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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Mar 21. 2021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한다는 것

벌써 먹는 것도 1인분을 먹으니까 뭐...

이제 돌이 막 지난 뿌뿌는 제법 잘 걸어다니고, 말도 제법 잘 알아 듣고, 말하고 (나름의 언어로), 웃고, 노래하고, 춤도 추고, 잘 먹고, 그리고 잘 잔다. 얼마나 뿌듯한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이런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우리 아가에게 항상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는거 달래고, 더럽게 먹은거 다 치우고, 기저귀 갈고, 하루하루는 더디고 힘들게 가는 것 같아도 한 달, 일 년은 얼마나 빨리 가는지. 영어로도 엄마들끼리 하는 표현이 있더라. "The days are long, but the years are short." 그리고 아기의 성장속도를 감안해 보면 그 하루하루 사이에도 또 변화가 생기니 더더욱 현재와 지금에 집중하고 그리고 감사하며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뭐, 깔깔 웃어대며 책을 보고, 뭐 별 것도 아니었는데 "우와~" 하며 큰 눈을 뜨고는 감탄하는 것을 보면 이런 힘듬쯤이야.


특히 요즘엔 뭔가 언어로의 소통이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면서 이제는 그냥 누워서 생글생글 거리던 아기가 아니라 (물론 그런 시절은 지난지 오래지만) 뭔가 자기라는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느낌이 많이 든다. 자기 주장도 강해지고 그리고 그 주장을 엄마 아빠에게 부지런히 알리려고 엄청 노력 하며 (대부분 먹을 것을 달라는 소리), 나의 간단한 말에는 제법 잘 알아 들으며 제대로 반응한다. 예를 들면 "책 가져와서 볼까? 책 보자" 라고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서 내 손에 쥐어주고는 내 무릎에 털썩하고는 앉는다. 그리고는 그 책의 책장을 휙휙 넘기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며 웃고 소리지른다. 또 산책가자는 신호로 양말을 신자고 하면 발을 내밀고 내가 "가자" 하면서 문쪽으로 가면 안아달라고 두 팔을 번쩍 든다.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태어난지 1년 갓 지난 아기가 이제는 어느새 사람다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니. 


더 재미 있는건, 아무리 아기라 하여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설명해 주고, 뭘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쥐고 장난을 치고 있을 때, 그냥 장난치고 있으니 뺏아야겠다 생각하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홱 낚아채면 뿌뿌는 그 자리에서 엄청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왜 가만히 있는 내 숟가락을 가져가냐고 하는 말투로. 그래서 다시 손에 쥐어주고 "이제 밥은 다 먹었지? All done?" 하면서 수화로 다 끝났다는 신호 (손바닥으로 반짝반짝 하는 식)를 하고 "이제 숟가락은 필요 없으니까 엄마한테 주세요, 지금 줄래?" 하고 달라는 시늉을 하며 손바닥을 내밀면 그 때는 우는 것 없이 살짝 웃으며 그냥 숟가락을 바로 넘겨준다. 처음에는 이런 패턴을 바로 알아차리진 못 했는데 점점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아, 설명을 해 주는게 중요하구나. 나 같아도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뭘 뺏아가면 싫겠다.' 라는 간단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이후 부터는 뭘 손에 가지고 있던 (같이 놀고 있던 쓰레기 같은 것도), 달라고 물어보고 손을 내밀면 쉽게 나에게 넘겨줬고 우는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말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전제 하에 최대한 뿌뿌의 의견을 물어볼 수 있는 건 물어보고 (뭐 먹을래? 바나나 아니면 귤? 하면서 두개를 보여주고 손으로 고르게 하면 엄청 뿌듯해 하며 고른 과일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언질(?)을 해 준다. 예를 들면, 놀이터에서 한창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그냥 우리가 이제 갈 시간이 됐다고 생각해서 아기를 훌쩍 들어 올려서 강제로 유모차에 태우려고 하면 아기는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는 미리 5분 정도 전에 진짜 우리 말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이 그네만 타고 가는거야. 5분만 여기서 더 뛰어놀다가 가자."라는 식으로 일단 말은 해 준다. 자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잘 놀고 있는 아이를 그냥 데려다 재우면 마음이 상할 수 밖에. 그래서 우리는 마무리 정리 놀이를 하고, 목욕을 하고, 잠 옷을 입고는 남편이 뿌뿌를 안고 이제 피곤하니 자러 가야할 시간이다 라고 설명을 해 주고 주위에 보이는 것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Good night, windows, good night, water, good night trees, good night door,,,, Good night, Mom." 그러면서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둘이 아기 방에 들어가서 1분 정도 안아주다가 침대에 눕혀 놓고 나온다. 그럼 그렇게 잠들어서는 12시간 정도 후에 일어난다. 후후후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또 일어나서는 아침부터 "하이~" 하면서 재잘재잘 하루를 시작한다.


저 가파른 언덕을 혼자 올라가보겠다고 해서 옆에서 도와주는 중


진짜 이 대단한 성장속도를 따라잡는 게 생각보다 힘들고 또 재미있는 것 같다. 벌써부터 자기만의 성격, 세계관을 쌓아간다는 이 느낌,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진짜 큰 특권이고 선물인 것 같다. 내일은 또 어떻게 웃겨줄까 고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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