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베짱이 Jul 21. 2020

나는 이제 잃을 게 너무 많다.

'이럴 거면 왜 낳았어?' 하는 말이 정당한 이유

이제 몸도 거의 회복이 되고 아기와도 점점 적응이 되고 나니 그 전엔 힘들어서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며 아기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애뜻하다. 뿌뿌도 이젠 제법 커서 거의 9키로가 다 되어가는 건장한 여아가 되었고 혼자 손빨기, 뒤집기, 앉을려고 시도 정도를 하고 있다. 저번 4개월 검진에 갔을 때 성장 그래프가 남들에 비해 키가 89%크고 몸무게가 81% 아이들 보다 더 나가는 정도라고, 'Her growth looks great!' 이라고 할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나도 모르게 나의 가슴을 쳐다봤다. 오서방도 계속 나의 모유수유를 칭찬하고 응원하며 고맙다고 매일 매일 몇 번이나 말 해 준다. 튼튼한 뿌뿌의 소세지 다리를 보면서 저 다리를 폭 하고 터뜨리면 그냥 모유가 콸콸 쏟아져 나올 것 같다면서. 나도 내 찌찌가 한 생명이 유일하게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이렇게 잘 해낼 지는 예상하지 못 했고 (예상이고 뭐고 그냥 내가 뭘 하는지도 잘 모르고 시작한 육아니깐) 그냥 별 탈 없이 엄마 찌찌 먹고 잘 크는 아가가 너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오물오물 거리며 중간에 목구멍에서 걸려서 켁켁거리면서도 엄마 찌찌를 열심히 먹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 더이상 바랄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옆에서 동영상을 보거나 내가 오서방이랑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그 소리에 먹는걸 멈추고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나 먹는데 집중좀 하게 조용해'라는 얼굴로. 그 모습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는 트름을 시켜주려고 들어올리면 많은 경우에 그냥 스스로 꺼억 하고는 큰 소리로 트름까지 해 버린다. 어떻게 그렇게 다 알고 잘 하지?


특히 코로나 때문에 온 가족이 집에만 있는 요즘엔 이런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즐겁고 감사한지. 이런 행복을 주는 우리 아가에게 무한 감사한다. 내가 예전에 우리 아빠한테 나중에 커서 효도 할게요라고 했을 때 아빠가 말 했다. '너는 이미 우리 가족으로 태어나서 웃고 재롱 떨면서 평생 할 효도는 다 했어. 그냥 재밌게 살아.'라고.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진심으로 확 와 닿았다. 이 작은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고 소중하며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부모가 진자리 마른자리 골라가며 힘겹게 아기를 돌본다지만 아기에게서 얻는 그 기쁨은 그 배가 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항상 이런 이상적인 감정만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성질난 어린 애들이 '이럴 거면 왜 낳았어?'하며 내 뱉는 화풀이가 정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결정해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므로 아이의 의사는 반영이 된 것이 없었고 아기를 낳음으로서 이미 엄마 아빠는 그 아이에게서 즐거움과 기쁨을 충분히 만끽 하였으므로 그 아이에게 더 빚을 진 모습이 된다 해야할까나. 물론 좀 서로 양보해 가며 즐겁게 지내는게 제일 좋겠지만. (아직은 신생아만 키워봐서 앞으로 더 큰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기대된다!)


하지만 이런 행복감이 더 해 질 수록 마음 한 켠엔 이런 행복을 잃어버릴까 하는 불안감도 적지않게 자리잡고 있다. 누구 하나가 다치거나 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그럼 앞으로 난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절망감에 빠지게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 판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런 불안감을 더 증가 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불안감이 드는 것은 그만큼 내가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후회없이 놀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난 그냥 오늘 죽어도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사는게 목표였고 그렇게 살려고 했었다. 후회가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죽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진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뿌뿌와 만나고 나서는 죽음이라는게 한층 무겁게 느껴졌고, 난 아직 죽고싶지 않다는 강렬한 감정이 생겼다. 그리고 이 작은 아기가 자라서 어떤 취미를 가지고 어떤 공부에 흥미를 가질 것이며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서 이 세상에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모든 것들을 보고 싶어졌다. 이젠 그냥 가볍게 살다가 죽으면 죽는 거지 하는 마음가짐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면서 드는 오만 가지 생각이 참 오묘하고 신비하다. 내가 평생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과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고나 해야할까? 이제 겨우 시작점에 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나를 흔들어 놓다니. 뿌뿌와 오서방과 나는 대단한 인연인가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걸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까 고민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생각만 해도 정말 피곤한 인생일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에 대한 생각과도 정 반대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까, 계속 생각해봐야겠다.


2020년 7월 초



작가의 이전글 골든타임 놓치고 나도 놓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