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름 3여 년 정도 살았는데도 명동엔 처음 간다는 사실을 모던걸타임즈를 보러 가면서 알았다. 지금은 지방에 살고 있지만. 튼, 내가 생각한 왁자지껄한 명동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한적하고 고요했달까? 그렇게 인터넷 지도를 보면서 삼일로 창고극장을 가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크게 보였다. 이번 연극이 아예 인권과는 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평소에 인권에 관심도 많았고, 인권 관련 책 리뷰를 이곳에 기고한 적도 있는 나이기에 세삼 반가웠다.
드디어 삼일로 창고극장에 도착.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가 유명하고 의미 깊은 극장에 오긴 왔구나’ 싶었다.
이 연극은 2019년부터 거꾸로 시간이 흐르더니 일제 강점기 당시 시절의 필름(화질)으로 영상을 보여준다. 먼저 미용사 형선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 전에, 형선의 뒤로 “너는 공부보담도 기술을 배워라.”라는 문구가 뜬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찍부터 유명한 미용사 밑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는 형선.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조연으로 나오면서 서로 이야기에 필요한 캐릭터들을 채워준다. 형선은 경성에서 제일 유명한 오 선생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술, 바로 패션의 종수 이야기다. 장녀인 그는 가장이다. 원래는 사무직을 원했지만, 과감히 공부를 포기하고 기술을 배웠는데 유독 양재 일을 배운 이유는 돈이 바로바로 들어오기 때문. 안정적인 월급보다 당장 돈이 필요한 그녀였기에 양재사 직업을 택한 것이다. 현재는 이 직업을 택한 걸 만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큰 카네보 회사의 유일한 조선인 타이피스트, 충자이다. 사무직을 권한 아버지 때문에 타이피스트가 됐다. 처음엔 자신이 원한 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세련되고 안정된 직장에 다닌다고 자부하고 있다.
각 캐릭터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적령기를 지난 나이대까지 연기하는 세 여배우가 인상 깊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지만, 결혼에 대해 다들 독신이고 싶어 했다. 결과가 모두 같진 않았지만. 그리고 자신들을 ‘신여성’이라고 여기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바로 6·25가 찾아온다. 그녀들은 급변한 사회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기술을 활용하여 계속 일한다. 일제 강점기 땐 그 시절에 맞춰, 해방됐을 땐 해방기에 맞춰, 6·25 땐 전쟁기에 맞춰서. 예를 들면, 전쟁 때 전투복을 거래하면서 양재사 종수는 부자가 된다. 그리고 미용사 형선은 자기의 가게를 개업하고 파마 약을 개발해서 단가를 확 낮추는 등 어려운 시절에 맞게 장사를 했다.
그렇게 일제부터 6·25를 경험한 거친 삶을 다 살아 본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실존 인물이었다는 어떤 한 인터뷰 영상을 통해 마무리된다. 처음엔 웅얼거려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무슨 영상인가 싶었는데, 자막이 나오고 할머니가 된 실존 인물들이 나오니까 소름이 돋았다. 어느 정도는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라곤 생각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같은 이 영상은 연극의 감동에 힘을 더해줬다.
나는 분명, 이 연극의 카피를 ‘일제 강점기 이후 보통 여성의 노동’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프리뷰를 썼는데 카피와 달라서 연극 초반부엔 이해도 안 가고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지나고 몇 년도인지 날짜가 나와서 일제 강점기 시절이란 걸 알았다. 이 연극 홍보 카피는 완전히 잘못됐다. 일제 강점기 이후를 살아간 보통 여성들의 노동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를 모두 거친 보통 여성들의 생존과 노동 이야기이다. 그녀들의 인생, 특히 직업에 대한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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