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9일 할머니의 디자인 작업실 두 번째 날.
수업의 두 번째 날.
내가 수업을 위해 정해놓은 커리큘럼 중 첫 번째 주제의 날이다. 첫 주제는 바로
<우리 모습 그리기>이다. 나의 얼굴과 친구의 얼굴을 그려보는 시간으로 재료는 연필, 지우개, 8절 도화지, 수채화 물감, 붓, 물통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울이다.
기본 준비물 외에 거울은 별도로 준비해오시라고 지난시간에 신신당부해 드렸건만 까먹으시고 안 챙겨 오신 분들이 몇몇 계셨다.
먼저 나의 얼굴 그리기. 준비한 거울을 들고 나의 얼굴을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본 뒤 도화지에 그려보는 시간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나 부끄러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래도 젊었을 적보단 거울을 보는 시간이 적어지셨을 테니까. 한 손에는 거울, 한 손에는 연필을 쥐고 자신의 얼굴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셨다.
생각보다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가시는 어르신들. 미묘하게 닮아가는 그림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원하는 수업 방향은 자신의 얼굴을 사진처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아닌, 어르신들만의 묘사 방법과 색칠방법으로 얼굴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의 얼굴 그리기 스케치가 끝나고
친구 얼굴을 스케치하는 시간.
두 명씩 짝을 지어 부끄럽지만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지난 시간 자기소개로 간단한 프로필은 알고 있지만, 어르신들끼리 더욱 친해지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친구 얼굴 그리기 시간을 가져본 것이다. 서로의 얼굴 그리기 시간이 도움이 된 것일까.
수업이 끝날 때쯤 되자 하하호호 떠드시는 모습이 첫 시간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스케치 후 채색의 시간.
물감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간단한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검은색, 흰색 물감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칠해보시라고 이야기해 드렸다.
하지만 얼굴 채색이다 보니 살구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흰색이 많이 필요하였고, 흰색 물감은 금방 동이 나 버렸다.
재료 계산을 잘못해서 구매한 것일까.. 나머지 열번의 수업이 걱정되었다.
걱정도 잠시, 여기 저기서 어르신들이 나를 찾으셨다.
"얼굴 칠하려고 색깔 만들었는데 색이 달라졌어"
"눈이 짝짝이야. 어떻게 좀 해줘."
"나랑 닮았어?"
종이에 연필로만 슥슥 그릴 땐 문제없이 진행되었던 그림이 색칠후에 영 마음에 안 드신 표정들이었다.
심지어 스케치할 땐 분명 다 다른 사람이었는데, 옆자리의 어르신들끼리 얼굴이 비슷해지는 기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그란 얼굴, 탱글거리는 파마머리.. 같은 얼굴색이 되어가는 게 재밌으시다며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