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4
쉬다 보면 나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내 몸은 좀처럼 좋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당연하다 생각했던 행동들이 마치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있는 듯했다. 세월이 지나 닳아 없어진 톱니바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들 사이에 작은 돌멩이들이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 나는 한 가지 한 가지씩 고쳐보기로 했다. 우선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팔이었다. 적어도 몇 년 전에는 뭘 해도 문제없던 팔꿈치가 아팠다. 진단명은 테니스엘보. 팔꿈치는 1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데에 큰 지장은 없었으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생겼다. 간단한 집안일을 할 때, 밥을 먹을 때, 샤워를 할 때도 나의 움직임을 이 통증이 달리는 자동차에 브레이크를 걸듯 내 행동을 멈추게 했다. 몇 번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으나,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날 기회를 엿보다 방심한 사이에 이 통증은 자신의 존재를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항상 같은 병원을 다니다 결국 다른 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큰 건물의 2층쯤에 있는 병원이었다. 집을 나오니 이제 장마가 시작되려고 하는지,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코로 들어왔다. 병원이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엘리베이터가 전부 먼 곳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잠깐의 시간에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 나는 비상구를 찾아 병원으로 걸어 올라갔다. 안내판에 있던 층은 2층인데 1층의 층고가 매우 높았던 탓인지 어두운 비상계단을 통해 꽤나 올라갔다. 병원이 가까워지는지 그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진해지고 있었다.
진료 등록을 하고 소파에서 잠시 기다렸다. 아침 일찍 온덕에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는 많지 않았다. 곧바로 내 이름이 불렸고 진료가 시작됐다. 주사 치료가 시작되었고 나는 내 몸에 들어오는 그 액체가 궁금하여, 내 팔을 어루만지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인상 좋은 중년남성에게 무엇인지 물었다. 인대 재생을 돕는 주사였다. 보통 힘줄, 인대에 놓는 주사는 그 주사액이 뻑뻑하게 들어가는데, 내 팔은 마치 주사액을 갈구한 듯 흡수해 버렸는데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이 인상 좋은 중년남성과 나는 인연이 있는지 생각보다 빠른 날짜에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렇게 몇 번의 치료를 했고, 조금은 나아진 듯했지만 큰 호전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었던 녀석이 생각났다. 있는지 조차 잊은 음침하게 나의 등에 있던 지방종이었다. 그렇게 떠올리고 나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졌던 불안처럼 더 큰 병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거울을 통해 내 등을 관찰해 보고, 그나마 멀쩡한 팔을 이용해 등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왜인지 이 녀석은 나 몰래 몸집을 키우고 있던 모양이다.
이 뭉친 지방덩어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회사 내에서 꽤나 중요했던 프로젝트를 리딩할 때 발견했었다. 그 원인은 불분명했다. 이래저래 인터넷을 찾아봐도 원인은 알 수 없는 듯했다. 일상이 바빴고 사실 팔 쪽에도 작은 지방종으로 추정되는 것이 생겼었는데, 자연스럽게 사라졌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또 없어지겠지 하고 내버려 뒀더니, 등에 있던 지방종은 무관심이 마치 먹이인양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상태를 이렇게 만든 용의자는 지난날의 과중 업무, 스트레스, 세월이었다. 나는 속으로 범인은 그 안에 있다고 단정 지었다. 그렇게 단정 짓고 나니 손해 보는 느낌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 범인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멀리 도망쳐 더 이상 잡을 수는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하였나? 그때의 스트레스가, 그때의 열정이 그래도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불씨정도는 남겼는지, 고치고 내가 그동안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잡으려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이겠지만.
오래전 그 고생과 억울함의 무게가 줄어 내 몸이 조금은 가벼워 질까 기대하며 나는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던 이 녀석과 이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