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웹디자이너가 되려는 준비를 시작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
(이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퇴사후 몇 개월 후 포폴이 준비되고 면접을 보러 다녔고 일을 했으면 하는 회사들이 있었지만 선뜻 취업을 하는게 망설여졌다. 그리고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너는 1년동안 뭘 했니?
나가서 논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것도 아니고
무엇을 했니?
난 무슨 답변을 해야 했을까?
어머니는 나의 1년을 놀았다고 표현하셨다.
나는 놀았을까?
나는 어디 나가서 논적은 거의 없다. 해외도 가지 않았다.
집콕의 삶을 살았다는게 더 맞다.
포폴을 준비하고 개인공부를 하면서 지냈다.
어머니의 눈에는 노는 걸로 보였나보다.
안타깝게.
39살 왜 미혼이냐고 묻는다면 난 좋은사람이 없었다고 말을 한다.
혹시 비혼주의??
그럴리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 돌싱인가??
미혼일뿐이다. 돌싱 아니다.
딩크족을 생각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현대의 삶에서 고민은 되지만. 고민만 할 뿐.
연애는 해보셨는지? 서로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되는 연애?
그런 오랜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모쏠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짧은 만남들은 있었지만 오래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는 연애가 없을 뿐이다.
그럼 소개팅은?
그래도 아주 많지도 아주 적지도 않은 적당하게 해보았다.
그 중에 좋은 사람이 있었지만 오래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자만추'를 못하는 사람인데.
그사람이 그사람 같은 느낌이고 사람에 많이 무감각함이 있다.
즉, 그냥 봐서는 잘 모른다.
좋아했던 사람은 있었나?
좋아했던 사람은 있었다.
철이 들고 총 3번 좋아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첫번째에
고백했지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 상처를 받고 고생을 했다.
마음을 비우는데 오래 걸렸다.
두번째에도
고백했지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누구를 좋아할 마음이 없었는데 좋아하게 되서 였다고 생각한다.
이때 마음의 상처가 몇년은 갔던게 기억난다.
세번째도
고백했지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는 그런가? 씁쓸하면서 살짝은 담담한 마음이였다.
이정도면 나에게 문제가 많은가 보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럼 소개팅은 또 했는가?
이 세월동안 중간중간 소개팅을 했는데.
잘 될 수 있던 기회가 있었지만
잘 안되서 이 나이먹고 솔로 생활이다.
그럼 만남은 가질 생각은 있는가?
그렇다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여전히 내 옆에 없는게 안타깝다.
이번해에는 만나고 싶다. 있을까?
(애청하는 프로그램은 나는솔로와 나솔사계 애청자이다.)
라고 '이전 글'을 끝내면서 했던 말이다.
웹디자이너
웹디자이너는 회사마다 하는 일들이 천차만별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다양하다. 그래서 웹디자이너로 일을 할 건데 어떤 웹디자이너가 될건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정한 웹디자이너로 성장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웹디자이너로 살아가면서 웹디자이너가 아닌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나의 경우 쇼핑몰에서 출발한 웹디자이너이다. 웹디자이너인데 쇼핑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다. 쇼핑몰하면 온라인에 더 특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거다. MD일도 한발 걸치고 마케팅일도 한발 걸치고 촬영도 한발 걸치고 사입도 한발 걸치고 등등 쇼핑몰에서 하는 일들에 한발 걸친 웹디자이너인것이다.
그럼 웹디자이너의 일반적인 인식은 무엇일까?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디자인에 특화된 웹디자이너를 볼 수 있다.
웹사이트 디자인을 만드는 웹디자이너. 사이트 제작에 참여하는 웹디자이너.
대기업이나 기업에서 요청이 오는 상세페이지, 프로모션 등의 디자인만 만드는 웹디자이너.
나의 특색으로 인해 면접은 쇼핑몰 쪽에서 보통 면접제의가 들어온다.
내가 에이전시에 넣으면 연락은 오지 않는다.
신입 웹디자이너가 아닌 경력 웹디자이너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즉 할 줄 아는게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웹디자이너니까 이거 하나만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할 줄 아는 부분이 있는가가 중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작은 회사에서 굴러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작은 회사에서 저렴한?연봉을 받으면서 일을 했었다. 그 당시 나는 내 자리가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좋았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큰회사에서는 파트가 잘 나눠져 있어서 다른 부분은 모를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회사는 나이가 있는 사람을 안쓸려고 한다. 그리고 연봉을 많이 줄 수도 없고 많이 주지 않는다.
나는 웹디자이너로 지금은 살아가지만 나중에도 웹디자이너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웹디자이너는 웹에 대한 디자인을 책임지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쇼핑몰관리라는 업무가 있다. 이건 웹디자이너의 일인가? 운영적인 부분이 들어간다. 여기서 운영 관리도 하면서 웹디자이너를 한다는 것이다.
촬영도 한다. 웹을 디자인하는 게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웹디자이너로의 커리어에 많은 부분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일을 하는데 나이는 들어가고 웹에 대한 디자인을 회사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게 되면? 커리어 부족에 시달리는 곳이 쇼핑몰 웹디자이너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쪽으로 더 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웹디자이너의 실력은 개인에 따라 다른데. 회사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공부하기 사실 힘이 든다. 일끝나고 오면 밥먹고 씻고 하면 잠잘시간? 조금 공부할 시간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일만해도 바쁘고 일 외에도 일만 생각하기도 바쁘다.
그리고 웹디자인을 하면서도 그외의 웹디자이너의 일들을 더 많이 하게 될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배우고 익히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럼 웹디자인은 언제 하고 실력을 늘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웹디자이너로 몇살까지 할 수 있을것 같은가? 지금도 당신은 늦었습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다닌다.
회사입장에서는 젋은 사람들을 채용하는게 당연한것이고.
웹디자이너이지만 다른 것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앞으로의 개인적인 욕심은 프론트엔드 영역까지 확장된 웹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을 나름 동경하고 있기도 해서 이런쪽으로 공부를 더 해나가고 싶다.
39살 나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편에서 면접이야기와 어떻게 가구 웹디자이너 팀장이 되었는지 그리고 처음 무슨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지 등을 다뤄볼까 한다. 다음편을 기대해주기를.)
나를 뽑으려는 곳은 없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예전 바리스타로 일을 할때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었고 자신감 있게 지원을 했나갔다. 면접을 여러군데에서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일하는 조건이 하나 추가 되었는데 운전을 할 수 있는가였다. 면허증이 있던 나는 가능했고 그렇게 처음 바리스타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때도 나이에 대한 언급은 계속 말이 나왔다. 당신은 늦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건 뭘까?
커피를 만드는 사람+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
한가지만 할 줄 아는게 아닌 뭔가 한가지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에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나는 어떨까? 웹디자이너의 경력이 짧기도 하고 디자이너로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이것만이 아닌 다른 경험의 것들이 많이 있다. 온라인쪽에서 일한 경험치와 오프라인쪽에서 일한 경험치. 이 다른 것들에서 분명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이 부분을 원하시는 회사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긍적적인 생각을 했다.
면접제의가 오는 곳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게 보인다. 규모가 큰곳에는 나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규모가 큰 회사들이 더 연봉이 적다. 작은 중소기업에서 나를 부른다. 이것저것 해줬으면 해서 부른다는 것을 안다. 중소기업은 연봉이 맞는곳도 적게 주려는 곳도 다양하다.
면접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항상 면접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결국에는 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온다. 그리고 그 나이가 많을수록 부정적이다.
내 나이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것이지만 사회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받는다는 것. 이것이 가능한것인가?
면접을 보면서 나는 한소리 들을 것도 생각을 한다.
이나이먹고 이걸하겠다고?
나이가 이런데?
나이보다는 생각을 봐주길 바란다.
39살 청년에 들지 못하는 나이.
무언가 이루지 못한 나는 서글프다.
내가 못난사람이고 그런 사람이지만
그 현실을 알아서 더 서글프다.
나도 이룩하고 싶지 않은건 아니지만
현실은 이런 사람이라 서글프다.
결론적부터 말을 하자면 어쩌면 내가 학원을 잘못 선택했나? 이런생각이 들기도 했다.
디자인학원이 아니라 부트캠퍼스로 갔어야 했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처음 나의 목표점은 ui/ux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나의 멍청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ui/ux디자이너에 대한 것을 검색하다가 홍대에 있는 디자인 학원을 찾았다. 나의 처음 학원을 갔던 이야기는 나의 전 이야기 00."다시"웹디자이너가 되려는 준비를 시작했다. 에서 언급을 했다.
지금에서야 말을 하지만 디자인 학원의 시설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왜?
컴퓨터가 좋지 못했다. 컴퓨터를 다뤄야 하는 곳에서 컴퓨터가 안좋다니. 맙소사다.
웹디자인 반에 있다가 잠깐 편집디자인반에 간적이 있는데 수강생들이 전부 자기 노트북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노트북이 없어서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썩 좋지는 않았다. 느린게 느껴졌다. 그래서 수업의 방향만 듣고 작업은 집에가서 내 컴퓨터로 진행을 했다.
처음 학원에 가서 원장님의 말을 듣고 홀라당 넘어가서 돈을 지불해서 다음날 갔더니 샘에게 ui/ux디자이너가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먹었다고. 현실적으로 준비하는데 시간이 몇년 생각해야 한다고. 지금 나이에 몇년한다고 해도 신입으로 들어갈건데. 그게 좋겠냐고. 원래 있는 경력을 살려서 웹디자이너가 되라고.
현실을 일깨워졌던 샘이다.
수업에 대한 나의 또다른 판단미스. 나는 1:1로 케어를 해주는 그런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2시간이라는 시간에 오로지 나에게 집중되는 케어가 아닌 샘 한명에 다수의 수강생들이 그 수업시간에 잠깐씩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이였다.
1:1 케어라고 써있었는데. 사이트에는. 아. 미스다.
포폴을 만들면서 기획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그 길이 아니야. 이렇게 해야해. 하는 잠깐의 피드백은 맘에 들었다.
하지만 샘의 짜증스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건 불편했지만 나는 견뎌냈다. (그래도 샘 감사합니다.)
이제는 나름 불만스러운 학원도 추억이 되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지냈던 나의 시간들이였다. 그 순간순간을 보고 싶으면 나의 전글 "다시"웹디자이너가 되려는 준비를 시작했다. 를 읽어보기 바란다.
앞으로의 글 가구 웹디자이너 팀장이 되었다. 글을 꾸준히 읽어주기를 바란다.
브런치스토리의 글을 읽었던 처음이 생각난다. 어떤 형사분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은퇴를 해서 형사때 이야기를 다루는 글이였다. 틈틈히 잼있게 읽다가 브런치스토리에 나도 글을 써볼까?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스토리의 글은 몇년이 지나도 그 글을 읽게 된다고 생각한다. 모바일 디자인을 하면서 찾아보던 글도 몇년이 지났는데도 유용한 내용이 많아서 여러번 들러서 본적이 있다. 희소되지 않는 글 같았다. 이곳에 쓰는 글들이. 그래서 나도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