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엊그제(20.03.26)부로 3화까지 방영됐다. tvN으로 이적 전, 나 PD와 함께했었고, 예능에 나 PD가 있다면 드라마엔 ‘신원호 PD’가 있다. 신원호 PD 옆엔 ‘이우정 작가’ 있고.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계속 대박 낸 그들이다.
난 응답하라 보단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더 재밌게 봤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건너뛰며 봤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본방을 보고도 수개월 뒤에 다시 정주행하는 식으로 3~4번은 봤었다. 그래서 당연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기대했다. 그들은 내 기대에, 기대 이상을 보여줬다.
원래 이번 글은 다른 주제였다. 근데 방금 ‘슬기로운 의사생활’ 2화를 다시 보다 급히 주제를 바꿨다. 저번 주와 다른 이번 주의 나기에, 같은 장면인데도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다. 삶에 의욕이 점점 떨어지고, 삶에 대한 애착이 희미해지는 요즘이었다. 지친 상태이고, 감정 소모가 없는 나날들.
이러던 와중에 2화에 있던 에피소드 중, 채송화 의사의 동창 에피소드에서 눈물이 났다. 채송화 의사의 동창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가슴 한쪽이 없는 셈. 뇌에도 문제가 생겨서 병원을 찾은 동창은, 의사인 채송화에게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현재 뇌 수술은 물론이고, 유방 수술을 했단 것도 남편이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뇌 수술 동의서 때문에 남편이 필요한 상황. 그녀는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고, 남편은 메일을 읽었지만 답이 없었다.
동창은 많이 예민했다. 할머니들과 같은 병실을 썼는데, 할머니들이 자꾸 자기를 쳐다본다며 커튼을 다 쳐놨다. 자기가 가슴이 없으니 신기해서 그런 거라 확신하며 언짢아했다. 그러다 어느 밤, 동창은 옆 침대 할머니에게 짜증 내며 물었다. 왜 자꾸 쳐다보시냐고, 가슴 없는 게 구경거리냐며.
그런데 할머니가 “이삔게 글제(이쁘니까 그렇지)”라고 말했고, 동창은 뭐가 예쁘냐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의 저 대사를 시작으로 나는 눈물이 줄줄 났다. 특히, 줄줄 나던 눈물이, 흐느끼던 슬픔이, ‘펑’하고 터지며 울음이 돼버린 대사가 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뚝뚝 떨어졌다. 이런게 '울컥'일까?
“글도 이뻐. 꽃맹키 이뻐. 가슴 한 짝 없어도 젊응께 이뻐”
(그래도 예뻐. 꽃만큼 예뻐. 가슴 한 짝 없어도 젊으니까 예뻐)
아……. 이거다. 이거였다. 내가 극본 작가를 꿈꿨던 이유가. 일상에서의 소소함을 가지고 웃고, 울게 만드는 드라마가 쓰고 싶었다.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배웠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소재들은 시청률 나오기가 어렵다. 소위 ‘상업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신 PD는 매번 해낸다. 이런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노희경 작가도 많이 다룬다. 그래서 노희경 작가 작품도 좋아한다.
참고로, 그동안 의사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많기도 했다. 그동안의 의사 이야기와는 다르다며 JTBC에서 드라마 <라이프>를 방영한 적이 있다. '라이프'의 '이수연 작가'는, 데뷔작이자 직전 작품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일명 '천재 작가'로 불렸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라이프'는 기대 이하였다. 근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르다. 이거야말로 그동안의 의사 드라마완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 아닐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젊으니까 예쁘다’란 말을 책에서 읽었다면, 난 이렇게 울었을까? 이 말을 내 주변 누군가에게 들었다면, 혹은 상담사나 의사에게 들었어도 울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이 들어본 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앞부분에 살짝씩 언급된 동창의 내용이 이 부분에서 이어지면서 터진 거다. 연출과 스토리 힘이 합쳐진 드라마이기에 가능했던 위로였다. 난 드라마를 보며 위로받았다.
특이한 소재를 가지고 시놉시스를 쓴 적이 많다. 그래야 관심을 끄니까. 근데 내가 원래 쓰고 싶어 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오늘 드라마를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나도 이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근데 판타지가 아닌 장르. 공감하면서 볼 수 있으면서도 진심 어린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는 드라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