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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21. 2020

골든타임 놓치고 나도 놓치고

그 놈의 훈제연어가 뭐라고

얼마전 마트에서 훈제 요리를 할 때 그릴에 같이 태우면서 쓰는 나무를 반값 세일 하길래 사두었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요리를 할 때 쓰면 되겠다 하고는. 훈제요리가 뭔지, 어떻게 그 나무를 태워서 요리를 같이 하는건 지는 알지도 못 하면서.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 그 나무판대기를 까먹고 있다가 얼마전에 발견을 해서는 한 번 사용해 보자 싶어서 꺼내어 두었다. 마침 사 둔 연어가 있어서 연어를 구워먹기로 했다. 나무 판대기를 미리 물에 한 두시간 푹 적셔야 한다고 써 있길래 그대로 따라하고 신나게 준비했다. 하지만 ‘훈제’라는 건 불을 간접적으로 이용하는, 즉 연기로 하는 요리라 그런지 굽는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물론 그런걸 미리 조사하고 철저히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우리 배는 고파만 갔다.

그릴 위에서 잘 익어 가고 있는 훈제연어


다른 스낵들을 대충 주워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연어가 다 구워지기를 기다리다 보니 옆에 있는 아기는 이미 잘 시간 (bed time)이 지났고 그 피곤이 몰려와 점점 짜증으로 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보통 저녁 7시 30분 부터 목욕하고 책 읽고 마지막으로 엄마 찌찌를 먹고 자는데 그러면 8시 30분에서 9시쯔음엔 이미 곯아떨어져 있다. 근데 오늘은 그놈의 훈제 연어 때문에 뿌뿌가 8시 넘어까지 계속 부엌에서 피곤한 눈을 껌뻑이며 우리와 놀고 있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신생아들의 잠에 대해서 많이 읽고 그리고 직접 겪으며 알게된 점은. 아기들은 어른들과 다르게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스르륵 잠드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잠을 제대로 못 자기 때문에 울고 불고 짜증은 더 늘어나고 그래서 더 못 자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하품 한 두번 하며 생글 생글 웃을 때 그 때가 골든타임이다! 그 때 눕히면 혼자 조금 놀다가 잠에 빠져들 확률이 높아진다. (항상 혼자 잘 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하지만 그 골든타임을 놓치고 아기가 너무 피곤한 단계, 그리고 짜증의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턴 보채고 울고 하는 아기를 달래서 재우는데 까지 시간이 엄청 들어간다는 것이다. 


역시나 오늘도 그놈의 훈제연어 때문에 늦어진 잠을 재우는데 엄청난 긴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8시 반 정도 부터 흔들의자에 앉았다고 치면 거의 11시까지? 처음에 잠에 빠져드는 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나름 잘 잔다고 생각하고 아기 침대에 놓고 갔으나 금방 다시 깨서 히스테리로 꽉찬 울음소리로 우리를 다시 찾았다. 오서방이 다시 가서 달래고 안고 바운스 바운스 하고 다 해봤지만 울음이 그치지 않아 내가 다시 들어가서 재우기를 시도 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정말 갑자기 견딜 수 없을 하이피치의 고함이 섞인 울음으로 치 닫았을 때,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오서방! 난 이제 더이상 이거 못 한다. 이거 못 한다. 빨리 나랑 바꿔!!' 하고. 아기 울음 소리 때문에 오서방이 못 들을 것 같은 것도 있었지만 뭔가 나도 모르게 그냥 소리를 치고 싶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3시간 째 이렇게 하고 있는 것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짜증과 화가 '훅'하고 올라오는게 아닌가?


오서방이 재빨리 방으로 왔고 단숨에 나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우리 방으로 가서 일단 침대에 좀 누웠다. 순간의 화를 못 참은 나에게 좀 실망했고 큰 소리를 쳐서 놀라게 한 뿌뿌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물론 큰 울음 소리 때문에 그닥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린거 같진 않았지만. 그렇게 잠시 그 자리를 떠서 나를 진정시키고 다시 뿌뿌 방으로 갔다. (물론 이 둘의 방은 바로 옆이라 거의 같은 방이라 해도 상관 없을 정도로 가깝다. 그냥 문이 두개 있을 뿐) 역시나 아직도 울고 있었고 잠을 자기는 틀린 것 같은 느낌. 오서방도 지쳐보였고 나도 지쳤고 물론 뿌뿌도 지쳤다. 그래서 나는 최고 비장의 무기 찌찌를 먹이며 다시 재워보기로 한다. 거의 백이면 백 믿고 맡길 수 있는 찌찌. (이런 용도로 쓰이는 줄 마침내 알게 된 육아에 감사. 다시 한 번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며) 울며 나름 너무 지쳤던 뿌뿌는 뭔가 편안함을 느꼈는지 바로 잠에 빠져 들었고 그대로 푹 숙면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다음 날 8시 반까지 쭉 잤다. :)


우리 둘도 지쳐서 바로 잠에 들고는 그 다음날 일어나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다시 되짚어 봤다. 사건의 발단은 그놈의 훈제 연어였고 어제 잠시 맛 봤을 땐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뿌뿌가 칭얼대는 울음만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오서방은 내가 그렇게 소리치는 걸 처음 봤다면서 웃으면서 'You lost it, right?' 한국말로 풀자면 '정신줄 놓게 되지, 그렇지?' 라고 하면 딱 맞는 말 인 것 같다. 그렇게 한번 씩 소리 치고 싶을 때 큰 소리로 확 과음도 지르고 해야 된다면서 나를 위로 했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좀 실망했는지 '3시간씩 같은 자리에서 그렇게 우는걸 달래고 있어봐, 다 그렇게 되지.'라며 계속 변명같은 소리를 계속 했고 오서방은 'I understand, I understand... I would do the same!' 한국말로 하자면 '다 이해 하지 이해하지. 나도 그랬을 거야!' 그렇게 다시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하고 나니 좀 기분이 나아졌다. 스스로에게 너무 옥죌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아기가 잘 못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던 하루.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하루.


남은 훈제 연어를 크림치즈와 레몬을 살짝 뿌려 연어 크림치즈 스프레드를 만들어서 베이글에 발라 먹었는데, 오 진짜 맛있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메뉴라 엄청 먹고싶었는데 직접 집에서 해 먹으니 더 맛있고 건강한 맛! 옆에서 뿌뿌는 '거봐, 맛있다고 했지?'하는 표정으로 생긋 웃고있다.


화를 덜 내고 짜증을 참고. 항상 노력하는데 쉽게 되는 일은 아닌 건 안다. 특히 육아하면서 부모들이 겪는 힘든 점 중에 하나가 순간 순간 올라오는 이 화를 참고, 짜증을 아이한테 혹은 남편, 부인에게 내지 않도록 하는 것 인데 아 쉽지 않네. 나름 마음 공부를 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끔 이렇게 올라오는 화에 '워 워' 하면서 참을인을 몇 번이나 새기고 새기지만 깨달음의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다시 써 봄으로서 왜 화가 났으며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이 올라왔는지 다시 되짚어 보는 건 앞으로 더 즐겁고 행복하고 더 편안한 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한다. 


일단, 오늘의 교훈은: 일단 아이를 키울 동안은 너무 어렵고 복잡한 요리는 자제하자.


2020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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