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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21. 2020

지금쯤이면 잠이 올텐데?

서로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

이제 우리아기와 함께한지 네달. 서로의 생체리듬에 꽤 적응했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처음 한 두달은 잠 때문에 그렇게 힘들더니 2개월이 지나면서 갑자기 밤에 잠을 4, 5시간 쭉 자기 시작해서는 3개월이 지나서 부터는 거의 깨지 않고 8시간, 10시간 쭉 잘 자는 건강한 아가가 되었다. 사놓고 언제 쓰려나 했던 베이비 캠도 이제 쓰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 말인 즉슨 아가는 자기 방 아기 침대에서 따로 잘 자기 시작했다는 말!) 느긋하게 차 한잔 하면서 베이비 캠 앱을 열어 아기가 자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시간도 생기게 되었다. 물론, 어떨 때는 잔다고 생각하고 폰에서 앱을 열었는데 아기의 두 눈이 똭 나를 쳐다보고 있어 다시 재우러 후다닥 간 적도 있지만.


 4개월이 지나고 부터는 밤 중간에 잘 깨는 일 없이 밤 여덟시부터 자기 시작해서는 아침 7시, 8시 정도까지 쭉 자는 기특함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잘 해보자!) 아침에는 자기가 저절로 눈이 떠 질 때까지 잠을 자고는 혼자 깨서 손을 만지작 만지작 혹은 발을 몇 번 매트리스에 탕탕 튕기고 혹은 너무 심심할 땐 몸을 뒤집어 엎드려서는 낑낑대고 있다. 이렇게 천천히 깨서 혼자 침대에서 명상(?)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나도 침대에서 좀 쉬고, 혹은 그 전에 깨서 부엌에서 후다닥 먼저 모유 유축을 한다. (밤새 꽉찬 가슴이 정말 아프다. 흐흐 그리고 질질 우유가 새어나오기 시작해서 누워있지도 못한다!) 그리고는 다시 베이비 캠을 확인하고 아기가 혼자 대충 명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면 아빠나 내가 가서 반갑게 하이피치 톤으로 인사하며 안아준다. 그 때 아기가 나를 보며 짓는 미소란.... 정말 감격스럽고 내가 이런 축복을 다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맙고 감동이고 너무 예쁘고 어떻게 말로 표현 하지 못 할 그리고 내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좋은데 감격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너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근데 우리가 직접 낳은 이 세상에 없던, 나와 같은 인간 종류이지만 그냥 육체적으로 아주 작은 그런 존재. 그런.


이렇게 매일매일 우리의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되면서 내가 언제쯤 아기가 깨어날 것이라는 것을 대충 알 수 있는 것 처럼 아기도 대충 이맘 때 쯤이면 자야 겠다, 혹은 일어나야겠다 하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낯선 지구별에 떨어져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무서울 수도 있는 공간에서 자기를 계속해서 케어해 주고 자기가 조금 불편하면 바로 알아차리고 (바로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결 해 주는 엄마 아빠에게 조금씩 조금씩 신뢰가 쌓여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깨끗하고 쾌적한 침대에서 오래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나서 혼자 천천히 기지개도 하고 혼자 손도 만지작 발도 만지작 조용히 놀고 있다 보면 엄마나 아빠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와서는 축축한 기저귀도 갈아주고 맛있는 아침도 먹을 수 있다는 그런 신뢰. 그런 믿음 덕분에 혼자 일어나도 아기는 울지 않고 혼자 그렇게 잘 해낼 수 있는게 아닐까나? 따지고 보면 아기가 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지는 내 힘으로 알 방도가 없다. 그냥 그런게 아닐까 하고 좋은 쪽으로 믿어보는 수 밖에. :) 사실 아기가 깨는 시간이 매일 완전히 똑같지 않고 그리고 우리보다 일찍 깨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완전히 아기의 행동을 파악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잠에서 비몽사몽으로 깨서 폰을 겨우 잡고 베이비 캠을 살짝 봤을 때 아기 혼자 손을 잼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놀래서 깬지 얼마나 됐나 하고 그 전 저장된 영상을 보면 10분 15분 전에 이미 혼자 깨서 조용히 명상 중인 (놀고 있는) 아기를 보면 얼마나 흐뭇하던지. 우리가 너무 오지 않으면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깨어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아침 그리고 오후 낮잠시간에도 엄마 찌찌를 먹고 좀 놀다가 잠이 올 타이밍인데, 하고 유심히 얼굴을 보면 멍하니 어디 한 곳을 바라보거나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거나 할 때 얼른 아기 침대로 옮겨 가거나 우리 침대에 같이 누워서 인형이랑 놀다보면 어느새 혼자 스르륵 잠들어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 타이밍이란게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이라도 그 타이밍을 놓치면 울고 떼를 써서 혼자 잠을 자기는 커녕 계속 징징대는 것이다. 그럴 땐 작은 그네에 태워서 재우거나 안아주고 달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가가 원하는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처음엔 이런 시간이 힘들고 짜증이 날법도 했는데 이젠 찡찡대는 빈도가 좀 적어지고 또 그냥 '그럴 수도 있지'라고 웃어 넘기니 또 별일이 아닌 것처럼 되긴 한다. 


아무튼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알아차리고 별 탈 없이 재우고 놀고 먹이고 할 때, 뭐라 할까 엄마로서의 자신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우리 딸인데 당연히 우리가 제일 잘 알지!라는 믿음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 썩 나쁘지 않다. 아니 너무 너무 자랑스럽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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