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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Nov 29. 2021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데...

+ 여자배구 V리그 11월 4주 리뷰

 야구는 9명의 선수가 수비를 합니다. 8명은 홈플레이트 쪽을 보지만, 1명은 홈플레이트와 반대 방향은 외야를 보고 수비를 합니다. 야구에서 그 포지션을 '포수'라고 부릅니다. '포수'를 다르게 부르는 명칭 중 하나가 '그라운드의 사령관'입니다. 사령관은 군대를 지휘하고 통솔하는 최고 지휘관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만큼 포수 포지션이 수비하는데 핵심이라는 말이겠죠.


 배구에도 야구의 포수와 같은 포지션이 있습니다. 배구는 한 코트에 6명의 선수가 들어가서 경기를 합니다. 그런데 공격을 할 때면 6명 중 1명은 다른 방향을 봅니다. 5명의 선수는 상대 진영을 보지만, 그 1명은 옆이나 뒤를 봅니다. 그리고 그 포지션을 우리는 '세터'라고 부릅니다. 세터는 리시브를 받아 공격수에게 공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공격을 할지 결정을 하죠.


 그래서 '세터'를 '코트 위의 지휘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휘자의 역할은 음악적 표현에 필요한 모든 해석을 연주자에게 지시하면서 각 악기의 화음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거잖아요? 세터 역시 코트 안의 선수들을 지휘하여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어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격은 세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반적인 배구 공격은 상대 서브를 리시브 - 토스 - 스파이크로 이루어집니다. 세터는 여기서 토스의 역할을 맡죠. 리시브가 된 공을 공격하는 선수에게 올려주는 거죠. 어떤 공격수에게 올려줄지는 세터가 결정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라고 하더라도 세터가 올려주는 공이 형편없다면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 어렵습니다. 


 세터는 경기의 흐름을 읽고 우리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의 능력과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선의 공격수를 선택해서 그 공격수에게 토스를 올려줄 수 있으니까요. 상대방을 속이거나 허를 찌르는 토스를 올린다면 공격이 성공할 확률은 확 올라갑니다. 3인 블로킹이 있는 것과 1인 블로킹이 있는 건 차이가 크죠.



 그래서 세터는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의 핵심입니다. 좋은 세터 없이 감독은 본인의 전술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감독과 세터는 가장 열심히, 가장 잘 소통해야 합니다. 빠른 배구를 추구하는 감독이라면 빠른 토스는 필수겠죠. 감독이 코트 밖의 지휘자라면, 세터는 코트 안의 지휘자입니다.



세터가 흔들리면 팀이 흔들립니다.


 세터가 코트의 지휘자라고 말씀드렸죠. 지휘자가 흔들린다면 과연 제대로 된 음악이 연주될 수 있을까요? 연주 직전에 지휘자가 교체된다면 연주자들은 과연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주전 세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전 세터가 흔들리면 팀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시즌,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흥국생명은 강한 전력을 보유했다고 평가됐습니다. 실제로 개막과 함께 연승을 이어나가며 선두자리를 굳게 지켰죠. 하지만 쌍둥이 폭력 사태와 함께 흥국생명은 급격히 몰락합니다. 몰락의 큰 이유 중 하나는 주전 세터가 사라진 것이었죠. 백업 세터였던 김다솔 선수가 급하게 투입되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김연경 선수를 포함해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볼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했기 때문이죠. 특히 전력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와 세터의 호흡은 정말 중요한데, 지난 시즌 흥국생명은 시즌 도중 주전 세터와 외국인 선수가 모두 교체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팀 성적이 좋다면 그 팀은 매우 높은 확률로 좋은 세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리그 1위 현대건설의 경우, 김다인 세터가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김다인 선수는 2017-2018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했죠. 김다인 선수는 앞서 언급한 폭력 사태의 세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그 선수가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조금씩 활약하기 시작했죠. 조금씩 경험치를 쌓고 도쿄올림픽 직전에 열린 VNL에서 국제무대를 경험하면서 실력이 급성장합니다. 그리고 세터로서 1라운드 MVP인 야스민 선수뿐만 아니라 양효진, 정지윤 선수 등 다양한 선수들의 공격 루트를 활용하면서 이번 시즌 현대건설의 전승을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2위를 달리고 있는 KGC인삼공사의 주전 세터는 염혜선 선수입니다. 염혜선 선수는 도쿄올림픽 주전 세터였기에 굳이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별명이 '염치기'(염혜선+양치기)라고 밝힌 적이 있죠. 사실 세터에게 '양치기'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만큼 상대 팀을 잘 속일 수 있기 때문이죠. 상대팀 입장에서는 열 받을 수 있겠지만, 염혜선 선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다시 경기를 하죠. 그런 염혜선 선수의 토스와 함께 KGC인삼공사가 2위를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현직 세터가 만들고 있는 배구계의 논란


 김사니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은 화려한 경력의 세터 출신입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었고, 2014-2015 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활약과 업적 덕분에  그의 등번호 9번은 여자배구 최초로 영구결번되었죠. 은퇴 후 해설위원을 하다가 이번 시즌 IBK기업은행 코치로 돌아왔으나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가 아닌 현 사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IBK기업은행에서 무단이탈한 조송화 선수 역시 IBK기업은행의 주전 세터이자 주장이고, 연봉 2억 7천만 원을 받는 선수입니다. 코트를 지휘해야 하는 세터이자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주장이 무단으로 팀을 이탈했습니다. 갑자기 코트 안의 지휘자가 사라져 버렸으니 팀이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감독과 활발한 소통을 해야 하는 세터 출신 코치와 팀의 주장이자 주전 세터인 선수가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해당 팀뿐만 아니라 여자배구 전체가 뒤숭숭합니다. 지난 시즌 쌍둥이 자매의 큰 사건이 있었지만, 도쿄올림픽 4강 신화와 함께 여자배구는 다시 제자리를 찾고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인해 여자배구가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저를 포함한 배구 팬입니다. 수준 높고 정정당당한 경기를 보고 싶은 팬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경기 외의 다른 곳에서 잡음이 들립니다. 경기 관련 뉴스보다 이 사건과 관련한 뉴스가 더 많은 상황입니다. 해당 팀 경기가 있을 때면 경기 내용보다 오늘은 어떤 인터뷰를 할지, 어떤 새로운 소식이 있을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하루빨리 여자배구가 제자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즌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11월 4주 차 리뷰 - 강중중중약약약


 한국도로공사가 드디어 GS칼텍스를 잡았습니다. 그것도 풀세트 접전, 심지어 마지막 5세트는 듀스까지 가면서 16-14로 승리했습니다. 양 팀 모두 블로킹이 넘치는 경기였습니다. GS칼텍스는 11개, 한국도로공사는 17개를 기록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31득점을 기록한 켈시와 함께 전새얀, 박정아, 정대영 선수가 모두 11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페퍼저축은행까지 잡으면서 상위권을 맹렬한 속도로 추격하고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의 상승세에는 정대영 선수가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정대영 선수는 1981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41세입니다. 정대영 선수의 딸 김보민 양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자 배구선수입니다.(현재 키가 168cm라고 하죠. 참고로 정대영 선수의 키는 185cm입니다.) 정대영 선수는 배구선수 최초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현재 블로킹 1위에 올라 있는 정대영 선수의 활약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블로킹 1위에 올라 있는 정대영 선수


 현대건설은 연승 숫자를 11로 늘리면서 여자부 개막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신기록의 끝이 어디일지, 그 끝이 있기는 할지 궁금해집니다.


11연승 승리인증샷을 날려준 현대건설 선수들 / 이미지 출처 : 현대건설 배구단 인스타그램


 1위와 2위의 승점 차이는 8점 차로 지난주와 같았지만, 2위부터 4위의 승점 차이는 3점에서 2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4위와 5위의 승점 차이는 9점에서 14점을 벌어졌습니다. 1강3중3약 체제가 더 굳어진 느낌입니다.


 이번 시즌 여자배구의 포스트시즌은 남자부와 동일하게 준플레이오프 체제입니다. 3위 팀과 4위 팀의 승점차가 3점 이내일 때만 실시하며, 3위 팀 홈 경기장에서 단판으로 열리게 됩니다. 


여자배구 V리그 11월 4주 차까지 순위



이번 주의 키는 KGC인삼공사입니다!


 KGC인삼공사가 한국도로공사전 패배를 털고 페퍼저축은행을 잡으며 2위 자리를 수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3위 GS칼텍스와 1위 현대건설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2위에서 4위까지 승점 2점 차로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KGC인삼공사가 현대건설을 맹렬하게 추격할지, 아니면 중위권을 더 혼돈으로 빠뜨리게 될지 그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이번 주 KGC인삼공사가 상위권 판도의 키를 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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