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11
생각해 보면 내 몸의 증상은 이상한 노릇이다. 테니스엘보는 둘째 치고, 서있고 걷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게 힘든 것이 아이러니했다. 물론 그전보다 오래 걷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앉아있는 것보단 몸이 편했다. 학창 시절까지 포함하면 아마 인생의 1/3은 앉아 있었을 텐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앞으로 앉아 있을 날이 많은데 말이다.
병원은 주로 오전 첫 타임 진료를 예약했다. 어떤 일이라도 있지 않으면 불편한 몸을 계속 침대에 의지한 체 있을 터였다. 부산스럽게 병원 갈 채비를 한 후 병원으로 갔다. 문 밖을 나오니 날씨가 좋았다. 따뜻함 보단 약간의 열기가 외부 활동을 하기엔 너무 좋은 날씨. 하지만 나는 내 몸에 허락을 받아야 할터였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몸의 가벼움을 느꼈다. 느낌이 좋았다. 첫 진료를 받고 그다음 날 나는 약간의 몸살을 앓았다. 그동안 비틀어져 있던 몸의 여러 부위들이 급작스레 원래의 자리로 맞춰 놓은 것이 낯설었는지 가벼운 몸살과 함께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몇 번의 치료 후, 내 몸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치료가 끝나면 더 좋아질 것이라 믿고 진료 후, 나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전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의사와 잠깐의 대화를 한다. 물론 치료를 위함이었지만, 격식을 따지지 않고, 그저 지난 치료와 이번 치료의 시간 동안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침이 주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첫 대화가 아닌 그저 안부를 묻는 그 대화가 나는 좋았다. 의사에게 지난 상태를 전하고 허리 상태가 꽤 많이 좋아져 허리 쪽은 당분간 치료를 줄이고, 테니스 엘보를 집중적으로 치료를 하기로 했다.
테니스 엘보의 치료는 쉽지 않았다. 초음파를 통해 팔꿈치에 따끔하며 주삿바늘의 느낌이 들었다. 주삿바늘은 염증부위로 향했다. 그 후 팔꿈치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올라오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주사액은 통증부위를 채웠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필요한 치료를 더 하고 나는 팔은 잘 굽혀지지 않았지만, 허리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오랜만에 서점을 가기로 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움직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 작은 다짐했던 "찾아보지 말고 움직일 것"이 떠올랐다. 그저 식당이 있는 거리로 갔다. 그저 메뉴만 괜찮다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조금은 허름한 근처 생선 백반을 선택했다. 자리를 앉아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맛집이라는 곳에 가보면 요즘 만원도 넘는 곳이 많은데, 여기는 고등어구이가 만원이었다.
나는 고등어구이를 시켰고, 곧 고등어구이는 나왔다. 어묵 볶음, 입을 정리해 줄 열무김치, 아삭해 보이는 콩나물 무침, 그리고 시원해 보이는 콩나물국, 그리고 꽤나 실한 노릇한 고등어 한 마리. 허기가 더욱 느껴졌다. 나는 크게 살을 발라내어 한입 먹었다. 전혀 비리지 않고, 그 짭짤함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근래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는 한 점이지 않았을까. 운이 좋을 것 같은 하루다. 나는 아내와 같이 오겠다 다짐하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서점으로 향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배가 부르니 머릿속은 또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언제쯤 몸이 나을 것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흔한 생각들에 나는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고, 이직을 바로 한다면, 당장의 마음은 편할지언정 몸은 고통일 것이다.
신규 입사의 경우에는 연차도 정해져 있고, 병원을 다니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기한 없는 이 휴식을 그저 보내고 있다면 나의 이력서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할 터였다. “쉬는 동안 뭐 했어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그들에게 잘 대답하고 싶다기보다, 미래의 내가 나에게 질문을 했을 때, 생산적인 일이든, 아닌 일이든
“뭐.. 이런 것도 했고 저런 것도 했고, 근데 아파서 제대로 할 수는 없었어요.”
라는 식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전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었다. “뭐 하고 살았냐?” 나는 그때 “뭐 이것저것 했어”라는 뜨뜻미지근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생산성이 있는 일을 떠나, 나는 그 시간이 즐거웠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었는지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논다면 즐겁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그저 멍하니 생각 없이 구경꾼이 되는 삶은 나에겐 왜지 후회스러운 감정이 들게 했다.
서점에 도착하여 둘러보다 한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가 적혀있는 책이었다. 내가 선택한 이 직업의 살아있는 전설 중 하나인 사람의 이야기. 나는 기대감에 고민 없이 책을 들었다. 한 사람의 삶을 엿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대강의 모든 이야기는 아닐 테고, 대강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 쉽지 않듯, 자서전의 그의 삶에 기억에 남는 일들은 뭔가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이야기일 듯했다.
나는 삶의 어떤 기점에 서있다고 느끼고 있다. 나와 같은 일을 선택하고, 그 꿈만 같은 결과를 만든 사람이 단순히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 그 성공한 방식이 아닌 사람의 선택,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가 궁금했다. 마침 필요했던 이야기, 크게 뭘 할 수 없던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타이밍이 좋았다.
오늘은 나 역시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