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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21. 2020

잠시나마 우리가 여기 주인입니다.

미국 병원 경험

임신을 하고나서 한국에서도 잘 안 가던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게 됐다. 미국은 병원비가 비싸고 서비스가 안 좋고 하는 너무 안 좋은 소리들을 많이 들었던 터라 그닥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외국인이고 모르는 용어 투성이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나의 긴장감은 배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짧게 정리해서 말하자면 미리 했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고 내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말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다 살아지게 된다.' 라는 말이 맞았다. 다행히 우리는 직장에서 들어준 건강보험이 있었고, 임신과 출산까지 다 해서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항상 오서방이 함께 동행해 주었고 궁금한 점을 미리 적어가서 따박따박 같이 질문 해 주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의 미국에서의 병원 경험은 사실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의사를 포함한 모든 스탭들이 미국인 특유의 프렌들리 함으로 엄청 친절 했고, (갈 때 마다 기억해 주고 농담을 얼마나 하던지. 고마운 분들이다 :) 보통 의사라고 가지는 잘난 말투나 환자를 가르치려 드는 그런 태도는 보기 힘들었다.


오늘 내가 이 글에서 쓰고 싶었던 한국 병원과 다른 점은 바로 병원의 공간의 구조적 차이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병원을 그렇게 자주 다니진 않았기 때문에 항상 이런 것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냥 어디까지나 내가 느끼고 봐온 선에서 얘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미국에서도 산부인과나 소아과 둘 다 먼저 처음에 접수를 한 다음 이름이 불릴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은 같다. 하지만 이름이 불리고 나서는 바로 의사 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그마한 개인 진료실 혹은 작은 방으로 간다. 그리고는 간호사가 와서 기본적인 질문들을 하고 체크 할 것들을 체크하고 나간다. 그러고 조금 있으면 담당 의사가 들어와서 진료를 시작한다. 모든 진료가 끝나면 의사는 다음에 보자 하고는 그 방을 나간다.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그 작은 개인 진료방 (나는 방이라고 부르는게 더 알맞은 것 같다. 진짜 그냥 방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싱크대 딸린 방?)에서 간호사나 의사를 기다릴 때엔 오로지 우리만 그 방에 있으며 우리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손님 (여기서는 간호사나 의사)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 손님은 꼭 우리가 주인인 방에 들어오는 것 처럼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그러면서 'How are we doing today? 잘 지냈어요?' 하는 식의 인사를 하며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우리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진료를 시작한다. 사실 진료라기 보다는 그냥 캐주얼 하게 묻고 답하는 대화에 의학적인 단어가 섞인 느낌이랄까? 그렇게 진료가 끝나면 의사는 그 방을 나가고 다시 그 방에는 우리만 남는다. 옷을 다시 갈아입어야 하면 옷을 갈아입고 우리끼리 급히 할 얘기가 있었으면 그 대화를 계속 한다. (의사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는 상의하고 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자주있었다. 어떤 검사를 할건지, 어떤 출산 방법을 할 건지 등등. 항상 일단 들어보고 나중에 결정하라고 해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언제든 우리가 그 방을 나갈 준비가 되었을 때 나가면 된다. 아무도 우리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 아기가 예방 접종을 했을 때도 이 방에서 주사를 맞았고 당연히 아기가 크게 울었다. 그러니 간호사는 자기가 나가고 이 방에서 수유를 하든 아기를 잠시 안고 있든 마음껏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가고 싶을 때 나가도 된다고 했다. 


이 처럼 병원에서의 공간이 어떻게 디자인되고 사용되는 가에 따라 환자로써 경험/감정이 달라지는 것 같다. 처음엔 약간 다른 시스템에 좀 불안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잠깐이지만 내가 주인인양 머물렀던 그 작은 개인 진료방이 내 방 처럼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고, 그 곳에서 나누는 대화, 진료도 점차 익숙해졌다. 이렇게 공간이 만들어내는 관계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그 작은 (혹은 크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차이로 내가 느끼는 감정, 대화가 크게 달라지고 누가 그 관계의 주인이 되는 가 하는 큰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그 주인이 되었을 때 그 관계에서의 주도권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나 할까. 수동적으로 질문에 답변만 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 질문을 꺼내어도 보고, 의사가 말하는 것에 반대도 해 보고, 다음 계획을 먼저 짜보자고 제안해 볼 수도 있고.


공간이 주는 힘, 흥미롭다.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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