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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l 24. 2023

15화 - 두 번째 짝꿍을 정하는 날이 다가오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왜? 왜 갑자기 그러는데?”

 “이거 모두 보라고 뒤에 붙여놓은 거잖아. 근데 왜 니 혼자만 보냐고. 빨리 내놔.”     


 국어쌤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교실 뒤에 붙여줬던 유인물이다. 시험하고는 상관없는 내용이라 애들이 별로 관심을 안 가졌다. 그래서 그걸 미래가 떼서 자기 자리에 가져와서 보고 있었나 보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 거라 내가 조금 보겠다는데 안 돼? 내가 보고 있었으니까 이거까지 마저 보고 이따 줄게.”     

 미래는 병달이 따위에게 기죽지 않는다.      


 “싫다고. 난 지금 이거 봐야겠어. 빨리 내놔.”     

 병달이는 결국 미래가 보던 유인물을 빼앗아서 자리로 돌아갔다. 책이라고는 만화책 말고는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놈이 갑자기 저 유인물을 본다고..? 누가 봐도 이건 미래에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것 같아 보인다.    

  

 ‘근데 왜? 왜 미래에게?’     


 병달이가 양아치 끝판왕이지만 적어도 우리 반에서는 조용히 하고 있었다. 그건 우리 반에 정혁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평균 체급에도 남자애들 앞에서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이유가 2가지다. 바로 축구와 정혁이다. 정혁이와 영만이는 내 오른팔과 왼팔이다. 아, 내가 정혁이의 오른팔인가?


 이런 정혁이가 있음에도 병달이가 미래에게 이런 도발을 한 이유는 명백하다. 정혁이가 오늘 결석했기 때문이다. 정혁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그 틈을 못 참고 병달이는 반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오늘을 사는 법만 알지 내일 따위를 생각할 지능이 병달이에게는 없다.      


 ‘근데 왜 하필 미래지?’


 정혁이가 없는 틈을 타 병달이가 깽판을 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왜 그 상대가 미래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 옆에 한 달 가까이 앉아 있는 미래인데...      


 난 화가 났지만 병달이에게 바로 달려가지 못했다. 병달이와 싸울 용기가 없었다. 물론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병달이가 날 때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랬다가 학교 생활이 매우 피곤해질 걸 병달이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저런 미친 양아치를 제압할 자신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병달이가 미래에게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래가 내 옆에 앉아있다는 이유밖에 없다. 중학교 때부터 병달이랑 나는 앙숙이었다. 천박하게 애들 괴롭히고 별로 있지도 않아 보이는 돈 자랑 하는 병달이가 내 눈에 곱게 보일리 없었다. 하지만 무력으로 내가 병달이를 제압할 수는 없기에, 선생님과 정혁이의 힘을 빌렸다. 권선징악을 병달이가 몸소 깨달을 수 있게 해 줬다.   

  

 하지만 병달이는 어리석었다. 한 번 혼나면 그만해야 되는데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 오늘, 마침 정혁이도 교실에 없고 담임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보이니 시비를 건 것이다. 그것도 내가 아닌 미래에게. 내가 미래와 짝꿍을 하고, 미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보이니까 이런 방식으로 날 괴롭히는 거다.      


 정말 열받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다. 병달이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병달이는 내가 아닌 미래에게 시비를 걸었기에 조금 애매하다. 물론 주먹으로 싸우면 내가 질 가능성도 높고. 정혁이가 돌아오면 나도 몸과 힘을 키우는 방법을 좀 배워야겠다.     


 “미안해 미래야.”


 그저 이 말 밖에 해줄 수 없었다. 반 애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었지만, 반장인 나는 그저 미래에게 이 말 밖에 해줄 수 없었다. 다음 주에 정혁이가 와서 병달이를 죽여 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됐어. 저런 양아치한테 마음 상하면 우리만 손해지 뭐.”

 “오늘 학교 끝나고 일정 있어? 금요일인데 맛있는 거 먹을래?”

 “이모 탕수육 먹으러 갈래? 대신 이번에는 네가 쏴!”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분명 뭔가 내 잘못인 것 같다. 나이키 축구화 사는 걸 한 달 더 미뤄야 할 것 같다. 이모탕수육 먹으면 축구화 값의 절반은 사라진다. 그래도 이모탕수육을 다시 먹을 기회가 생기다니 이런 게 전화위복인가?     


 ***     


“유준아! 어서 와! 우리 미래랑 유준이가 왔는데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라 룸이 자리가 다 차버렸네. 이모가 서비스 많이 줄 테니까 오늘은 홀에 앉자!”     


 ‘감사합니다!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 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이모! 그저 탕수육이면 충분합니다!’     


 와! 두 번째 먹어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탕수육이 어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모탕수육을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만 먹어 본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유준아. 근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탕수육과 짜장면을 싹싹 긁어먹고 나른한 트림이 나올 무렵, 미래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너 앉고 싶은 짝꿍 있어?”


 미래는 항상 이렇게 훅 들이댄다. 빌드업이라는 건 미래의 어학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언제나 정면 돌파다.      


 “다음 주에 짝꿍 바꾸잖아. 이번에는 남자가 앉아있고 여자가 짝꿍 고르는 거고.”

 “다음 주였어? 벌써 한 달 지난 거야? 진짜 몰랐다.”     


 난 일부러 더 과장되게 말했다. 사실 모를 수가 없다. 내가 반장 공약으로 내세웠던 우리 반만의 독특한 짝꿍 정하는 방식은 이미 전교에 소문이 퍼졌다. 그저 옆에 앉았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수많은 해석과 추측들이 생겨났으니까.


 원래 짝꿍이었던 여자애가 내 옆에 다시 앉는다면 좋다. 한 달 동안 짝꿍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뜻도 될 테고. 하지만 그만큼 소문나기 딱 좋다. 두 달 연속 짝꿍을 한다면, 게다가 남자도 여자도 서로를 선택했다면 말 다 한 거다.


 문제는 이번에는 남자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거다. 누가 내 옆에 앉든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래가 될 수도 있고, 나라가 될 수도 있다. 효진이가 앉을 수도 있다.      


 “난 누구 옆에 앉지?”

 미래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 같은 말을 던진다. 그것도 시끌벅적한 중식당의 한복판에서.     

 

 이번 짝꿍은 지난달과는 확실히 다르다. 저번에는 학기 초라 조금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같은 마음도 조금 있었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고, 우리는 모두 서로를 꽤 잘 안다. 어색함보다는 익숙함이 있고, 망설임보다는 설렘이 있다.    

 

 ‘내 옆에 앉을래?’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난 그 말을 콜라와 함께 꿀꺽 삼켰다. 미래는 좋은 친구다. 짝꿍 하면서 많이 배웠고 즐거웠다. 하지만 라영이가 있다. 이번에도 미래가 내 옆에 앉는다면 1년 내내 미래와 짝꿍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라영이가 내 옆에 앉을 것 같지 않다는 거다. 학기 초 내 뒤에 앉았을 때 잠깐 이야기를 하고, 그 뒤로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주말에는 뭐 할 거야?”

 화제를 돌리는 것이 내 최선의 선택이다.     


 “누구 옆에 앉을지 고민할 거야.”

 뛰는 내 위에 나는 미래가 있었다.     


 “다 먹었으면 집에 가자.”

 “오늘도 데려다 주나?”

 “그래야지..?”


 미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일부러 연예인 이야기만 했다. 미래는 별로 관심 없어했지만 혼란스러운 내 머리를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     


 드디어 월요일. 원래 월요일은 피곤한 날이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 공부시간은 늘고 수면시간은 줄어들면서 몸이 훨씬 피곤해지긴 했다. 특히 월요일은 다른 요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주말에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아닌가 보다. 일요일 밤이 되면 급격히 어두워지던 아빠의 얼굴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월요일과 다르다. 다들 바쁘다. 평소보다 훨씬 열심히 움직인다. 선거 마지막 날처럼 열심히 유세를 하고 있는 녀석도 보인다. 내 마음도 바쁘다. 이번에는 짝꿍을 내가 결정할 건 아니지만 말이다.     

 “뭘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있어?”

 “어? 어...”     


 미래는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로 내 옆에 앉았다. 항상 미래가 나보다 일찍 등교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너무 일찍 학교에 왔나 보다. 미래 옆자리에 앉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학기 시작할 때만 해도 관심도 없었던 미래다. 며칠이 지나도록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라영이와 달리 미래를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효진이 사건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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