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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l 31. 2023

17화 - 왜 계속 내 옆에 앉아있는 거지..?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짝꿍? 누구였더라... 나 잘 모르겠다. 나는 아니라서. 곧 알게 되겠지. 새로운 짝이랑 잘해보셔!”     


 일단 자리에 가서 앉아야겠다. 별로 안 아픈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있다. 아무래도 이따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다.     


 “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담임이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  

   

 오늘은 종례하고 바로 끝이다. 담임이 와야 종례를 할 텐데...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미래도 왔다. 미래에게 인사를 하려 했지만 미래는 곧장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갑자기 외롭다. 미래의 뒷모습을 보니 더 외롭다. 리더의 고독이 이런 것인가... 반장으로서, 핵인싸로서 지난 한 달을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지금 미친 듯이 외롭다. 당장 미래의 옆자리에 가서 앉고 싶은 심정이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온 줄 안다고 했던가... 편하고 익숙하기만 했던 미래의 옆자리가 떠나고 나니 너무나 멀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미래의 뒷모습을 제대로 처음 보는 것 같다. 긴 머리와 단발 사이의 길이에 있는 미래의 머리는 오늘따라 미래를 신비롭게 감싸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 미래의 옆자리에 어떤 놈이 다가간다. 어라? 그놈이 자리에 앉았다. 미래의 짝꿍인가 보다. 누구냐 넌.      

 헐... 효석이었구나.      


 우리 반, 아니 우리 학교 최고의 모범생 정효석. 친구와 대화 같은 건 하지 않고 오직 책만 보는 정효석. 효석이가 졸거나 선생님한테 혼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모범생의 표본이자 우리 반 3등 정효석이 바로 미래가 선택한 짝꿍이었다.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미래의 짝꿍이 내가 아니라면 다른 남자들 중에서는 효석이가 가장 나은 것 같다. 가장 안전하다고 해야 할까... 공부만 아는 효석이가 미래와 썸을 타거나 그럴 것 같지도 않고...      


 미래를 제대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미래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못된 마음은 오늘따라 더 커지기만 한다.     

 못난 내 마음을 탓하고 있을 때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는 소리가 난다.     


 “장유준! 괜찮아? 양호실 갔다 왔다며?”

 공기를 찢는 고음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나 마나 나라다.     

 

 “뭐 그럭저럭.”

 나라가 내 짝꿍이군. 나쁘진 않지만 딱히 기쁘지도 않다. 나라 성격상 새로운 남자 옆에 앉을 줄 알았는데...


 식상한 내 옆자리라니. 뭐 그래도 나라 옆이니 긴장하거나 설렐 것도 없고 편안하긴 하다. 나라가 전해주는 학교의 온갖 소문을 듣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고.


 “고마워.”

 “뭐가?”

 “날 짝꿍으로 선택해 줘서.”


 최소한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남자의 매너다.     

 

 “뭐래. 내가 왜 네 짝꿍을 하냐. 나 상우 옆에 앉았거든? 상우가 머리 좀 기르니까 요새 좀 멋있는 것 같더라고. 물론 정혁이만큼은 아니지만. 근데 정혁이는 이번에도 승석이 옆이더라! 치사하게!”     


 우리 반은 남자가 여자보다 2명 더 많은 관계로 남-남 짝꿍이 무조건 하나 생기게 된다. 정혁이와 승석이는 그 남-남 짝꿍을 선택한 것이다. 저번 달에도, 이번 달에도.     


 나라는 내 짝꿍이 아니었다.     


 근데 대체 내 짝꿍은 누구 길래 아직도 안 들어오는 거야...? 설마 효진이는 아니겠지...? 효진이 옆에서 한 달을 앉아있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혀온다.     


 “다리는 괜찮아?”

 유난히 부드러운 목소리는 작년 수련회 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목소리다.    

  

 라영이다. 라영이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응..?     


 “아... 이따 병원 가보긴 해야 할 것 같아.”

 대화도 많이 안 해봤는데 내가 걱정돼서 물어보러 왔나 보다. 라영이의 천사 같은 마음씨에 또다시 반할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자기 자리로 안 가지?’     

 그 뒤로 라영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나한테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왜 계속 내 옆에 앉아있는 거지..?     


 “다들 얼른 자리에 앉아봐. 아이스크림은 잘 먹었지?”     

 담임이 매우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햄버거도 아니고 아이스크림으로 생색을 너무 심하게 낸다. 심지어 나는 먹지도 못했다. 반장이면 뭐 하나.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걸.     


 “오늘 자리도 바꾸고 짝꿍도 새로 바뀌었으니 내일부터 새로운 기분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한다. 짝꿍이랑 연애할 생각하지 말고 같이 공부할 생각만 하도록! 이상!”     

 잔소리도 참 말도 안 되게 한다. 짝꿍이랑 같이 공부할 생각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 대체.     


 “반장! 인사 안 하냐! 아, 너 다리 다쳤다고 했지? 아프면 얼른 병원 가봐라. 인사 생략! 끝!”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재수 없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일어나는 순간 무릎이 또 쓰라리다. 병원을 가긴 가야 할 것 같다. 에이스의 부상이라니... 축구를 한동안 못할 걱정에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아파 보이는데? 병원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나보단 정혁이가 훨씬 낫겠지?”     


 짝꿍이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과 미소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인사한다. 응? 근데 내 짝꿍이 라영이다. 날 선택한 사람이 라영이라고? 오늘 무릎 다친 건 이걸 위한 액땜이었나?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유준아!”

 라영이는 특유의 눈웃음과 함께 교실을 나갔다.     


 ***     


 “야! 장유준!”

 영만이다. 그래! 영만이는 조금 전까지 라영이와 짝꿍이었지. 영만이에게 조언을 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영만이! 네 짝꿍 누구야?”

 “현선이다.”


 영만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왜? 현선이 별로야? 그 정도로 별로인 건 아닌 것 같은데? 현선이는 대체 왜 네 옆에 앉은 거냐?”

 “이 자식아! 나도 나름 괜찮은 남자거든!”

 “근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 표정인 거냐!”

 “그래도 라영이 옆이 좋긴 좋았어. 근데 네가 라영이 빼앗아갔잖아! 죽을래?”

 “내가 일부러 그랬냐? 그럼 너도 나처럼 잘생기던가! 악!”    

 

 영만이는 진심을 담아 내 등을 쳤다. 말라서 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지렁이도 꿈틀대는 것이 이런 건가... 근데 나 아직 다리 완전히 다 안 나았다고!     


 “근데 라영이 옆에 앉으면 뭐가 그렇게 좋냐?”

 “장미꽃 옆에 앉아 있으면 안 좋을 수가 있냐!”


 영만이도 우문현답이란 걸 할 줄 아는 것 같다.    

 

 “근데 너 병원 안 가 봐도 되겠냐? 같이 가주리?”

 “됐다. 가던 길 가라.”


 영만이는 두 번 물어보지 않고 쿨하게 교실을 떠났다. 한 번 더 물어보면 같이 병원 가달라고 할랬는데...   

  

 씁쓸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옮기고 있을 때 뒤에서 말이 들려온다.  

    

 “병원 갈 거지? 같이 가줄까?”

 이 익숙한 목소리는 미래다.


 혼자서 병원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몇 분 걷고 나니 생각보다 힘이 든다.     


 “진짜? 같이 가줄 거야?”

 “응. 근데 너 은따더라?”

 “뭐? 아니거든? 나 반장이야!”

 “반장이면 뭐 해. 아까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 때 아무도 네 이야기 안 하던데? 아니다. 영만이는 너 생각해서 네 아이스크림까지 먹더라.”

 “후...”


 영만이 이 새끼...


 “얼른 병원으로 가자. 진료 끝나고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너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는 거야?”


 나만 사주는 건 줄 알았는데 미래도 내 거랑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아니. 오늘 아이스크림 처음 먹는 거야.”

 “엥? 아까 담임이 사준 거 안 먹었어?”

 “응”

 “왜?”

 “그냥. 굳이 먹고 싶지 않더라고.”

 “혹시 내 걱정하느라 그런 거야?”

 “헛소리 하는 거 보니까 이제 다리 안 아프지?”


 역시 미래랑 노는 건 재밌다.     


 “근데 너 효석이 옆에 앉았더라?”


 미래가 많은 남자들 중에서 왜 효석이 옆에 앉았는지 정말 궁금했다. 미래가 효석이처럼 말없는 모범생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정말 효석이 옆에 앉으면 농담 한 번 못하고 공부만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효석이를 선택했는지 물어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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