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에 관하여 - 취미가 필요해
안녕하세요 휴리릭(Heuriric)입니다.
오늘의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취미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죠.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들에게 힐링을 위한 취미는 필수입니다. 유부남들도 당연히 취미가 있습니다. 결혼 전부터 하던 취미를 계속 이어가기도 하고, 결혼하고 나서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취미의 영역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취미의 종류에 따라 그 취미가 결혼 생활에 득이 되거나 해가 될 수 있어요.
1. 결혼과 취미
결혼을 하면서 결혼 전에 하던 취미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배우자와 함께 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원래 영화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와이프가 영화를 좋아해서 주말에 꽤 자주 집에서 영화를 봤어요. 결혼할 때 와이프가 TV만큼은 꼭 큰 걸로 사야 한다고 해서 큰 TV를 놓았더니 집에서 영화를 볼 맛이 나더라구요. 연애 때처럼 꾸미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필요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으면서 영화를 보니까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좋더라구요. 대신 제가 열심히 하던 야구 동아리는 참석을 전보다 자주 못하게 됐죠. 야구 시합은 주말에만 있는데, 장인어른 생신이라던지 그런 이벤트가 있으면 야구를 못 가게 되잖아요.
그러다 아기가 생기니 영화도, 야구도 둘 다 못하게 되더군요. 아이가 얼른 커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2. 남자들의 취미 - 1) 스포츠
남자들이 많이 하는 취미 중 대표적인 것이 스포츠입니다. 남자들의 3대 토크 주제 중 하나죠. 종류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야구, 축구 같은 구기 종목부터 스키 같은 겨울 스포츠도 있구요. 클라이밍, 자전거도 있어요. 종류는 다양해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부터 하고 있는 야구를 예로 한 번 설명드리죠.
사회인 야구 경기는 대부분 주말에 합니다. 직장인들이 평일에는 시간 내기 어렵다 보니 그렇습니다. 야구는 시합을 하려면 한 팀당 최소 9명이 필요한데 평일에 그만큼의 인원을 모으기는 어렵거든요.
야구 경기는 보통 1경기당 2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순수한 경기시간만 2시간이고, 집에서 경기장까지 이동시간, 경기 전 준비시간, 경기 후 정리시간, 경기장에서 집까지 이동시간까지 더하면 최소 한 나절은 걸립니다. 야구장은 부지가 넓어야 하는데, 넓은 부지를 시내에서 확보하기 어려우니 대부분 도심 외곽에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 먼 경우가 많죠. 여기에 경기 후 식사나 뒤풀이에 참석하면 몇 시간이 또 추가됩니다. 토요일 오후 경기는 교통체증까지 더해져서 이동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근데... 야구는 재밌어요. 아침 9시 경기도 거뜬히 갑니다. 출근할 때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너무 힘든데 야구 가는 날에는 아침 일찍 기가 막히게 눈이 떠집니다. 문제는 야구를 끝내고 집에 온 후에 생깁니다. 너무 피곤해요. 당연하겠죠. 일찍부터 일어나서 뛰고 왔으니까요. 근데 그 날 야구 성적이 안 좋다? 기분까지 다운되어 있습니다. 설거지 안 된 그릇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 보이는데... 희미하게 보여요. 눈이 자꾸 감겨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해요.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샤워하고 일단 소파에 잠깐 눕습니다. 그러다 부인님의 눈치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듭니다. 일찍 일어났으니 낮잠은 꿀맛입니다!
부상의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어요. 아까 경기 중에 다리를 살짝 삐끗했더니... 청소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아... 또 잠깐 눈을 감습니다.
돈도 좀 들어갑니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장비가 뒷받침돼야 하거든요. 직장인들이 야구가 잘 안 되잖아요? 그러면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장비를 바꿔요. 현질을 하는 거죠. 야구 장갑만 새로 사도 다음번에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야구부를 유지하려면 회비도 내야 하는데, 사회인 야구부는 생각보다 회비를 많이 냅니다. 야구 리그를 참가하고 동호회를 유지하는데 돈이 많이 들거든요. 1년에 최소 몇 십만 원 정도를 보통 내죠. 운동 끝나면 또 치맥 먹고 이러느라 회식비도 꽤 들어갑니다.
근데... 취미로서의 스포츠가 좋은 면도 엄청 많아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런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죠. 전력 질주해서 1루에서 세이프되면 기분까지 상쾌합니다.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넓은 운동장에서 한바탕 뛰고 소리 지르고 나면 몸과 마음이 맑아져요. 그리고 또 하나! 유부남에게 안전(?)합니다. 보통 야구 동호회 보면 많아야 1,2명의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다 남자예요. (대학교 야구부가 이 정도고, 사회인 야구부는 매니저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경기장은 드넓은 곳에 환하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아주 혹시 모를 위험성이 완전 차단됩니다. 유부남에게 있어 야구란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도 챙기고, 거기에 안전하기까지 한 아주 훌륭한 취미라고 할 수 있죠.
3. 남자들의 취미 - 2) 게임
다음으로 남자들이 많이 하는 취미, 게임입니다. 고급지게 말하면 ‘e스포츠’.
요새 남자 후배들이 저한테 종종 물어봅니다.
“형, 혼수로 게임용 컴퓨터 하나 맞추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한 200만 원 정도? 여자들이 명품 백 하나 사듯이 저도 하나...”.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완전 강추! 무조건 결혼 전에 사야 한다. 결혼하면 못 사! 나중은 없다 무조건 질러!!”
사실 아직까지도 게임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많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우린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게임과 함께 살았습니다. 갤러그라는 게임 아시나요?(본인도 모르게 “예”라고 대답하는 순간, 나이 추정이 완료되었습니다 ㅎㅎ) 슈퍼마리오는요? 우리나라에 PC방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을 1997년 정도로 보는데, 그 전에도 우리는 이미 무수한 게임을 하며 살았습니다. 화질, 용량, 기기의 차이가 조금 있었을 뿐이죠.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고 PC방이 전국에 깔리면서 우리나라 게임의 수준이 급격하게 올라갑니다. e스포츠의 시작을 알렸던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해서 지금의 롤에 이르기까지 게임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저 옛날, 오락실에서 몰래 게임하다가 엄마한테 뒷목 잡혀서 끌려 나와 본 적 있으신가요? 부모님 잠든 틈을 타서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소리 지르는데도 마우스 못 놓아본 적 있으신가요? 엄마한테 맞으면서도 마지막 리버 드랍을 해냈던 그 시절... 여하튼 이렇게 부모님한테 혼나는 기억과 게임은 오버랩되는 경우가 많아서 여전히 게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을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200만 원이나 주고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유부남의 취미로서 게임은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습니다. 먼저 집에서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유부남에게는 엄청난 장점이 되죠. 집을 안 나가도 된다는 것. 일단 와이프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남편은 취미 활동 중이지만 급할 때 언제든지 부를 수 있죠. 반대로 유부남도 그만큼 와이프에게 허락받기가 쉬울 수 있어요. 와이프 드라마 볼 시간에 나는 게임하면 되니까요. 밖에 안 나가니까 혹시 모를 사고의 위험성이 사라지고, 게다가 돈도 별로 안 듭니다. (물론 합리적인 수준의 현질만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고 요새 게임들을 보면, 혼자 하지 않고 여러 명이 한 팀이 돼서 하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몇 시에 게임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그래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최소한의 사회성이 있다는 거죠. 남편이 친구가 있고, 원만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게임 친구들이 또 생각보다 의리가 있어요. 물론 이 의리가 발목을 잡아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는 부작용도 종종 가져오기는 하지만...
물론 이런 장점들이 단점들로 둔갑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건, 바꿔 말하면 아무 때나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집안일을 미루고 게임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들 수도 있어요. 일단 초창기 컴퓨터 세팅 비용이 많이 듭니다. 롤 같은 고사양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세팅을 하려면 (주로 '맞춘다'라고 표현하죠) 꽤 거금이 들어가죠. 그래도 초기 비용만 해결하면 그다음부터는 전기세 정도밖에 돈이 안 들어가는데... 문제는 현질(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것)의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제가 앞서 스포츠의 단점 중 하나로 장비 구입에 돈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똑같습니다. 인간은 성장하고 싶어 하거든요. 돈을 조금만 더 쓰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내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월급 받았는데, 그 월급으로 이 정도도 못 써?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래서 와이프가 잠든 틈을 타서 새벽에 몰래 현질을 하죠. 그렇게 야금야금 지르다 보면 언젠가 와이프에게 덜미를 잡히게 될 가능성이 있죠.
4. 다시 취미와 결혼
스포츠나 게임 외에도 수많은 취미가 있어요. 취미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백번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유부남의 입장에서는 와이프랑 같이 하는 취미 1개, 혼자 하는 취미 1개, 이렇게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따로 또 같이.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와이프랑은 집에서 영화 보는 취미를 공유하고, 밖에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야구라는 취미를 하나 더 즐기는 거죠. 빡빡하고 피곤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힐링은 필요하니까요. 편하고 즐거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필요하니까요. 결혼 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 취미라면 배우자와 서로의 취미를 인정해주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취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잘 풀고, 다시 가정생활에 충실하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니까요.
제가 하고 있는 야구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곧 야구리그가 시작해서 조만간 첫 경기가 있을 거라고 하네요.
"여보야, 나 개막전만 좀 다녀와도 될까?! 나 진짜 경기만 뛰고 후다닥 집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