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리릭 Jul 26. 2023

16화 - 근데 혹시 내 짝꿍은...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겨우 한 달 함께 했을 뿐인데 미래와 정이 많이 들었다. 많은 일들이 있기도 했다. 효진이 사건의 진범을 같이 확인했고, 미래 아버지 병원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눈맞춤 세계에도 한 번 들어갔고, 이모탕수육은 무려 두 번이나 먹었다. 미래 집을 보면서 미래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높은 벽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했고.     


 미래는 정말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게 정말 고마운 것 중 하나는 내게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넣어줬다는 거다. 미래는 늘 맑고 여유로운 생각이 가득했다.      


 게다가 외모도 보면 볼수록 매력 있었다. 하얀 피부와 긴 다리를 가진 미래는 우리들 사이에 있을 때면 한 마리의 하얀 백조 같았다. 큰 키에서 나오는 우월한 비율은 사람을 압도했고, 중요한 순간마다 입술을 쭉 내미는 행동은 볼수록 귀여웠다.     


 공부 측면에서 보자면 미래에게 나는 분명 경쟁 상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는 나를 진정한 친구로 대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효진이 사건을 같이 해결하면서... 아, 해결이라는 표현은 조금 잘못됐다. 실제로 해결한 것은 딱히 없으니까. 여하튼 효진이 사건을 함께 겪으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아, 이모님의 탕수육에는 정이 더 많이 들었다.     


 2학년이 되고 공부와 조금 멀어질 뻔도 했다.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 같은 건 잊어버린 지 오래다. 성적이 어디까지 떨어질 거냐는 엄마의 잔소리는 그저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재밌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공부만 하기에는 이 젊음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마음대로 즐기라고 하지만 10대와 20대는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공부하다 보니 1학년 때 성적은 내려만 갔고, 2학년이 된 지금은 겨우 반 1등만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걸 붙잡아 준 것도 미래다. 미래는 수업시간에 언제나 열심이었다.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공부 같은 건 하기 싫을 법도 한데 미래는 공부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미래가 내 옆에 앉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그러면 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든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라영이와의 관계는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다.    

  

 라영이 옆에 앉은 영만이에게 가끔씩 라영이에 관해 물어봤었다. 하지만 영만이는 괜찮은 친구라고만 말할 뿐 생각보다 라영이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맨 앞자리에 앉다 보니, 그리고 옆에 미래가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친구들에게 별로 관심을 안 가진 것도 맞다. 효진이 사건 말고도 여러 사건들이 주기적으로 있기도 했다.          


 “장유준! 빨리 안 나와?”

 “어. 오늘은 좀 피곤해서 쉴게.”

 “안 돼! 인원 안 맞는다. 빨리 나와.”     


 정혁이는 눈빛으로 나를 압도했다. 정혁이는 축구에 정말 진심이다. 나도 축구를 정말 좋아하지만 오늘 점심시간만큼은 쉬고 싶었다. 이따 짝꿍 정해야 하는데... 땀 냄새를 풍기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땀 흘리는 남자애들보다 깔끔하고 향기롭게 앉아있고 싶었다. 내 옆에 누가 앉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정혁이는 무섭다. 내 오른팔이지만 두렵다. 그리고 축구는 재밌다.     


 안 뛰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막상 시작하니 축구에 완전 빠져들었다. 그리고 욕심은 결국 화를 자초했다.     

 “아악!”

 “유준아, 괜찮아?”

 “피나는데? 바지도 찢어졌네.”     


 굴러가는 공을 보고 전력질주를 하다 병달이랑 부딪혔다. 그리고 땅으로 고꾸라졌다. 왼쪽 무릎이 심하게 쓰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피가 나는가 보다. 하필 재수 없는 병달이랑 부딪혀서 열받는데 나만 넘어져서 다친 건 더 열받는다. 병달이는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은 채 멀쩡한 다리로 내 옆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건 정혁이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 축구하다가 생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물론 병달이가 조금 더 과하게 달려든 것 같긴 했지만 여긴 VAR도 없는 학교 축구일 뿐이다.  

    

 “병원 안 가 봐도 되겠어? 양호실이라도 가자.”

 “됐어. 뭔 양호실까지. 괜찮아지겠지.”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쪽팔린다. 축구를 해온 지 10년이 넘었건만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런 불상사가... 땀 냄새는 기본에 피가 묻은 다리에 찢어진 바지, 거기에 더러운 몰골까지... 벌써부터 내 짝꿍이 불쌍해졌다.      

     

 5교시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임시로 지혈은 시켰는데 왼쪽 무릎이 계속 쓰라렸다.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지만 고통이 인내를 넘어섰다.      


 “나 아무래도 양호실 다녀와야겠다. 너무 아프다.”     

 정혁이에게 말하고 양호실로 향했다. 다음 시간이 짝꿍을 정하는 시간인데... 나는 왜 양호실을 가야만 하는 건지. 빨리 다녀오고 싶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어차피 망했다는 생각이 드니 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지혈이 아직 완전히 안 됐는데 그 다리로 어떻게 수업을 들었냐며 양호쌤은 나를 크게 혼내셨다. 양호실에 누워서 지혈된 거 확인해야 보내준다고 하셨다. 내 짝꿍은 누가 될까 설레고 걱정되고 했던 지난 며칠간의 기억이 양호실에서의 단잠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걸 난 왜 그리 마음을 졸였나 싶다.     


 어차피 수업 중간에 들어가긴 애매할 것 같아서 아예 양호실에서 1시간을 통으로 누워있었다. HR 시간이라 굳이 교실에 안 있어도 된다. 중요한 정보는 미래에게 물어보면 된다.      


 HR 시간이 끝날 때쯤 교실에 돌아가려 했지만, 그다음 시간은 청소시간이라 자연스럽게 청소까지 땡땡이치면 되겠다는 훌륭한 생각이 떠올라서 10분을 더 누워있었다.  

        

 다리를 살짝 절뚝거리며 우리 반으로 향했다. 내 머릿속은 짝꿍 생각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하지만 누가 내 짝꿍이 되느냐가 앞으로 한 달의 운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선택을 받는 달이다.      


 미래일까..? 아니면 혹시 나라..? 규아일 수도 있고. 여자애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자애들한테 조금 더 잘해줄걸... 자신감은 연기처럼 멀어져 간다.        

  

 드디어 4반 뒷문에 도착했다. 이제 문을 열어보자. 하나, 둘, 셋!     


 ‘응? 이게 뭐야?’     


 분명 자리를 바꾼 것 같아 보였다. 전과는 묘하게 교실의 분위기가 달랐다. 하지만 문제는 자리에 앉아 있는 애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내 짝꿍은커녕 내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맨 앞자리를 봤다. 내가 조금 전까지 미래와 함께 앉아있었던 그 자리. 미래의 자리는 아까와 같은 가방이 걸려 있다. 미래는 짝꿍이 바뀐 것 같다. 원래 내 자리에는 다른 가방이 걸려있다. 미래는 날 선택하지 않았다.


 기대를 전혀 안 한 건 아니어서 미래에게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도 있다. 내가 미래에게 확실하게 내 옆에 앉아달라고 했으면 미래는 내 옆에 앉았을 것도 같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래의 새로운 짝꿍은 누구일까..?     


 누굴 붙잡고 내 자리가 어딘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교실에 남아있는 애들도 거의 없고 그나마도 나랑 별로 안 친한 애들이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문제는 다리가 아프다는 데 있다. 자리에 앉고 싶은데 내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니 피 묻은 옷으로 아무 데나 함부로 앉을 수 없다. 어제라면 누구 자리 이었는지 다 아니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하나의 자리도 주인을 알 수가 없다. 내 가방 말고 다른 친구들 가방은 관심도 없어서 가방만 보고 판단할 수도 없다.      


 “장유준! 양호실 갔다 왔어? 다리는 괜찮아?”

 현선이다.     


 “피는 멈췄는데 아직 아프네. 근데 어디 갔다 왔어?”

 “우리 담임쌤이 아이스크림 쏜다고 해서 다 같이 매점 다녀왔지. 너는 하필 이런 날 다쳐서 아이스크림도 못 얻어먹고... 안타깝네.”     


 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스크림인데... 그 짠돌이 담임이 웬일로 아이스크림을 쏜 거지...    

  

 “자리 바꾼 거 맞지? 혹시 내 자리는 어딘지 알아?”

 “자리 바꿨지. 너 없어서 다른 남자 애들이 네 자리 정해주더라. 네 자리는 저기 가운데 앞에서 세 번째 줄.”     

 원래 앉았던 자리의 뒷뒷자리다. 내 검은색 나이키 가방이 보인다.    

  

 “아 근데 혹시 내 짝꿍은...”

매거진의 이전글 15화 - 두 번째 짝꿍을 정하는 날이 다가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