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5
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에 기분 좋게 깨어났다. 조금은 늦은 하루의 아침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나쁘지 않았다. 눈을 뜬 후 머지않아 조금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등에 붙어있던 지방종을 떼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집 근처 지방종 제거 수술이 되는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나를 덮쳤다. 지금 수술을 하는 게 맞는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결심한 일.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아 병원으로 찾아갔다. 병원 앞에 오니 왠지 모를 어두움, 찌르는 알코올냄새에 한 번씩 발걸음이 멈춘다. 다른 곳을 또 알아볼 것인가? 아니면 바로 치료를 받을 것인가. 입구로 다가갈수록 발자국에 주저함이 남는다.
묘한 긴장, 떨림으로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와서인지, 하필이면 대기가 없다. 이름이 금방 불리고 세상 평온해 보이는 깔끔한 중년 남성에게 진료를 받게 되었다.
“지방종입니다. 뭐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어요. 제거하시겠습니까?”
중년 남성에게서 의외의 평온하고 안정적인 어조의 말투가 나왔다.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고, 결정했다. 병원을 고르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수술 후 남는 흉터 때문에. 하지만 등에 남는 흉터이기도 하고, 너무 더워지는 날씨덕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에 나는 당일 수술을 하기로 했다.
간단한 절차를 거친 후, 수술실로 향했고, 국소마취와 함께 수술은 진행되었다.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긴장감, 거대함에 비해 그 과정이 너무 간단했다. 간단한 동의서를 작성하고, 수술복을 입은 뒤, 나는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대에 눕는 것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역시 적응이 쉽지 않다. 그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알코올냄새가 몸을 수축시킨다.
“마취하겠습니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과 함께, 몇 번의 따끔 거림이 전해졌고, 바로 수술은 진행되었다.
수술대에 엎드려 눈을 감으니 어릴 적에 학교에서 떠난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두 사람을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눈을 가리고 한 사람은 그 사람을 잘 인도하면서 근처 산길을 걷는 경험이었다. 산길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걸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그리고 유일하게 믿을 수밖에 없는 처음 잡는 친구의 손.
그 손과 나의 다른 감각에만 의지한 체 어둠 속을 걸어나아 가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그 길의 마지막은 이 안대를 벗고 돌아가는 일상이겠지만, 그 잠깐의 순간에 가끔씩 피어오르는 불안에 재미도 있었지만 조금 남다른 경험이었다. 어릴 적엔 단순히 앞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체험이라 생각 들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행위에 아주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경험이다.
눈을 질끈 감은 수술대 위는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보이지 않는 내 등 뒤에서 또렷한 의식 속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오래 묵혀왔던 작은 덩어리를 제거하는 의사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보는 의사에게 내 등 뒤와 나의 몸속을 맡기고 있으니, 왜인지 모를 불안한 기분이 피어오른다. 어쨌든 내가 선택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지만.
다행히 그 불안한 감정은 오래 걸리지 않아 끝이 났다. 그리고 나를 차분히 인도하던 의사 선생님은 내 몸에서 나온 것을 보여줬다. 조직에는 약간의 염증, 그리고 생각보다 크기가 컸다. 조직 검사가 필요하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지방종이 확실해 보인다는 안심의 말을 전해줬다. 그리고 다음 이 중년남성과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병원을 나왔다.
나는 이 덩어리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너무나도 빠르게 제거되는 것을 나는 몇 년을 묵혀놓고 살았다는 것에 조금은 허탈했다. 만약 지방 육종으로 변성이 되었다면, 정말 큰일이었을 텐데,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는 핑계로 나 스스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군데군데 시들어버린 나의 작은 화분의 애플 민트의 줄기처럼 군데군데 조금씩 시들어버린 나를 보며 씁쓸함을 그 차가운 수술대위에 내려놓은 체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