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8
여름은 천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리쬐던 태양은 높아지는 하늘에 이기지 못해 멀어지고 있었다. 수술부위는 잘 아물었고, 나는 이제 남은 허리와 팔꿈치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 항상 가던 정형외과는 큰 차도가 없었다. 통증 부위에 주사를 맞는 것. 그리고 근육을 약간 풀고 치료는 끝났다. 아마도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질환들로 빠르게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팔꿈치는 잊을만하면 다시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재발했다.
잘못된 운동 자세일까 아니면 무리한 운동일까 생각나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던 터라 이런 갑작스러운 증상들은 이상했다. 흘러간 것은 시간이었고, 변한 것은 나이었다. 망가진 몸에 답답함이 맴돌았다. 한 번에 여러 증상들을 치료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결정할 필요가 있었고, 나는 허리를 우선적으로 치료해 보기로 했다.
몇 달 전 허리 통증으로 방문했던 병원에서는 퇴행성 디스크로 진단했고 심하지 않아 간단한 주사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 허리 통증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얼마뒤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났다. 앉아 있으면 나의 몸은 앉아 있는 행위를 거부하듯 발끝까지 찌릿한 자극이 왔다. 디스크 경험자인 친구는 자신의 증상과 같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디스크 진단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허리 통증이나 이상이 없었다. 큰 문제가 없다던 어깨와 팔꿈치 통증을 늘 치료해 주던 병원과 방문할 때마다 진료와 치료를 하던 의사가 바뀌었던 병원은 내 기억 속에서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마침 추천받은 한의원이 있었고 그곳으로 갔다. 진료 접수를 하고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한의원에서는 정형외과의 알코올냄새가 아닌 달큼한 한약재 냄새로 가득했다. 곧이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담당 의사에게 향했다. 나는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한의사를 상상했지만, 그와 다르게 의사는 젊은 의사였다. 하얀색 가운이 아닌 활동이 편한 진료복을 입고 있었다. 진료실은 좋은 채광과 함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허리와 테니스엘보 때문에 왔습니다. 허리에 통증은 없는데 어느 정도 앉아있으면 발가락까지 저릿한 느낌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믿었던 오랜 연인에 배신당해 흉보듯 그동안의 진료와 치료에 대해 나는 젊은 한의사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진료용 침대에 누워 허리디스크 테스트를 했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팔꿈치는 역시 테니스 엘보였다. 허리는 디스크로 보긴 어렵다고 했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병명이었다.
“우선 허리는 T12 증후군이 아닐까 싶네요. 정확하게는 허리보다 흉추 쪽에서 내려오는 신경이 눌리면서 생기는 증상으로 보입니다. 팔은 테니스 엘보인데 재발했다는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흉추나 어깨 쪽이 굽어있습니다. 몸의 구조적인 문제가 생긴 상태로 운동을 하거나 팔을 사용하게 되면 보통 팔꿈치에 꽤 무리가 많이 가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치료기간이 꽤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흉추부터 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 젊은 의사는 백발의 신령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몸에 증상이 생기고부터, 나는 나의 작은 습관들을 관찰했고, 몇 가지 고칠 점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나에게는 바른 자세가 필요했다. 정보를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며, 안 좋은 습관들을 고치기 위해 꽤나 애썼다. 자세를 고치려 많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키가 큰 편인 나는 대부분의 의자, 책상 등 어떤 평균에 맞춰져 있는 많은 것들이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꽤 큰 편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일상이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 나는 책상과 의자에 몸을 구겨 넣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것들로부터 내 몸은 망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다녔던 회사는 의자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 당시 회사들에게는 좋은 의자는 사치였다. 어느 날은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료가 의자가 너무 불편하다고, 사비를 들여 개인 의자를 회사로 주문하여 의자를 바꿨다. 나는 유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아마 꽤 먼 미래를 봤던 모양이다. 다행히 요즘은 좋은 의자 좋은 책상을 제공하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지만. 나는 회사에서 제공한 그 싸구려 의자에 몸을 구겨앉아 꾸역꾸역 하루 대부분을 그 위에서 보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는가? 인간은 적응보다 변화를 만드는 동물이 아닐까?. 적응을 선택한 내 몸은 질환만 남겨졌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료 부탁드립니다”라고 나는 답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진료 침대에 누웠다. 한의원을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침을 맞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젊은 의사는 내 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기계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초음파 장비였다. 양방 병원에서는 대부분 보여 자연스럽지만, 이곳에서는 조금은 특별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내 몸에는 많은 침들이 꽂혔다. 간단한 침으로 굳은 근육을 풀고, 의사는 다음 치료를 이어갔다. 그 치료는 또 이곳에서는 생소했다. 약침이라 불리었다. 나는 그저 어떤 다른 소재의 침인가 했지만, 주사였다. 나는 그것에 또 놀랐다. 의사는 초음파로 내 흉추를 확인하며, 주사를 놓았다.
나에게 한의원이란 전통을 중시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한의학은 변화해 있었다. 이곳에서도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그 한의사들에 존경심이 들었고 내 앞의, 젊은 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은 세련된 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침 진료가 끝나고 나는 그다음 치료인 추나 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실을 옮겼다.
치료실 침대에 누웠고, 도수치료처럼 전문 도수치료사가 아닌, 그 젊은 의사가 직접 치료를 위해 들어왔다. 나에겐 더욱 신뢰가 갔다. 최근 테니스엘보 치료를 위해 갔던 병원은 간단한 주사치료이긴 하지만, 치료를 위한 담당의가 계속 바뀌었고 차도가 없어 신뢰를 잃었던 터였다. 이 젊은 한의사에게 나의 질환을 반드시 고치겠다는 열정이 느꼈다.
한의사는 촉진을 통해 나의 굽고 굳어버린 몸을 만지며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평소에 잘 뭉치거나 불편했던 곳을 이 젊은 의사는 정확하게 찾아냈다. 틀어진 골반, 흉추, 목, 팔 한 군데씩 뚝뚝 소리가 나며 맞춰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고 부드러워지는 기분을 받았다. 마치 어긋난 톱니바퀴나 제자리를 찾아 잘 물려 작동하는 듯했다.
치료가 전부 끝난 후, 내 몸은 너무나도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저릿한 느낌도 없었고, 이상하게도 몸이 곧게 펴진 느낌이었다. 의사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의 진료를 권했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음 진료를 예약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만약 이 상태로 러닝을 한다면, 그동안 깨기 힘들었던 최고의 기록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앉았다. 통증이 줄어든 기분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가벼운 몸으로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