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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Mar 14. 2021

흘려듣기와 집중듣기, 기다리면 아웃풋은 터진다?

[CNN 10년 들어도 귀가 뚫리지 않는 이유 Part1]

"흘듣, 집듣 각각 몇 분? 몇 시간씩 하면 좋을까요?"

"AR레벨 2.5, 렉사일 지수 450의 책을 최소 하루 30분 이상 집중듣기 해야 해요."


흘려듣기, 집중듣기, AR레벨, 렉사일 지수... 내 아이 영어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기 시작했을 무렵, 소위 엄마표 영어를 한다는 분들 가운데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는 용어들 자체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먼저, 흘려듣기, 집중듣기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영어에 대한 부담 없이, 그냥 소리를 흘려듣는 것이 흘려듣기, 영어 글자와 소리를 맞춰 가며, 듣기와 읽기를 병행해 나가는 행위가 집중듣기라고 한다. 흘려듣기의 목표는 영어 노출 환경을 조성해 주겠다는 것인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집중듣기의 목표는 영어 글자를 보며, 소리 듣기를 함으로써, 특정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를 정확히 알게끔 한다는 데에 있다. 분명히, 장점이 있겠으나, 보통 어린아이(유치원생, 초등 저학년)의 길지 않은 집중력으로 과연 이게 얼마만큼이나 가능할까, 다소 의문이 든다.


이러한 목표들에 앞서, 더 본질적인 의문으로 들어간다.


흘려듣기와 집중듣기, '내 아이에게' 필요할까?

효과를 검증한 산증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럼 제대로만 하면 누구나 효과를 볼까?




나와 내 여동생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우리 둘은 한 살 차이로,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로 독립하기 전까지 한 방을 공유하며, 비슷한 생활양식을 공유했다.


초등 고학년 시절부터, 중, 고등(이때는 대입 준비로 뜸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내 방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영어 테이프 또는 영어 라디오 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삼 남매의 맏이였다. 학창 시절, 남동생이 방 하나를 차지하고, 여동생과 나는 방을 같이 썼으므로 여동생 역시 10년 이상 흘려듣기(?)에 노출된 셈이다. 내가 이어폰을 통해서 들은 것이 아니기에, 여동생은 내 영어 소리 노출 히스토리의 최소 3분의 2 이상은 공유하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 두 자매의 관심사 동상이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가 좋았다. 영어의 '음성'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졌고,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원 등은 다니지 않았고, 엄마표 영어 등의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 단, 집에 영어 자료는 많았다. 당시 아빠가 영어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래서, 집에 영자 신문 등이 구독되어 오기도 했고(당연히 어린 나는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빠가 딸이 좋아할 만한 영어 잡지를 월 구독해 주셔서, 매월 집으로 배송돼 오는 영어 잡지(+ 테이프)를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낙이기도 했다. 영어 잡지 속에 수록돼 있던 팝송 및 영화 속 영어 대사는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스스로 영어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게 했다. 중학교 때는, 영어로 짧은 글을 써서 잡지에 응모를 했고, 내 글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해당 영어 잡지에 실린 적도 있다. 상품으로는 소박한 책을 받았던 듯한데, 어린 나에게는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었던 듯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팝송과 영화를 통해서 즐기고 나니, 학교 영어는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쉽게 느껴졌다.


반면, 연년생 여동생은, 영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침마다, 밤마다 흘러나오는 영어 음성을 싫어했다. 여동생 입장에서는 소음 공해였을 것이다. 매달 집으로 배송되어 오던 영어 잡지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영어 월간지, 단 한 장을 넘겨보지 않았다. 동생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학습 관련 행위들보다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을 거쳐서 대학입시로 수학 능력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결과는?


수능 영어의 경우, 나도, 동생도 1등급이었다. 만점이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둘 다 만점 혹은 만점에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영어 모의고사에서도 항상 다 맞거나 어쩌다 하나 틀리는 정도였다.



수능을 본 지, 어언 20년이 흐른 현재, 영어의 의사소통 측면에서는 어떨까?


이 지점부터는 자매의 차이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이유는 여동생은 수능 이후로,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었고, 나는 대학 입학 이후의 영어 노출량이, 대입 이전인 학창 시절의 영어 노출량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단순 노출을 넘어, 영어가 업인 입장에 있었다 보니, 어떤 영어 자료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나의 경우, 엄청나게 지역색이 강한 악센트를 갖고 있는 화자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영어 자체가 안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못 알아들은 문장은, 주로 그 표현 자체를 모르는 경우이다. 평생을 영어 공부를 해왔어도, 모르는 표현들이 나온다. 언어를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스피킹의 경우에도, 특정 분야(가령, 태양 전지, 로봇 공학 등 나의 전문성이 전혀 없는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토론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내 관심분야에서 나의 의견을 표현함에는 큰 불편이 없다.


여동생의 경우는 다르다. 동생의 경우, 리스닝이나 스피킹이 필요한 상황도 거의 없거니와, 관심도 없는 듯하다. 초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 3학년부터 영어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영어 전담 교사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니,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본인은 영어 전담을 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고 했다. 굳이 관심 과목을 택하라 한다면 본인은 '국어'와 '과학'이 좋다고 한다.


결과의 차이점을 가져온 이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와 여동생의 가장 큰 차이는, '영어'가 업무에 필요한 환경인가 아닌가의 차이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 나와 여동생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은 바로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동기'이다. '흘려듣기'의 역사는 거의 동일하다. '집중듣기'로 말하자면, 당시에는 몰랐지만, 영화 대사 등을 눈으로 보며, 글자와 소리를 매치시켜 가는 듣기를 했던 나의 경우에는, 집중듣기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고, 여동생은 활자에 관심이 없었으니, 집중듣기의 과정이 생략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흘려듣기, 집중듣기가 '내 아이에게' 필요할까?


이러한 흘려듣기, 집중듣기 따위(?) 하지 않아도, '현행 수능 영어' 점수만을 위해서라면, 사실 아무 지장이 없다. 수년간 실용영어 및 입시영어를 오가며 지켜본 결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영어 늦게 시작해도, 제대로만 배운다면 큰 문제없다. 수능 영어, 입시 영어만이 목표라면 중학교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영어 일찍 시작해서 좋은 점은, 귀가 트이는 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현행 수능 영어의 듣기 평가 난이도는 어떨까? 스크립트 자체가 실생활의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시험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쓰인 자료이다. 따라서, 발화 속도가 실제 원어민 대화 속도에 비해 많이 느린 편이며, 1번에서 17번까지에 해당하는 수능 듣기 문항들의 정답률은 2021년 수능 기준, 한 문항당 평균 92.5%에 이른다. 시험을 응시한 학생들 100명 중에 92명은 정답을 맞힌다는 얘기니까, 실질적 변별력은 거의 없는 셈이다.


입시영어가 목표가 아니라면? 흘려듣기, 집중듣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영어의 듣기 측면 및 영어의 발음 측면에서의 유창성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전 글(링크 클릭하면 관련 글로 연결된다.)에서도 언급한 적 있듯이, 귀가 뚫렸다고 해서 혹은 영어 발음 측면에서의 유창성이 있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아이에게 적용해 보자.
우리 아이 흘려듣기와 집중듣기를 (억지로라도) 시켜야 할까?


내 대답은 '선별적 YES,  선별적 NO'다.


먼저, 아이의 동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해 주자. 자발적 동기가 없으면, 흘려듣기건 집중듣기건 소음공해이고 괴로울 뿐이다. 어린아이 자녀의 부모라면, 우리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내용을 유심히 관찰한 후, 콘텐츠 선택 시 적용해 보아야 한다.


아이 스스로 영어가 좋고, 영어 콘텐츠 자체가 아이의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흘려듣기가 즐겁고, 즐거운 흘려듣기는 자연스레 집중듣기로 이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내용을 대사로 읊고 있는데, 당연히 집중해서 듣게 된다.


재미없고, 내 관심 분야가 아닌 말들을 외국어로 솰라솰라 하고 있다면? 그건 소음공해일 뿐이다. 내 여동생이, 내 결혼과 함께 '듣기 싫은 영어 안녕, 고요한 아침 만세!'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 아이가 현재 학원을 다니고 있든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든, '지속'을 멈추는 순간, 영어 실력도 멈추거나 퇴화한다. '현상 유지'를 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속 불가능한 목표, 아이가 질리게끔 만드는 환경은 피해야 한다. 집중듣기를 힘들어하고 거부하는 아이라면, 쉬어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집중듣기 하나도 하지 않은 내 여동생, 수능 1등급 거뜬히 나왔고,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없다. 


영어, 그렇게 아이 힘들게 하며 시켜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다음 편에서는 [CNN 10년 들어도 귀가 뚫리지 않는 이유],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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