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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Aug 02. 2023

18화 - 미래는 짜장면을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미래는 아이스크림 먹느라 바쁜 건지 쉽게 내 질문에 대답할 것 같지 않아서 다시 한번 정확하게 물어봤다.


 “효석이 괜찮잖아. 말이 많지도 않고, 차분하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옆에 앉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렇구나.”


 뭔가 씁쓸한 감정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렸다. 미래가 나와 정반대 성향의 효석이를 선택했다는 건 나와 짝꿍이었던 것이 별로였다는 뜻일 테니.     


 “넌 행복하겠다?”


 미래는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막으려 혀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나? 뭐가?”

 “네 옆에 라영이가 앉았잖아?”

 “응. 그렇더라. 그런데 왜 행복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려 했지만 똑똑한 미래는 분명 내 표정 변화를 읽었을 것이다.


 “너 라영이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여자가 옆에 앉았는데 당연히 행복하지.”


 난 대답 대신 콘 끝에 묻어 있는 초콜릿을 열심히 먹는 척했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부터 나는 라영이 옆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이건 어떤 기분일까..? 꿈에 그리던 라영이었지만,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보름달에게 간절하게 빌었지만... 정작 같은 반이 되고 나서 제대로 말 한 번 하지 못했다.


 학기 초 전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효진이 사건이 있었고, 짝꿍 정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선택한 미래는 라영이를 잊게 할 만큼 최고의 짝꿍이었다. 미래와 대화를 나누는 건 즐거웠고, 수업에 집중하는 미래를 보면서 나도 꽤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제 그 짝꿍이 미래가 아닌 라영이다.     

 

  “안녕?”


  라영이는 나보다 먼저 교실에 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영이는 늘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왔던 것 같다.


 “왔어? 다리는 좀 어때?”


 어제 칭칭 감았던 붕대를 떼버려서 인지 등굣길에 내 다리의 안부를 묻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라영이는 날 보자마자 내 다리의 안부부터 묻는다. 이게 아름다운 사람의 품격인가.     

 아직 담임이 안 왔음에도 교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새로운 짝꿍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등교하자마자 미래와 폭풍 수다로 하루를 시작했던 나도 몇 마디 못하고 있으니까.    

   

 1교시는 수학 시간이다. 선행 학습을 너무 많이 해버려서 수학 시간이 재밌지는 않다. 그래도 그냥 수학문제를 푸는 것 자체는 재밌다. 하지만 이미 아는 문제를 저렇게 천천히 설명하고 있는 걸 듣는다는 건 너무 시간 낭비다. 그래서 나는 수학 시간이면 열심히 다른 수학 문제를 푼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수학쌤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라영이가 말을 걸어온다.


 “유준아! 근데 아까 쌤이 설명해 줬던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혹시 이 문제 푸는 거 알려줄 수 있어?”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쉬어. 아까 쌤은 이 방법으로 푼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내 방법으로 풀면 훨씬 간단해.”     


 수학은 내 주특기다. 나는 문과임에도 이과 친구들도 한 번씩 내게 수학을 물어보러 올만큼 수학에 자신이 있다. 라영이가 물어본 건 어렵지 않은 문제다. 그 어느 때보다 최선과 정성을 다해 설명해 줬다. 엇! 그런데 설명해 주다 보니 라영이랑 생각보다 많이 가까이 붙어있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미래가 힐끔 내 쪽을 쳐다본 것 같았다. 효석이와 미래는 쉬는 시간인데도 계속 책을 보고 있다.      


 “고마워. 너 수학 잘한다고 들었는데 대단한 것 같아. 네가 알려준 방법대로 하니까 진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네.”

 “뭐 이 정도 가지고...”


 아직 라영이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짝 천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대답했다.


 “앞으로도 한 번씩 물어봐도 돼?”

 “당연하지! 두 번씩 아니 세 번씩도 돼!”


 라영이와 한걸음 가까워진 것 같다. 수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모르는 문제가 하나도 없도록!     


 ***     


 4월 14일 블랙데이는 참으로 잔인한 날이다. 초콜릿 못 받은 것도 서러운데 그 기념으로 짜장면을 먹으라니. 이건 분명 짜장면 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날임이 분명하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절묘한 주입식 광고로 11월 11일에는 빼빼로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오늘은 짜장면을 먹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조금 억울하기는 하다. 발렌타인 데이는 방학이었고 화이트 데이는 개학한 이후 아닌가? 방학인데 굳이 연락해서 초콜릿을 주려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게다가 이번 화이트데이는 토요일이었다. 학교도 가지 않는데 굳이 따로 불러서 사탕을 줄만한 사람은 라영이 뿐이었지만... 라영이랑 말도 몇 마디 못 나눴던 상황이라 포기했었다. 물론 사실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애인 없는 남자애들이 주도한 축구 시합에 끌려가서 오후 내내 축구를 하기도 했고...     


 난 얼굴 덕분에 인기는 많았지만 충격적 이게도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받지 못했다. 물론 발렌타인 데이는 할아버지 제삿날인데 주말까지 끼어있던 터라 3일 전부터 지방에 있는 할머니댁에 내려가 있긴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발렌타인 데이에 내가 초콜릿을 못 받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초콜릿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그래서 누구랑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이것이다. 가뜩이나 처량한 날에 남자끼리 모여서 짜장면을 먹고 싶지는 않은데... 누가 좋을까? 이럴 때 떠오르는 건 역시 미래다. 미래도 오늘은 짜장면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마침 복도에서 미래와 딱 마주쳐서 바로 말을 건넸다.     


 “오늘 저녁에 뭐 해? 시간 되면 나랑 저녁 먹을래?”

 “좋아! 오늘 마침 학원 안 가는 날인데. 근데 오늘 뭐 먹지? 맛있는 거 먹자!”

 “당연히 짜장면 먹어야지! 오늘 블랙데이인 거 몰랐어? ”

 “오늘 블랙데이였어? 헐... 전혀 몰랐네. 근데 어쩌지? 나 짜장면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은데.”

 “왜? 어제 짜장면 먹었어?”

 “아니. 난 자격이 안 되니깐. 난 화이트데이에 사탕 받았거든.”


 2학년 4반이 되고 나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


 “누구? 누가 너한테 사탕 줬는데? 우리 반이야? 다른 반인가?”

 “이따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넌 짜장면 먹어. 난 볶음밥 먹으면 되지.”   

  

 짜장면은 맛있다. 이모 탕수육과 함께 짜장면을 먹고 싶었지만 내 용돈으로는 무리다. 그래도 허름한 이 가게 짜장면은 일품이다. 하지만 내 기분은 씁쓸하다. 미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내 여자 친구인 것도 아닌데 미래가 사탕을 받았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걸까...     

 “그래서 누가 줬는데?”

 “응? 아... 사탕. 그냥 예전부터 알던 남자애가.”

 “전부터 알던 남자애? 나도 아는 애야?”

 “그렇지.”

 “누군데? 너 좋대?”

 “좋으니까 줬겠지? 궁금해?”

 “막 궁금하기보다는... 조금.”     


 궁금해하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미래는 뜸을 들였다. 하지만 미래 성격상 더 이상 밀당은 없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애가 줬어.”

 “네 옆에? 네 짝꿍? 효석이?”

 “응. 효석이가 줬어.”

 “대박!”     


 공부 밖에 모를 것 같아 보이던 효석이가 사탕을 줬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 모범생 효석이가 사탕을 줬다고? 근데 작년에 너네 둘은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같은 반 된 지 2주 만에 너한테 초콜릿을 줬어? 책만 보는 그 효석이가?”

 “사실 효석이랑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어. 효석이 아빠랑 우리 아빠랑 친한 친구시거든.”

 “효석이 아빠도 의사야?”

 “아니. 효석이 아빠는 대형 로펌 대표 셔. 우리 아빠 병원이 가끔씩 소송 같은 거 걸리는데 그러면 효석이 아빠 회사에 맡기지.”

 “헐... 효석이 아빠가 그 정도였어? 하고 다니는 걸로 보면 전혀 그렇게 안 느껴지던데...”

 “효석이는 어릴 때부터 그런 거 별로 관심 없어했지. 책만 좋아했고.”

 “아...”

 “효석이가 우리 집 옆 동에 살거든. 화이트데이에 잠깐 집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사탕을 주더라고.”

 “옆 동에 산다고? 그럼 너도 밸런타인 데이에 효석이한테 초콜릿 줬어?”

 “근데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고만. 빨리 짜장면이나 먹어. 다 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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