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문학에 대해 배울 때 ‘갈등’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리고 자라면서 드라마나 영화 혹은 소설 등 ‘스토리텔링’이 들어간 것들은 모두 ‘갈등=절정’이었다.
내 또래라면, 이야기의 흐름을 배울 때, 절정이 갈등이고, 결말은 갈등 해소라고 배웠을 거다. 맞다, 갈등이 제일 재밌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인물이 어떤 갈등을 겪냐에 따라 그 재미는 하늘과 땅 차이. 특히,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겐 캐릭터의 설정이 그 재미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공감하고, 인정할 것이다.
요즘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날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바빴고, 일정이 빠듯했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나리오/극본 작가가 꿈인 내게, 이 책은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책들이 꽤 있다. 유명한 스타 작가의 조언도 물론 담겨있고. 그중 일부는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뭐랄까, 우리나라에서 읽은 이런 책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답이 없었다. 물론, 답을 찾는 과정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냥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인 조언이 담겨있었고,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말했다. 또한, 전체적인 것들을 얘기해서 이 책처럼 글 쓰는 데에 필요한 그리고 중요한 특정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경험과 필사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 책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설정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다. 작가 소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전공 책’,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정말 글 쓸 때 궁금한 게 생기면 펼쳐서 찾아보는 사전 같은 존재가 됐다. 진짜 사전처럼,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캐릭터의 상처와 감정 그리고 갈등의 상황을 찾아서 공부하면 된다.
예전에 연출 쪽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얼핏 들은 얘기가 있다.
아이디어는 일본,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은 미국이 알아준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캐릭터들은 대부분 비슷하단 평을 받으니까.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나라기에 가능한 인물의 상처, 즉 트라우마를 만들고 싶다. 진부할지라도, 우리나라이기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공 서적. 잘 활용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책이다.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부분만 쏙쏙 고른 뒤, 내 개성을 담아야 한다. 이 책만 신뢰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단 뜻이다.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 한국에 맞는 정서를 가진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
가령, 영화 <내부자들>과 같은 영화는 미국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에 그렇게까지 우리가 열광했던 이유는, 우리만이 공감하고 알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번역된 자막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 담긴 외국 영화보다 우리나라 역사와 흐름에 맞는 캐릭터, 그리고 국민 정서를 알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서 만든 캐릭터 설정. 영화 <내부자들>의 캐릭터가 가진 경험은 뚜렷했고, 그렇기에 진부한 설정이어도 강력한 힘이 담겼다.
다시 전공 책 얘기로 돌아가면, 작가는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기에 ‘따라쟁이’가 되면 안 된다. 하지만 습작은 공부고, 그 습작을 할 작품을 찾는 것도 관건이다. 문제는, 책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시나리오의 대본집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카페에 가입해서 알아보고 또 알아봐야 원하는 대본집 하나 간신히 구한다. 그래서 이 트라우마 사전 책에 나온 갈등 상황들을 토대로 짧은 단편을 연습하면 어떨까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테고.
되게 유치하고 웃긴 얘기지만,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비는 신의 소변이고, 눈은 신의 대변일까?’ 혹은 ‘그냥 이 모든 게 신이 만든 장난은 아닐까? 우주도 신이 만든 지구의 바깥세상이고.’ 물론, 정-말 어릴 때 얘기다. 근데 그저 이런 상상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던 영화 하나가 있다
올 초에 우연히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봤다. 사실 인간 세계는 한 신의 취미 생활이고, 사실 이 ‘하느님/하느님’이라 불리는 존재는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내용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예수’는 인간 세계에 내려가서 자신의 신도를 만들어 성경을 썼으나 신은 여전히 교통사고 등으로 인간들 괴롭히기에 정신없다. 그래서 그의 딸이 인간세계로 내려가 다시 새롭게 성경을 쓰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어.. 세상에 기독교와 천주교가 얼마나 많은데 신을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건가? 욕 엄청 먹을 것 같은데.. 근데 무교인 난 재밌다. 기발한데?’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볼수록 내 어릴 적 생각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런 생각은 어릴 적 누구나 해봤을 만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만드는 건 엄연히 다른 것. 그러니 이 사전을 보면서 자신이 그냥 지나쳤던 혹은 전혀 상상치 못했던 설정으로 스토리텔링을 연습해 보는 건 어떨까?
갈등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 소소한 갈등이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갈등이든, 그저 재밌게 보고, 즐기면 끝이다. 그러려면, 상처와 감정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독자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독자가 캐릭터의 이야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트라우마 사전
-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
지은이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