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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나봄 Apr 30. 2020

‘나’를 사랑한다면 ‘crush’는 저절로

영화 [Someone Somewhere]

01. 파리지앵


 프랑스어로는 ‘남성’에 국한돼 있지만, 우리에게 ‘파리지앵’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아니, 상징한다. ‘파리지앵’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들만 나열해도 꽤 많다.


#로맨틱_파리  #에펠탑야경  #낭만  #바람둥이  #로맨티스트  #패션  #와인  #요리  #예술의나라_도시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분위기면 분위기 등등 모든 것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나라다. 게다가 ‘파리’하면 낭만과 도시의 세련미가 더해지면서 더 시크한 느낌이 난다. 사랑이 넘치지만, 바람도 많이 피운다는 프랑스. 하지만 이 단점보다 여러 장점이 더 많은 환상 속 그곳, 파리. 막상 가면 길거리가 매우 더러워서 실망스럽다는 사람들, 집세가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서 유학 생활하기가 힘들다는 사람들 등등 환상은 깨지기 마련. 하지만 프랑스란 나라는 여전히 설레게 하고, 그중 파리란 도시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곳’처럼 보인다. 젊고, 열정이 넘치는 파리는, 모든 걸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밤이 있으면 낮도 있는 법. 파리는 밤일 때야 아름답다. 낮이 된 파리는 밤보다 칙칙하다. 특히 영화에선 더 그렇다. 주인공 둘 다 파리에 산다. 서로 옆집이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둘은 이 사실을 모른다. (실제 옆집은 아니지만, 건물이 붙어있어서 옆집이라 봐도 무방하다.)





02. 우울증


 이 둘은 파리지앵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자 주인공 ‘멜라니’는 전 남자친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헤어진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잊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울증이 와서 상담을 받고 있다. 남자 주인공 ‘레미’는 시골에서 올라왔다. 갑갑한 시골보다 활동적인 파리가 더 좋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우울증 상담을 받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공황장애로 쓰러졌기 때문. 그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깊은 곳에서 내면이 외치는 소리를 외면했다.


 첫 상담. 여자는 전 남자친구 얘기를 쏟아냈고, 남자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했다. (둘의 상담사는 다르나, 나중에 같아지는 거로 추측된다) 그리고 ‘레미’와 그의 가족들 반응을 보면 우리나라와 별 다를 바 없구나 싶다. 우울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이는 흔한 반응이다.

‘그건 정신병 있는 사람들이나 있는 것 아냐? 넌 멀쩡하잖아!’
 ‘저는 우울하지 않은데요’

등등...


 시간이 지나, ‘레미’도 자신의 우울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첫 상담사와의 상담 막바지엔 울음을 터뜨린다. 잊고 있던 여동생의 죽음이 생각난 것. 그는 암으로 죽은 여동생과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죄책감으로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누구와도 시작이 쉽지 않았다. 특히 이성과는 더더욱. 좋지 않게 끝날까 봐 무서운 거다.


 ‘멜라니’는 전남친을 잊기 위해 채팅 앱을 이용한다. 채팅 앱에서 만난 남자와 원나잇 하기를 반복하다 마리화나까지 손댄다. 상담 중, 그녀는 남들에게 자신이 우울증이 있음을 말하는 게 겁난다고 했다. 그녀의 상담가는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자신이 우울증이 있음을 말하고 시작하는 관계야말로 진지한 연애다, ‘멜라니’ 당신은 가벼운 연애가 아닌 그 이상의 연애를 원하는 것 아니었냐고.





03. 살짝 엇나간 홍보 포인트


 이 영화를 ‘멜로’ 장르로 알고 갔다. 영화 포스터나 홍보가 로맨스물 쪽이기도 했지만, 네이버 사이트 [영화] 목록에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썸타는 로맨스 영화로 완전히 몰고 간 포스트 때문에 깜박 속았다. 이 영화는 그냥 일상, 드라마 장르다. 요즘 젊은 현대인들이 많이 걸리는 우울증에 대해 다루고 있고,  치유 과정을 그려나가면서 사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라 말하고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봤다.


 그녀가 채팅 앱을 시작하려 할 때, 친구들이 앱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근처에 살고 있으면서 내가 ‘like’ 했을 때, 상대도 ‘like’ 했다면 그건 ‘crush’라고. 진정한 운명이라고. 둘은 엄연히 건물이 다르지만, 딱 붙어있는 건물 구조와 같은 층 때문에 각자 방에서 나는 소리가 서로에게 들린다. 둘은 노래, 고양이, 춤으로 복선이 이어진다.


 영화 중간중간 이들의 다른 연애가 나오지만, 주 얘기는 아니다. 이들이 연애를 시작하려 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다. 어차피 삶엔 사랑이 있다. 살다 보면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듯, 사랑도 있는 거다. 그러니 두 사람의 우울증 치유 과정 얘기에는 당연히 사랑 얘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하고, 자신을 인정하려 할 때, 둘은 만났다. 누굴 만날 준비가 됐을 때,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둘은 ‘crush!’ 된 거다. 영어에 ‘crush on you’란 표현이 있다. ‘네게 반했어’란 뜻인데, 이 영화에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옆에 있다가 나중에 서서히 알게 되는 진정한 운명으로 쓰인다.


 난 평소에

“타이밍은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냐. 만드는 거지. 타이밍은 내가 만드는 거야.”

라고 자주 말한다. 그래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면서 자꾸만 어긋나는 둘을 보며,


“무엇을 연출하고 싶어서 저러는지 알겠는데, 나라면 타이밍이 안 맞는다고 탓할 게 아니라 타이밍을 어떻게든 만들었을 거야. 전화를 계속하거나 진작에 군대 어디로 갔는지 묻거나 그랬겠지”라고 남자친구에게 말했었다.


 근데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다. 타이밍도 우선 만나야 만들 수라도 있구나. 일단 둘이 만나서, 서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타이밍을 만들든 말든 하겠구나. 아무리 운명이어도 저렇게 만나질 못하니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정리가 덜 됐다면 절대 둘은 잘 될 수가 없었을 거다. 마음, 특히 기분이 적절히 뒷받침돼야 상대를 받아들일 여유도 생기는 거다. 이런 의미에서 둘은, 완벽한 운명이다.




04.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굉장히 와닿은 대사 하나 소개해 주고 싶다. ‘멜라니’가 그녀의 상담사에게 전남친을 잊고 싶진 않다고 울며 말한다. 그러자 상담사는 정리가 잊는 건 아니라며 이렇게 말한다.

 정리란 잊어버리는 게 아니에요.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간직하되 짐이 되지 않는 거죠.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럼 과거를 기억하고 받아들여요.
그래야 현재를 안을 수 있어요.


 ‘멜라니’는 전남친을, ‘레미’는 죽은 여동생을 정리할 용기를 냈다. 그랬더니 Someone이 Somewhere에 있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7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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