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연애소설] 사랑이 곱하기 될까요..?

곱하기 될까요

by 휴리릭

3년 전, 대학교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윤아를 처음 만났다. 전공이 달라서 내 담당 멘티는 아니었지만, 다 같이 모여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윤아와 가까워졌다. 윤아는 신입생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멘티였다. 멘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 보였으니까. 생각의 깊이도 그렇고.


"혹시 오늘 바빠요? 혹시 올림픽 공원 가본 적 있어요?"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던 나른한 월요일 오후. 윤아에게서 문자가 왔다. 뭐가 그리 조심스러웠는지 문자에 혹시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가 있다.


서울에 올라와서 생활한 지 벌써 몇 년이 되었지만 올림픽 공원을 가본 적은 없다. 지금 사는 곳에서 조금 멀기도 했고, 전 여자친구는 공원 같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가볼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아무런 계획 없이 급하게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2학기가 막 시작된 9월이라 아직 더운 날씨였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한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우연히 2인용 자전거를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같이 자전거를 탔다. 연인들만 탄다는 자전거라 알려져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즐기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디선가 화려한 불꽃이 보였다. 무슨 행사를 하는 듯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우리는 그 분위기에 취해 9월의 밤을 차분히 걸었다.


계속 걷다 보니 한 번씩 윤아와 살짝살짝 부딪히곤 했다. 그러다 윤아의 손가락이 내 손에 잠깐 잡혔다. 윤아의 손가락은 내 손에 잠시 머물러 있었지만, 난 서둘러 내 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가 좋았지, 윤아가 좋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윤아를 다시 만났다. 윤아를 보자마자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위화감의 정체는 윤아의 손가락에 있었다. 전에는 없던 반지가 있었던 것이다.


윤아는 남자친구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집착이 좀 있어서 서둘러 커플링을 사줬다고 했다. 그런데 멘토링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있는 과 후배가 윤아와 같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 아, 저렇게 둘이 사귀는 거구나... 신기하네...


윤아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우리는 종종 만났다. 우리가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만난만큼 윤아는 종종 멘티로서 멘토인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고는 했다. 상담의 대부분은 윤아의 남자친구에 관한 것이었다. 집착이 심한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윤아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괜한 의심과 오해를 살까 봐 우리 둘이 만나는 것도 그 후배 몰래 해야만 했으니까.


윤아가 그 후배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 후배가 윤아를 좋아해서 사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연애 경험이 없고 착하기만 한 윤아는 그 후배에게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연애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윤아의 연애 상담을 해주면서 내가 그 후배와 반대되는 성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윤아 남자친구라면 훨씬 더 윤아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윤아가 바라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바로 나인데...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을 황급히 지워내느라 애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엠티를 가는 것이 결정됐다. 그리고 내가 엠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윤아는 내게 정말 기대된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엠티 준비를 하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윤아가 온다는 것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신경이 쓰인다면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준비해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엠티는 즐거웠다. 윤아는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고,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웃어주는 윤아를 보는 것이 행복했다.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윤아에게서 느껴지는 또 한 번의 위화감 때문이었다. 윤아의 손가락에 반지가 없었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안 된다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엠티 와서 잃어버릴 수 있으니 일부러 반지를 안 끼고 왔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난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고, 더 신나게 게임을 진행했다.


사실 이번 엠티를 위해 준비해 온 비장의 게임이 하나 있었다. 윤아가 온다고 해서 내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서 야심 차게 준비한 추리게임이었다. 마침 윤아를 포함해 게임하기 적절한 인원이 모여있었고, 난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합류했다. 하지만 결국 그 게임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이 되어버릴까 봐 나도 모르게 걱정했던 것 같다. 오늘 모든 걸 다 보여주면 윤아에게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을까 봐 망설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아를 의식했던 엠티의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을 때, 윤아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사느냐고. 내면의 깊이가 나보다 깊은 윤아는 내게 적절한 대답을 해줄 것만 같았다.


"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태어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의미가 어떤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각자에게 있을 거라고 믿거든. 오빠도 분명 태어난 의미가 있을 거야."


윤아다운 진지한 대답이었다. 내가 태어난 의미라...


우정이 더하기라면 사랑은 곱하기다. 우정은 내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다면 설령 상대의 마음이 0이라도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사랑의 총합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니까. 내 마음이 아무리 가득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이 0이라면 그 사랑은 결국 0이 돼버린다. 짝사랑인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이 마이너스라면 그 사랑은 매우 심각한 상태가 될 것이고. 대신 상대의 마음도 가득하다면 그 사랑은 무한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윤아를 향한 내 마음이 점점 채워져 간다. 윤아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의 마음은 곱하기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윤아의 손가락에서 사라진 반지의 진실도 궁금하고.


이제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유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왜 사느냐는 내 질문에 윤아는 정답을 찾아주고 싶어 했지만... 사실 윤아가 그 질문의 정답이었다.



곱하기 될까요

(원곡 : 죽어도 못 보내 song by 2AM)


무언가 허전한 손가락

희미하게 남은 자욱

혹시나 하는 기대감


평범한 여행인데 똑같았을텐데

그대 올 거란 그 말을 듣고서부터 달랐어

그대가 있어서 특별해져

그래서 난


그대 곁을 지켜 그대 노래에 난 춤춰

뭐라하건 오늘만큼은 난 그대의 광대

하지만 오늘 나 최선을 다하지 못해

보여줄게 더 없을까봐 마지막 될까봐



우연히 시작된 인연이

진심을 타고 이어져

이렇게 가까워졌어


달빛을 머금은 푸른호수는

우리를 더 따사롭게

세상을 더 예쁘게

순수함을 품은 그대 두 눈이 날 보네요


푸르른 가을빛 둘이 같이 탄 자전거

인생처럼 힘들었지만 함께 페달 밟아

하늘을 수놓은 불꽃도 좋은 음악도

곁에 있는 그대를 웃게해 내 맘은 설레임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태어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내겐 그 의미가 그댄걸


곱하기 될까요

우리 맘이 커질까요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마음은 달려가

기대려왔죠 나

오늘을 긴 시간동안

우리 맘이 곱하기 될는지

그대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