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덜어낼 용기

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6

by Hewii


오랜 장처럼 묵혀왔던 등뒤의 작은 덩어리를 제거하고, 이제 약 2주간 상처를 관리하는 일만 남았다. 무더운 여름이라 염증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쉼 없이 흐르는 땀과 함께했다. 나는 이 흐르는 땀을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어깨통증, 팔꿈치 통증, 그리고 허리통증들이 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하지만 그 방해는 무더위에 떨어진 땀을 씻어낸 뒤의 개운함을 위한 몸부림을 막을 수 없었다. 겨우겨우 씻어냈지만, 행동에 제약이 있는 나에게는 매일 병원을 다녀온 후 해결해야 하는 큰 숙제였다


생각보다 꽤 많이 절개해 수술 부위를 보호하는 밴드가 꽤 컸다. 방수테이프를 붙여보기도 하고 했지만, 그 틈으로 물이 세어 들어갈 수도 있고, 어느 정도 통풍은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은 곤욕일 것이다.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씻을 때에는 최대한 등에 물줄기가 흐르지 않게 씻고, 등은 아내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저녁이 되어 아내가 돌아왔다. 언제나 반갑지만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저녁식사를 하며 언제나처럼 서로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의 부탁으로 물수건을 만들어 와이프는 내 등을 닦아 주었다. 차가운 물수건에 낮부터 쌓여간 찝찝함이 닦여져 나갔다. 아마 얼마 전이었다면, 등을 닦지 못한 채 에어컨의 찬바람만을 의지한 체 괴로워했을 것이다.


낮의 그 중년 의사와는 다르게 맘 놓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아내와 결혼을 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는 일찍 결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는 사랑보다 조건이 있었고, 마치 누가 도장이라도 찍은 듯 사람에게 숫자가 새겨졌다. 그렇게 묵어 굳어버린 사회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 앉아 창백한 모니터와 씨름하며, 여가시간조차 무리한 프로젝트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에 대한 보상은 몸에 쌓인 피로뿐이었다.


그런 와중 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은 조금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결혼식을 준비하려 방문한 웨딩 박람회에서는 촘촘 한 테이블의 예비 신랑 신부 앞에는 빼곡히 써내려 져 가는 수많은 숫자들과 엄청난 대기열을 의미하는 날짜들이었다. 마치 자격을 심사하는듯한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린 삶에는 그런 등급도, 대기표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반항심이라도 생긴 듯 그 자격시험을 거부하기로 했다. 덜어내기로 했고, 노웨딩을 선택했다. 덜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치 오늘 절개된 내 등에서 간단히 떨어져 나간 그 덩어리처럼. 그저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믿고 그 덜어낸 것으로 더 좋은 추억을 만드는 일에 더 집중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작은 집에서 간단한 반지와 몇 장의 사진만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것에 누군가는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후회는 없었다. 우리가 덜어낸 것은 그저 묵어 굳어버린 형식일 뿐이었다. 아마도 나에게 가장 큰 행운,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한 일. 우리는 누가 정했는지 모를 화려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선택하지 않지만 그 선택의 끝에는 분명한 행복이 존재했다.


나는 닦여진 등에 개운함을 느꼈다. 그리고 작은 덩어리가 있던 빈 공간에 더 많은 따뜻함을 채우고 잠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5.가장 소중 함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