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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30. 2020

몸이 보내는 메세지

대상포진? 그게 먼데?

코로나때문에 집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된지 5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곳 미국에서는 마스크 사용을 널리 알리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이상한 광고하는 대통령...) 그냥 모두들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자가 격리 지침을 먼저 시행했다. 처음엔 레스토랑도 다 배달만 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면 잠시 중단하도록 하고, 처음부터 뭔가 제대로 잡아보려고 하나 싶었다. 그 덕분에 나와 오서방은 둘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항상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동네 산책은 날씨가 괜찮으면 거의 매일 나갔지만 집에만 있는 것도 날씨가 좋아지니 몸이 점점 근질 근질 해 졌고, 어디론가 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여름이 되니 휴가가 가고싶었던 것이겠지. 아무리 집에서 근무를 한다지만 둘다 일 스트레스에, 육아에, 살림에 집안은 엉망이고 그냥 다 멈추고 잠시 바람을 좀 쐬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운전해서 7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큰 산에 캐빈을 급하게 예약하고 월욜에 월차를 내고는 훌쩍 진짜 떠나게 되었다.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짐 쌀 것도 더 많았지만 놀러간다는 마음에 얼마나 설레고 즐겁던지. 다행히 차를 가지고 다니는 여행이라 그냥 대충 싸서 트렁크에 넣으면 되었기에 많이 힘들진 않았다.


캐빈에 도착해서는 싸온 음식을 먹으며 경치좋은 산을 구경하고 제트스파에 몸도 담구고 산에도 잠시 다녀오고 진짜 편안하고 푹 쉴 수 있는 여행을 했다. 어차피 코로나라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외식도 일절 하지 않고 진짜 우리집에서 캐빈, (독채로 있는 곳으로 예약을 했고 체크인도 이제 다 인터넷으로 하도록 되어있었다.) 산, 그리고 다시 우리집으로 오는 코스였다. 그렇게 푹 쉬고 (뿌뿌도 그 캐빈이 맘에 들었는지 밤에 잠도 잘 잤다!) 다시 집에와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진도 많이 찍고 보고싶던 산도 실컷 보고 우리 가족의 첫번째 여행을 잘 마쳐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열흘 정도가 지나서 갑자기 내 등이 엄청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뭐에 물렸거나 가끔 등이 가려울 수도 있으니 오서방한테 긁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혼자 닿을 수 있는 부분은 벅벅 긁으며 며칠을 아무 생각없이 보냈는데 거울을 보니 빨갛게 벌레에 물린 듯한 자국이 세 네개 일렬로 있었다. 그래서 '어, 이거 뭐지?'하고는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일렬로 벌레가 물린 자국은 베드버그 (한국말로 빈대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으, 무식) 라면서 얼른 매트리스를 들어 그 벌레나 핏자국을 찾고 소독을 하고 처리를 해야한단다. 그래서 우리는 단번에 그 캐빈에서 물려왔구나 하고는 얼른 매트리스를 들어 꼼꼼히 찾아보고 시트를 빨고 난리를 쳤다. 베드버그가 발견되면 그땐 어떡해야하나? 다른 방에도 다 옮겼으려나? 엄청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는 베드버그의 흔적이나 죽은 시체 같은 것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냥 찝찝한 맘으로 매일 잠을 자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내 등에 있던 빨간 벌레 물린 자국은 갑자기 두드러기와 다 익은 여드름 같이 보이는 것들이 섞여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완전 크게 번졌다. 그냥 눈으로 보기엔 너무 징그럽고 그리고 되게 따끔따끔 거렸다. 괜히 병원 갔다가 돈만 쓰고 또 약을 먹으라고 하면 모유수유를 하는데 지장이 있을 까봐 그냥 안가고 기다려 봤는데 더이상 참아서는 안 될 지경이 온 것이다. 원래 한국에서도 왠만하면 병원에 안 가고 자연의 힘으로 버텨보자 하는 경향이 있었던지라... 미국에선 더더욱 병원 가는걸 꺼려했다. (비용 등등) 하지만 오서방은 내일 일어나자마 꼭 바로 병원으로 가자하면서 나를 다독였다. (사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는 너무 무서워졌다. 사진을 첨부 할까 하다가 너무 징그러워 생략)


결국 그 다음 날 온라인으로 병원 예약을 하고 Urgent Care, 응급실 보다는 한 단계 낮지만 급하게 예약을 잡아서 가야할 때 가는 곳으로 바로 달려갔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 절차를 미리 거쳐서 내원하게 되어있었고 환자 이외에는 가족도 같이 들어올 수도 없게 되어있었다. 마침내, 의사를 만나서 부위를 보여주고 얻은 결론은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shingles 란 바이러스란다. 우리는 철떡같이 베드버그라고 믿었는데. 역시 인터넷 보고 마음대로 진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항바이러스제 약을 처방해 줄테니 그거 먹고 좀 푹 쉬고 하면 서서히 가라앉을거라고 했다. 문을 나서는 의사에게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베드버그가 아닌건 확실한거죠?"


밖에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서방에게 shingles 라고 했더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그럼 미리 얘기를 하지? 아무튼 나는 도대체 그게 뭔가 싶어서 휴대폰 영어사전으로 검색을 해보니 '대상포진'이란다. 헉, 우리엄마가 피곤하면 입 옆에 나고 했던 그 대상포진? 인터넷에 한글로 검색해보니 '나이가 들고 피곤하면 잘 걸린다. 푹 쉬어야 낫는다. 주부가 많이 걸린다'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또 육아를 하는 엄마들도 많이 걸린다고. 


한 편으론 베드버그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긴 했는데, 또 한 편으론 그 주부가 잘 걸린다는 '대상포진'에 걸렸다니,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허 해지면서 씁쓸하면서도 뭔가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매일 피곤하고 힘들긴 했지만 그냥 육아하면 다 그렇지 하고는 참고 넘어갔는데, 이렇게 몸이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니 뭔가 미안함이 들었다. 요즘 코로나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긴 내 졸업논문과 프로젝트 일이랑 그리고 항상 신경쓰고 있어야하는 아기와 집안일. 스트레스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까지 내가 힘들었나 싶었다. 


약을 먹으면 아기 찌찌도 못 주고, 또 편히 쉬어야 한다고 하니 그냥 침대에만 있어야하고.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몸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그냥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얼려놓은 모유가 꽤 많이 있었어서 그걸로 뿌뿌를 먹이고, 밤에 재우는 것도 오서방이 젖병으로 먹이고 쭉 재우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아파하니 오서방은 오서방대로 미안했던지 더 집안일도 돕고 뿌뿌도 돌보려고 하였다. 자기 자신도 일 때문에 바빠고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을텐데. 이럴 땐 주위에 도와줄 다른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뭐, 없는걸. 그냥 우리 둘 뿐이니 팀워크를 더 다질 수 밖에. 그래서 오서방에게 말 했다. '이렇게 돌봐주고 나서서 도와주는 거 고맙기는 한데, 오서방, 오서방은 아프면 절대 안돼. 그럼 아기를 돌 볼 사람도 없고 장보러 다닐 사람도 없잖아. 대충하고 쉴 땐 쉬어.'라고. 오서방은 또 가장 답게 '아이고, 걱정말고 푹 쉬세요. 그 동안 너무 수고 했고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해. 앞으로 뿌뿌를 저녁부턴 내가 무조건 재우고 책임질게.'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 날 이후로는 무조건 매일 오서방이 뿌뿌 방에서 한 두시간 씩 흔들의자에 재우고 아기 침대에 눕혀놓고 아기가 완전히 잠들 때 까지 있다가 나온다. 그 시간 만큼은 나는 내 방에서 책을 읽든, 드라마를 보든, 일을 하든, 글을 쓰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보니 왜 진작에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나의 피로도와 스트레스 지수가 쑤욱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서방은 오서방대로 내가 쉴 수 있게 하면서 자기는 그 시간동안 아기랑 가까이 있을 수 있고 또 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쉴 수 있어서 좋다고 너무 만족해 했다. 결국 윈윈!


이렇게 몸이 보내는 메세지는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했고, 이건 뭐 귀기울여 안 들어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시 한번 나의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가족이 어떻게 하면 서로 도와줄 수 있을 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몸은 좀 괴로웠지만 마음은 뭔가 더 충만해 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옆 방에서는 아기가 울고 있는 걸 쉬쉬 하면서 달래고 있고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글을 쓴다.


2020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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