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거절해 보자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내려온 고질병이 있다. 바로 ‘거절하지 못하는 병’이다.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향 탓일까. 나는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그 사람이 마음 상하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대부분 “그래요” 하고 수락해 버린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내가 불편해지고, 손해를 보는 일도 생긴다.
지난주 일이 그랬다.
단체로 참여해야 하는 행사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갔는데,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 함께 숙박하면 서로 불편할 것 같아 행사장 근처에 혼자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단체 쪽에서 차량이 필요하다며 부탁을 해왔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왕복 한 시간 반을 운전했다. 물론 함께 이동하며 좋은 풍경도 보고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다. 특히 혼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느낀 허탈함이 오래 남았다.
그때 다짐했다.
‘거절도 연습이 필요하구나. 나에게는 그 연습이 간절히 필요하구나.’
그래서 오늘은 아버지께 여쭤보려 한다.
어떻게 하면 마음 불편하지 않게,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제가 다시 질문하는 날이네요!
오늘의 주제는 ‘거절하는 방법’이에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명 제가 손해 보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는 정말 이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절해야 하는 제안이나 부탁을 현명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거절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거절의 기술’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훈련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를 지켜내야 할까요?
아빠도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셨나요?
한희의 질문만으로는 고민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워서, 무엇 때문에 거절이 힘든지 조금 더 물어보았다.
한희는 누군가를 거절하면 ‘그 사람이 날 미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 거절이 불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타인을 챙기느라 자신의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슬기롭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랬다. 내가 젊었을 때는, 가게에 들어가서 제품을 둘러보다가 완전하게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이 아님에도, 애써 수고한 판매원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아는 한희는 나만큼 심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관계지향성과 타인지향성은 나와 비슷하게 큰 편이다.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은 다양한 정서적, 인지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 거절을 잘 못해서 일상이 무너질 정도라면, 그 이유를 세밀히 살펴보고 인지행동치료(CBT)나 REBT 같은 심리치료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이 무너질 만큼의 문제라기보다, 거절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줄이고 센스 있게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수준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치료적 접근보다 한희가 원하는 것처럼 해결방법을 찾는 코칭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거절이 힘든 사람들은 보통 타인에 대한 과잉 책임감과 관계단절 불안, 그리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적 자기 가치 신념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성향은 사회적 존재인 우리에게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과도해졌을 때일 것이다.
한희는 스스로 불편 포인트를 알고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거절을 잘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른 어떤 탐색과정은 빼고, 담백하게 해결중심적인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이 영상은 내가 모터사이클로 전국투어를 할 당시 넘어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나는 이 당시 라이딩을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초보였다. 그래서 모터사이클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했을 때이다.
한참 언덕길을 오르는 중에 앞서 가던 멤버가 넘어져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언덜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분들은 알겠지만 언덕길에서의 급정거는 넘어질 확률을 높이는 행동이다. 나는 결국 쓰러졌다. 그런데 내 뒤를 따르던 다른 멤버들은 나와 앞에 넘어져 있는 친구를 지나 평지가 나올 때까지 이동한 후, 차를 안전하게 세우고 나서야 우리를 도우러 왔다. 멤버들이 넘어진 우리를 지나쳐 갈 때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멤버들의 행동이 현명했던 것이다.
그때 배웠다. 내가 우선 안전한 곳을 확보해야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상황은 감안하지 않은 채 남을 돕겠다는 마음만 앞세웠다가는 나도 다치고 그도 도울 수 없음을 그때 크게 깨달았다.
비행기를 타면 비상시 안전행동에 대한 안내를 한다. 그때도 이렇게 안내한다. 비상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면, 먼저 자신의 것을 착용한 뒤 옆사람을 도와야 한다라고.
상상을 해보자. 가족여행 중에 비행기를 탔는데 비상상황이 발생해서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타인지향성, 관계지향성 그런 것보다 가장 먼저 앞서는 부성애, 모성애, 가족애가 등장해서 나보다 아이들, 가족들을 먼저 챙기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이에게 산소마스크를 채우느라 내가 정신을 잃을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우선 자신을 챙긴 후에 옆사람을 챙기라고 안내하는 것일 거다.
거절도 그런 것 같다. 우호성이 높은 성격이고 관계지향성과 타인지향성이 높은 경우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먼저 안전함을 확보한 후에 타인을 챙길 수 있음을 인지적으로 알고,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명제임을 인정하고, 실천훈련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훈련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거절도 쪼개서 생각해 보자’이다. 거절의 크기도 다양할 텐데 그 모든 것을 하나의 거절로 보고 거절 전체를 잘하는 법을 고민하기보다는, 거절별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보면 좋겠다.
한희의 예를 들면, ‘랩실원들과 교수님의 카풀 요청은 아직 거절 못하겠으니 우선 미뤄둔다. 하지만 그 외 사람들의 카풀요청은 거절한다.’라고 구분해서 거절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던바의 법칙에서 말하는 단계별 사회적 관계망을 기준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던바의 법칙 첫 번째, 두 번째 단계에 속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요청은 들어주되, 나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만 들어주자.'
이런 정도의 작은 원칙들을 정해두고 거절 연습을 해보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한희와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절은 참 어렵다. 그래서 고민도 많다.
우선은 내가 안전해야 한다. 내 에너지가 충분해야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지적으로 확인하고, 나를 먼저 챙기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그런 후 상황을 전체로 보지 말고 구분하고 분리하고 나눠서 보면서 조그만 상황, 쉬운 상황부터 하나씩 훈련해 보자.
그렇게 우리 같은 성향의 사람들도 거절의 고수(?)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