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에티카 1부 전반부를 읽고나서 (1)
1. 신(스피노자) <> 신(현대)
*<>는 같지않다를 의미합니다.
정리 1을 시작하기에 앞서 스피노자는 그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정의’ 8개와 ‘공리’ 7개를 깔고 시작한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주장에 따르면) 절대적인 정의와 공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리를 ‘논리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스피노자 에티카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간단한 철학서적이라고 여겼었는데, 실제로 읽어보고 놀란 점은 생각보다 매우 논리학적으로 글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정리 1~15는 주로 ‘실체’에 관한 스피노자의 주장을 중심으로 논지가 이어진다. 정리 15까지의 스피노자의 주장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쓴다면, 스피노자는 이 세상에 ‘실체’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 실체는 자신의 변용에 앞서며(정리 1), 다른 실체로부터 산출될 수 없으며(정리 6), 다양한 변용과 속성을 지니고 있는(정리1, 10 등) 절대적인 무엇이다. 특히 정리11~15까지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로 스피노자는 ‘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며, 신 이외에는 어떠한 실체도 존재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으며 모든 존재는 신 안에 있고 신 없이는 존재할수도, 파악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정리 14,15)
결국 정리 15까지에 따르면 스피노자가 바라보는 신은 ‘실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속성을 지니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절대자(실체)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은 무한한 특성을 지닌 유일한 ‘실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게, <정의 3>에서 스피노자는 ‘실체’라는 것이
“(실체)는 결국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 즉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라고 이해한다고 밝혔다. 앞서서 ‘신 = 실체’라고 이해를 한다면, 앞의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신)은 결국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 즉 (신)은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결국 스피노자가 주장하는 신이라는 개념 자체는 ‘내 스스로 생각해야하며,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주체적인 무엇’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이러한 ‘신’과 현대에 우리들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은 과연 같은가? 모두가 느꼇겠지만 스피노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많은 여러 단체들이 주장하는 ‘신’은 ‘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은 절대적이고 무한한 실체이며, 앞서 살펴본 실체의 여러 특성과 현대사회에서 주장하는 신과의 특성은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주장하는 신은 실체가 아니라 스피노자식으로 말하자면 실체의 속성, 양태에 가깝다. 그 이유는 속성이란 지성이 실체에 관하여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이며, 양태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 4,5)
2. 신이란 특칭명제가 아닌 전칭명제이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신’과 현대의 ‘신’이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의존하지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신’이 실체가 아닌 실체의 양태, 변용에 가까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나의 신이 아닌 남의 신을 믿으며 보편성을 띄어야 할 ‘신’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무언가를 가르키는 ‘신’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신’이라는 개념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보통 신이라고 한다면 3번(하느님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무언가)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국어사전조차 신의 첫 번째 개념을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회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라고 정의를 내린다. 여기서 3번과 1번의 차이점을 <전칭명제와 특칭명제의 차이>를 기반으로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1번의 경우 논리학적으로 전칭명제이다. 3번의 경우 논리학적으로 특칭명제이다. 전칭명제와 특칭명제의 차이는 전칭명제는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반면, 특칭명제는 특정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에 기인한다. 중요한 점은 스피노자가 주장하는 ‘신’은 특칭명제가 아닌 전칭명제라는 것이다.
<정리 15>까지, 스피노자는 신이 “특정한 무언가”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매우 모호하고 애매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있어 신은 “관념적이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무언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신이 특정한 무언가를 가리키는 순간 그것은 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란 스피노자가 주장하듯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라는 개념이 특정성을 띄게 된다면 ‘신’은 ‘절대적이고 무한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
간단하게 논리학적으로 이 사실을 살펴볼 수도 있다.
(1) 1반의 모든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 (전칭명제)
(2) 1반의 어떤 학생인 A는 공부를 잘한다. (특칭명제)
(1)이 참이면 (2)는 무조건 참이다. 그러나 (2)가 참이면 (1)이 무조건 참은 아니다. 즉,
(1) -> (2)는 무조건 성립하지만
(2) -> (1)은 무조건 성립하지 않는다.
1반의 A라는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고 1반의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1) 신은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회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이다. (전칭명제)
(2) 신은 하느님(알라/부처 등등)이다. (특칭명제)
마찬가지로 (1)이 참이면 (2)는 무조건 참이다. 그러나 (2)가 참이면 (1)이 무조건 참은 아니다. 즉,
(1) -> (2)는 무조건 성립하지만
(2) -> (1)은 무조건 성립하지 않는다.
더불어 말하자면, 만약
X -> Y (o)
Y -> X (x)
관계를 가지는 두 X와 Y가 있다면, 논리학적으로
거짓일 확률 : X > Y
참일 확률 : X < Y
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1)이 Y, (2)이 X를 의미하기 때문에 (1)이 (2)보다 참일 확률이 높다는 당연하지만 재밌는 결과도 나온다. 여기서 나는 현대 사회의 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신은 대부분 (거의 99%이상)이 신적 존재, 신으로써 특정한 무언가를 가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특정 신은 방금 논리학적으로 보았듯이 모든 것을 긍정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신은 신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달한다고 생각한다.
3. 신이 특칭명제로 전락한 까닭 : 의존성
이렇게 전칭명제여야할 신이 특칭명제가 된 까닭은 아까 언급하였듯이, ‘남에게 의존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처럼 신의 기원에 관한 <신기원론>을 한번 생각해보자. 태초에 각 인간에게는 각자 나름의 신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러한 신은 국어사전에서 언급하였듯이,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회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의 그리스의 신처럼, 신은 정말 다양하게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누군가 완벽한 특정한 ‘신’을 창조해낸다. 이슬람의 신이 되었든, 기독교의 신이 되었든, 불교의 부처가 되었든, 이러한 완벽한 신은 나약한 인간에게는 매우 유혹적인 신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신을 스피노자식으로 탐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의 신에 매달리게 되었고, 그 위세가 커져서 현대의 신이 되었을 것이다.
4. 의존하지말고 주체성을 가지자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를 버리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신(실체)을 찾을 능력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장의 달콤한 눈앞에 주어져있는 실체만을 바라보지 말고 당장은 힘들더라도 자신만의 실체를 주체적으로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정리 15>까지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우선 일주일 동안 다음의 규칙을 만들고 연습하고자 한다.
나의 삶의 규칙 1
1. 나만의 실체를 찾고자 노력하자.
2. 당장 힘들더라도 나의 실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남에게 의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