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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by 안혜빈

최근에 한 가장 놀라운 발견은 내가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홀로 지내기를 편하게 여겨서 외로움 따위는 나와 상관없는 줄 알았다. 고독을 즐기면 즐겼지 내가 외롭다니?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고독을 즐긴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라고, 사람이라면 누구든 겪는 그 감정을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것일 수 있다는 말을 듣자,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스스로도 몰라본 감정을 이제야 제대로 마주 본다. 처음 겪는 이 감정의 크기가 낯설고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자꾸 다시 차오르는 느낌. 감당해 왔던 것들, 견뎌야 했던 것들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방법을 연습한다. 천천히, 균형을 잡고, 눌러둔 것들을 차분히 인정한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야. 솔직하게, 나는 늘 외로울 거야. 내 삶의 형태와 내 성향 때문에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러니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이 과정 자체를 하나의 성장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신기한 건 이렇게 감정을 인정하면서 자꾸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는 점이다. 아무 계획 없이, 그저 손 가는 대로. 많이 놀랍게도 나는 내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항상 이성적인 사고로 주제에 접근했고, 작업했고, 거기엔 어떤 틀이 있었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도 스스로 어딘가 굳고 정적인 모습처럼 느껴진 건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다이어리에 ‘그냥 그리고 싶은 걸 그려보자’고 썼던 그 말은 나도 모르는 새 마음 가는 대로 그릴 것을 말하고 있던 건지 모른다.


감정적인 걸 흐트러짐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정을 감정 그대로 인정하니 편안해졌다. 흐트러질까 딱딱하게 굳어서 뭉친 마음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진 것 같았다. 홀가분한 것 같기도 하고. 빈 캔버스가 조심스러워서 마구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차츰차츰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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