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따뜻함은 남아 있었다

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7

by Hewii

이른 아침 아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휴일인데 착각했나?’ 했지만 곧 아내는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따라 일어났고, 아내는 등을 쳐달라며 손짓했다. 나는 아내의 등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내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고 곧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려 애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무엇도 나올 턱이 없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간밤에 먹은 것이 없었다. 빈 속에 위산이 과다 분비 됐나 싶었다. 상비약 없던 집에서 나는 급하게 수술로 인해 먹던 항생제와 소염제에 제산제가 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급하게 제산제만 골라내어 아내에게 줬다. 아내는 물과 함께 그 작은 알약을 삼켰다. 아내가 마신 물은 위장을 휘젓고 다녔는지 곧 게워내고 말았다. 증상이 마치 내가 어릴 적 겪었던 가장 큰 고통 중 손에 꼽는 위경련과 비슷했다.


어릴 적 나는 위경련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짧지 않은 삶에서 손에 꼽는 고통이었다. 한번 고통이 시작되면, 내 안의 누군가가 내 위를 행주로 착각했는지 그 엄청난 악력으로 쥐어짜 내기 시작한다. 마치 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잔인하게 비틀어댔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그 어떤 것도 몸 밖으로 밀어낸다. 몸을 점점 굽히게 되고, 허리는 고통으로 굽은 채로 굳어버린다.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빠른 응급처치를 위해 아내와 집 앞의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는 다행히 통증이 많이 심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허락 없이 위를 비트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배를 움켜쥐어 잘 참아냈다. 하지만 흐린 이 날씨가 아내의 복통을 부추기는 듯하여 원망스러웠다. 우선 빠른 응급처치를 위해 집 바로 앞에 있는 내과로 왔다. 오늘따라 소독약 냄새가 반가웠다. 진료 대기실의 의자가 전부 비어있길 바랐지만 기대와는 달리 두 명의 학생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접수를 하고 곧 진료 대기자 목록에 아내의 이름이 올랐다. 진료 대기 목록은 3개로 분리되어 있지만, 진료가 가능한 의사는 한 명뿐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보며 무심코 나는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응급실로 향하는 것, 혹은 그저 기다리는 것.


나는 아내를 최대한 움직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 응급실뺑뺑이 때문에 꽤 씨끄러웠고,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대기 시간을 짐작하기 위해 진료 대기 중인 대기자들을 살폈다. 그들은 안색은 나쁘지 않았다. 대기시간이 길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진료 목록 화면에 이름만 올라가 있는 진료 중인 환자는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이름은 목록에 멈춰있었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대기실의 학생들에게 부탁을 고민했다. 요즘 많이 나오는 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기밖에 모르는 세대, 이기적 세대. 나는 그들 세대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그들의 거절을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서있었다. 아내의 몸은 점점 구부러졌다. 그 고통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설득시켜보자 하고 우선 병원 간호사에게 대기 순서를 바꿀 수 없냐 물었고, 간호사는 앞의 대기자들에게 먼저 부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내를 한번 본 후, 그 벽을 넘어보기로 했다. 우선 남학생에게 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 안녕하세요. 제 아내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진료 순서를 바꿔 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전했다.


남학생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화면 속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왔고, 나와 눈을 맞추고는 바로 아내를 한번 본 후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우리 옆 소파에 앉아 있던 여학생에게 다가가 똑같이 말했다. 여학생도 작은 화면 속 세상에 몰두하면서도 옆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봤는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내의 이름은 대기자 목록의 맨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진료 중이던 환자가 진료를 끝내고 나왔다. 그리고 아내는 소파에 거의 쓰러져 있었고, 아내의 호흡에는 고통의 신음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곧 아내의 이름이 불렸고, 나는 아내를 부축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진료 침대에 눕도록 권했고 나는 아내를 눕혔다. 의사는 청진기와 함께 아내를 검사했고, 위경련으로 진단했다. 아내는 링거를 맞기로 했고, 나는 진료실에서 나와 대기실에 앉았다.


학생들은 대기 중이었고, 여전히 작은 화면 속 세상에 있었다. 그 학생들은 비슷한 또래인 나의 조카와 비슷했다. 그들에게는 작은 화면 속의 세상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담겨있는 듯했고, 밥을 먹을 때 건 어느 때 건, 그 작은 화면을 놓지 못했다. 학창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던 나의 학창 시절이 그 작은 화면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때와는 많이 비슷한 듯, 다른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에 병원에 있는 것은 웬만해서는 떠올릴 수 없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 같은 머리를 하고, 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아 있지만 외로이 앞을 보고 있는 오래된 그림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행히 내 눈에는 그 이른 아침 진료를 기다리는 그 학생들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가벼운 인사만 전했다.


링거를 다 맞았는지, 아내의 허리는 곧게 펴진 상태로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주사실에서 나왔다. 그 모습을 보니 내 표정도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우리는 병원을 나온 우리는 약을 조제받고, 집으로 향했다. 병원을 나오니 그 흐린 날씨가 강렬히 타오르는 태양을 막아주는 듯했다.


“많이 아팠지? 눈물 날 정도로”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응. 근데 아파서 운건 아니야”라고 아내는 답했다. 그리고 그에 이어 아내는 말했다.

“그냥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나는 답했다.


우리는 그저 손을 마주 잡고 집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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