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9
치료가 효과가 좋은지 발끝으로 전해오는 저릿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줄어 있었다. 이 느낌이 너무 싫어 거의 대부분을 침대 생활을 걷거나, 침대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첫날의 치료가 이 정도라면 금방 좋아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오랜만에 앉은 책상 앞은 심심했다. 게임을 할까 했지만 딱히 손이 가지는 않았다. 손이 가지 않는 것일까? 즐길 수 없는 것일까?
어릴 적엔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게임이 켜졌다. 친구들과 FPS를 하거나 홀로 RPG를 하거나. 딱히 게임을 찾아서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친구들이 하는 게임을 따라서 하게 된 것 같다. 게임이 재미있어서 했던 것인지, 그 안에 친구들이 있어서 했던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수단은 온라인 세상 속이었다.
나는 게임을 잘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했다. 그저 친구들과 눈에 보이는 적을 해치우는 것. 그뿐이었다. 게임은 경쟁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누가 더 잘하는지, 누구 캐릭터가 더 센지 대결했다. 나는 그곳에서 대부분 지는 편이었다. 어떤 요령도 없었고, 딱히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생각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길 뿐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삶을 사는 것에 몰두하게 되면서 게임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가끔은 옛 추억 때문인지 친구들과 함께 했던 게임들을 홀로 해봤지만, 며칠을 가지는 못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나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다. 그런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친구들과 뛰어놀고, 떠들고 그런 즐거움 외에는 몰랐다. 허락된 것은 이유도 모른 채 해야 하는 공부, 독서뿐이었다. 그런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분명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하지만 시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시작하지 못해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에 갇혀 스스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한 친구가 있었다. 꽤나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 친구는 누구보다 아침에 일찍 왔다. 누구보다 일찍 와 공을 찼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또 홀로 공을 찼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야 맨날 그렇게 아침 일찍 와서 공을 차고 있냐?”라고 물었다
“그냥 연습하려고 하는 거지, 재밌으니까”라고 답했다
“너 근데 축구 잘 못하잖아, 근데 뭐가 재밌어?”라고 다시 물었다.
“그냥 공 차는 거 재미있잖아, 근데 나 축구 잘하거든?”이라 답했다.
그 친구가 어떻게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농구만 했던 나로서는 그 친구가 축구를 잘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항상 축구화와 축구복, 축구공을 들고 다녔다. 축구부도 존재하지 않던 학교 운동장에서 홀로 공을 찼다. 그 친구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여전히 축구를 좋아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어린 나이에 그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잘하지 못해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삶을 보내는 방법을. 어느 날 체육 시간이 끝난 뒤, 그 친구는 내가 봤던 그 어떤 웃음보다 밝은 표정으로 온몸에 흙자국이 선명한 채로 들어왔다. 그리고 축구를 함께 왔던 친구들은 그 친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나는 뒤늦게 그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게 되었고, 결국 그중 하나는 직업이 되었다. 그것을 하려니 막상 책상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 그때 그 친구만큼은 아닌 듯하다. 잠시 멈춰 선 이 시간에서 나는 여유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요구가 쌓여 그 무게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책상 위의 나의 손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오랜만에 앉은 책상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