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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21. 2020

글로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

우리 가족이 한 명 더 생기는 건 가봐.

사실 다른 할 일도 많고 할 에너지도 있는데, 자꾸 손에 안 잡힌다. 읽어야 하는 논문들은 이미 내 맘에서 떠난 지 일주일은 된 것 같고, 수업 준비도 일단 대강 해 놓았으니 일단 맘에서 이미 떠났다. 대략 2주 전 내가 임신이라는 (아직도 이 임신이라는 단어는 수줍고 적응이 안 된다...)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아직도 내 몸과 마음에 그리고 내 머릿속에 왜 인지 모르는 혼란스러움이 계속 남아있다. 타이밍은 참 좋긴 했다. 지금 학생으로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다 마무리되었고, 이제 박사 논문만 시작하면 되는 시점이다. 항상 아기 이야기를 해 왔고, 남편은 그냥 계획 없이 갑자기 생기는 게 더 좋겠다고 했었으니... 뭐 놀랄 일인 건 아닌데... 


2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바로 집 근처에 있는 마트가 문을 닫으면서 재고 세일을 할 때 사 두었던 (80% 할인하는 것들 중에 그냥 집어온) 임신 테스터기가 있었다. 그걸 찾아내 검사를 하고 + (임신) 사인을 봤을 땐 헉 진짜 그냥 놀랐다. 하필 너무 오래전에 사놓은 테스터기라 몇 달 전에 유통기한이 다 끝났네. 그래서 다시 좀 있다가 해 봐도 똑같은 결과였다. 그 한 박스에 3개가 들어있어서 남은 하나는 너무 믿지 않는 나를 위해 오서방 (남편)이 갑자기 비교군으로 자기가 직접 테스트를 해 보겠다고 했다. 역시 내 오서방. 뭔가 상식을 벗어나는 창의적인 사람이다. :) 나는 남자가 할 수 있냐며 웃으며 물었고 그냥 오줌으로 하는데 해 보자 라고 해서 어차피 하나 남은 것이니 해 보자며 하게 되었다. 테스트를 해 보니 임신이 확실하게 아닌 (아니 될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진하게 - (임신 아님) 사인이 떴다. '이 테스터기 정확 한 가봐?' 이젠 진짜 믿게 됐다. 나 임신인가 봐. 우리 가족이 한 명 더 생기는 건 가봐. 남편이 너무 좋아하고 신기해하니 나도 덩달아 그냥 기분이 갑자기 마냥 좋았다.

제일 밑의 것은 오서방 검사 결과 :)


여기 미국에서는 임신을 했다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0주 정도까지 전엔 병원 진료 예약을 안 받아 준단다. 그것도 물론 처음 알았고, 그 전에 유산이 잘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같이 알았다. 그래서 아예 10주부터 진료를 보는 건가? 암튼, 그래서 가장 빨리 받아주는 날에 일단 병원 예약도 하고 (검진과 초음파를 따로 1주일 간격으로 잡아줬다) 뭐 준비를 해야 하나 마음이 뭔가 분주해졌다.


근데 지금 7주 차인데 아직 2주나 더 기다려야 병원에 가서 확실하게 진찰도 받고 나와 아기의 상태도 알아볼 수 있다니. 좀 기다림이 힘들어지려고 한다. :) 남편 말로는 어차피 기다리는 것 그냥 좋은 음식 먹고 술과 커피 정도 가리면서 기분 좋게 임신 생각 너무 하지 말고 기다리면 되지 않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무리하지 않고 지내려고 한다.....하려고 하나 이미 임신이라는 사실을 일단은 알았고 몸도 너무 피곤하고 가끔 약간의 속이 미식미식해 오는 것도 있어서,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생각 이 전에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가끔은 몸이 먼저 반응을 하면 생각은 그에 따라갈 수밖에 없나 보다. 아가야, 엄마 닮았다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너무 예민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10달을 보낼 거라 믿어. (스스로에게 최면 거는 중)


아직 삼십몇 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임신은 뭔가 새롭다. (그리고 무섭다 뭔가...) 대학에 가고 미국에 유학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도 사고 뭔가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지구 상에서 없던 한 명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역시 아직도 이상해. 신기하고. 오늘 1시간짜리 PBS (미국의 EBS/교양 KBS 채널 같은?) 에서 나온 아주 옛날에 만든 듯한 임신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 과학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아주 상세하게 찍어서 만들었더라. 과학시간에 분명 본 것 같은 장면들이었는데, 나의 배를 쳐다보면서 봤더니 뭔가 역시 감회가 달랐다. 눈물도 나려고 하고. 역시 제일 효과 있는 수업/영상은 자기와 관계가 있는 것을 배우고 볼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 재간둥이 오서방은 매주 아기의 사이즈를 넣어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을 까. 다 괜찮을 거고 다 좋을 거야. 지금 사실 밖에서 보면 그냥 평소와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을 때 인데 내 마음과 머리에는 약간의 토네이도가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이럴 때 일 수록 글로 남기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게 왠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부터 만들어 놓은 브런치에 나의 대충의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졌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때는 진짜 드문데, 이제 앞으로 이런 때가 자주 올 것 같은 좋은 느낌!  


2019년 5월 18일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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