은 매우 치열했습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사연을 적어야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군인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는 역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한동안 짝사랑했던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좋아했던 사연을 적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마음 정리를 한지 조금 됐었는데도, 그 친구를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괜히 아련해지더라구요. 군대에서 갇혀 지내다 보면 과거에는 별 것 아니었던 일들도 크게 부풀려져서 다시 기억되기 마련이니까요. 군인 감성이랄까...
제 진심이 느껴졌는지 사연은 통과가 됐습니다. 그런데 방송 전날 작가님에게 전화가 와서, 방송 당일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자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랑 연락을 안 한 지 2년도 넘었는데... 도무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작가님은 "이럴 때 한 번 다시 연락해보는 거죠"라는 말로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했고, 그 통화가 방송에 그대로 나갔고, 그 친구는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를 잘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통화가 끝났죠...
그런데 그 방송을 와이프가 찾아낸 겁니다.
방송에 김나영 씨가 나올 때면 제가 이런 말을 많이 했었거든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김나영 씨랑 방송을 한 번 같이 했지. 김나영 씨가 나랑 사진도 잘 찍어주고 얼마나 친절하시던지! 김나영 씨가 방송을 진짜 진짜 열심히 해서 언젠가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성공하셨어!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니깐!"
와이프가 원래 인터넷에서 뭘 잘 찾는 편이긴 한데, 제가 나온 이 방송을 찾아버리더라구요.
촬영을 마치고 친절한 김나영 씨와 찰칵!
그 방송을 본 이후로 와이프가 김나영 씨가 나올 때마다 "첫사랑이 짝사랑이었어? 엄청 애틋하던데?" 라면서 놀립니다. 아...
이래서 기록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항상 기록되는 것을 조심해야겠다...
아이들의 동의는 받았는가?
방송사는 사전에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에게 동의를 받았을 겁니다. 다만 아이는 아직 미성년이라 동의를 할 수 없으니 부모에게 대신 동의를 받았겠죠. 물론 아이의 보호자인 부모가 미성년인 아이를 대신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생애 최초로 다니는 기관인 어린이집에 갈 때부터 부모의 동의는 필수니까요.
하지만 그런 동의를 통해 아이가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어리고 그저 TV에 나온 것이 또래 친구들에게 화제가 되고 부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가 나중에 성년이 된 이후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과거를 생생하게 기록한 방송 프로그램을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성인이 돼서 그 방송을 다시 봤더니 너무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울 수 있잖아요. 특히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프로그램은 대개 아이가 문제가 있어 부모가 너무 힘들다는 것으로 시작하니까요.
일단 한 번 방송에 나가면 나중에 그 방송 내용을 지우고 싶어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VOD 영상을 삭제했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곳에서 충분히,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출연했던, 심지어 주요 채널도 아닌 방송 자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잖아요. 지금 방송되는 건 10년 후, 20년 후에 지금보다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겠죠. 그리고 이것이 성인이 된 그 아이에게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육아가 너무 힘들고 이대로 가면 아이가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성장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방송에 출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영원히 아이인 것은 아니니까요.
카카오톡에서 아이 사진을 지워버렸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아이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SNS도 거의 하지 않고, 카카오톡 프로필도 귀찮아서 잘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다르더라구요.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제 눈에는 정말 예쁜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카카오톡 프로필에 아이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을 올리다 보면 간혹 아들이 정말 예쁘다며 톡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보니 더 신이 났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건 내 카카오톡인데 왜 내가 아닌 아들 사진이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아들이라는 존재는 제게 매우 중요하지만, 아들이 저를 대신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초상권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이기는 좀 그렇지만, 여하튼 아이의 얼굴을 부모라는 이유로 제가 너무 마음대로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사실 어느 순간부터 귀찮기도 했구요.
그래서 결국 카톡 프로필에 있던 아들 사진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육아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또 듭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아이가 커갈수록 이런 것들도 고민해야 하니까요.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가기도 점점 버거운데, 생각할 거리는 많아져만 갑니다.
제 흑역사를 와이프에게 들키고, 그걸 계기로아이의 초상권까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시작은 와이프의 뛰어난 검색 실력에 있지 않나...
"첫사랑이 뭐가 중요해! 마지막 사랑이 중요하지... 그러니까 그 방송은 좀 잊어주시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