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와 아빠 친구 아들

다 때가 있다!

by 휴리릭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고 당연하게 두 발로 걸어서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14개월 된 아들을 보며 그 당연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걸음마. 어린아이가 걸음을 익힐 때 발을 떼어 놓는 걸음걸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더군요. 그 걸음마를 하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1. 당연함의 기준


아기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만 해도 아기들은 돌이 되면 다 걷는 줄 알았습니다. 배밀이나 기어가는 것에 대한 정확한 시기는 잘 몰라도, 돌이 되면 아기는 걷는다 라고 제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나 봅니다.

제 아들은 옹알이나 손가락을 사용하는 건 평균은 했던 것 같은데, 몸을 움직이는 건 처음부터 조금 느렸어요. 백일이 지나면 목을 가눈다고 들었는데, 120일이 넘어서야 목을 가눴거든요. 배밀이와 기어가는 것도 다른 아기의 평균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걷는 것도 당연히 평균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만 14개월을 다 채웠지만 아직 걷지 못하고, 신나게 기어 다니고 있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키즈카페 같은 곳을 가지 못해 비슷한 시기의 아기들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론상으로 보면 제 아들이 걷는 건 평균보다 늦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2. 걸음마 걸음마


13개월 때 아들이 혼자 서 있다가 한 발을 떼어 앞으로 가는 걸 봤어요. 너무 신기해서 박수를 치며 한 번 더 시켜봤죠. 하지만 아들은 바로 짜증을 내며 거부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루에 한 번 이상 걸음마 연습을 시켜봤어요. 걸음마 보조기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제가 직접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 보기도 하구요. 이렇게 하다 보면 금방 걷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났는데 정말 똑같더라구요. 연습한 시간과 노력 대비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게다가 연습도 제 뜻대로 시키지 못한 적도 많았어요. 한 걸음 내딛다가 앉아버린 경우도 많았거든요. 아예 처음부터 일어서지 않는 경우도 많았구요. 자식은 부모 뜻대로 안 된다더니 벌써부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 뒤로부턴 그냥 생각날 때 가끔씩 합니다. 뭔가 아들이 의지를 보인다고 느껴질 때 말이죠. 물론 이것도 저 혼자 추측한 것이지만요.


3. 조급함과 욕심


생각해보면 목을 가누는 것도, 배밀이나 기어가는 것도 시기에 별로 집착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싶었고 평균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결국 다 했거든요. 걷는 것도 사실 그렇게 기다리면 되는 것인데 아기가 크고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지는 단계가 되고 나니 저도 모르게 욕심이 났나 봅니다.

수능을 망쳐서 재수를 하는 학생들에게 흔히 그렇게 말하잖아요. 긴 인생에서 1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걷는 건 1년도 아닌 길어야 몇 달 차이일 텐데 저도 모르게 조급해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들이 한 발 내디디니 저도 모르게 기대감에 부풀어 아들에게 무리한 걸음마를 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4. '아친아'의 주체 변경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겠죠.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면 평균 같은 것도 없었을 테니까요. 육아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된 것도 영향이 있겠죠. 대부분 자식이 잘하는 것, 남들보다 성장이 빠른 것을 자랑할 테니까 그것만 보면 내 자식이 뒤쳐지고 있다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아친아(아빠 친구 아들)는 벌써 걷는다는데, 마스크도 잘 쓴다는데 하면서 저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 있었던 거죠.

아주 잠깐이었지만, 제가 아들로서 한 때 엄친아 소리를 들었을 때를 돌이켜 보면 그때는 저만 열심히 노력해서 저만 잘하면 됐거든요.(정말 짧은 시기였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아닌 부모의 입장이 되니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일단 제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다른 아기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비교라니요. 행복의 주체, 삶의 주체가 내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그 기준을 남에게 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걷는 게 뭐라고 이러고 있다니 잠깐 제 자신이 한심해졌답니다.


5. 다 때가 있다.


며칠 전에 아들이 다섯 걸음을 연속으로 내디뎠습니다. 아, 비교하지 말고, 욕심과 기대를 버리자고 조금 전까지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걸음 수를 세고 있었네요. 다시 반성합니다.ㅎㅎ

언젠가 때가 되면 걷게 될 것이고, 어느 순간 걷는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기가 오겠죠. 아들이 처음 태어나서 목 조차 가누지 못한 때가 불과 11개월 전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의 아들을 보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모습이니까요.

다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그때를 기다리며 기어가는 아들과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놀아줘야겠습니다.




엇,,, 대박입니다. 방금 일곱 걸음을 연속으로 걸었습니다... 아... 반성 또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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