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바라는 응원은?

마치고 닭갈비집 가자는 응원

by 최용

이번에는 아빠가 궁금한 걸 물을 차례네.


늘 대답만 했지 한희에게 질문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 아주 아주 어색하구먼.

그러고 보니 아빠는 왜 한희에게 질문할 생각을 못했을까? 부모도 자식에게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 늘 대답하는 역할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


아, 아빠의 질문이 이건 아니고, 우리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걱정 아닌 응원’에 대한 한희의 생각을 묻고 싶어.


아빠는 한희가 프로테스트 마지막 날 아빠에게 보낸 문자를 받던 그 순간의 느낌이랑 감정을 잊을 수가 없거든. 한희가 보낸 문자를 본 순간, ‘아.. 맞네, 그러네. 우리가 한희에게 해야 할 건 걱정이 아니라 응원이네. 한희가 다 컸네. 나 보다 생각이 더 크네’라는 깨달음이 들면서, 굉장히 따뜻한 감정도 들었었어.


그 이후로 아빠는 걱정이 아닌 응원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나름 공부하고, 또 실천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 심리학 공부하면서, 그리고 코칭수련받으면서 나름 훈련도 하게 되었고.


그런데 정작 한희에게 아빠가 직접 물었던 적은 없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걸 질문하려고 해.

“한희가 딸로서 부모에게 받고 싶은 응원은 어떤 걸까? 그리고, 어떤 걱정이 불편할까?”




그러게요, 저도 아빠한테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어색하긴 하네요.


아빠의 질문을 받고 ‘나에게 도움 되는, 내가 받고 싶은 응원이 뭘까’에 대해서 한참 고민을 해보았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응원은 “나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응원, 말하자면 내가 동기를 갖게 해주는 응원”이에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지난달 병원에서 퇴원해 와서 우울해져 있던 날 아빠가 해주신 응원 같은 거예요.


퇴원했지만 아직 몸에 부착된 치료장치 때문에 힘들었었어요. 그리고 그걸 떼러 가야 하는 날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고요. 그때 아빠가 “치료 잘 받고 와서 한희가 좋아하는 닭갈비 집 갈까?” 해주셨을 때 기분이 좋아졌었어요.


사실 치료장치 제거할 때의 고통이 걱정되어서 그날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고통의 걱정은 줄어들고 ’얼른 다녀와서 맛있는 닭갈비 먹으러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응원은 실패의 걱정을 잊고, 일이 잘 해결되고 난 후인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어서 설렘이 커지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을 줄여주는 응원”도 저한테 좋은 것 같아요.

지난번 글에서 아빠랑 나눈 이야기처럼, 저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걱정과 두려움이 많은 편이라 “이 일이(이 상황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그러니 후회 없게, 자신 있게 해 보자” 와 같은, 과도한 걱정을 멈추게 해주는 응원이 정말 많은 힘이 돼요.


또, “멀리서 바라보는 응원”을 받고 싶어요.

일이나 상황이 시작된 후에는 관여하지 않고 저를 믿고 바라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조언과 같은 터치를 하면 스트레스받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죠? 겨우 불안함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데 누군가 도움을 준다면 그건 도움이 아니라 방해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다시 불안함이 시작되기 때문에, 충분히 응원해 주셨으니 상황이 시작된 후에는 그저 멀리서 바라봐주시는 게 저에겐 큰 힘이 되는 응원인 것 같아요.


제가 불편했던 걱정은 떠오르지 않아요. 사실 지금까지 이해되는 걱정(부모로서 자식에게 할 수 있는 걱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아요.

제가 시합을 다니던 시절엔 우려가 담긴 걱정을 하실 때가 당연히 있었지만 그것 또한 불편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에겐 자극제가 되었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걱정 앞으로는 안 하시게 이번에 꼭 해내야겠다” 와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 예로 아빠가 말씀하신 프로테스트 날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말로 표현은 안 하시지만 표정에 많은 걱정이 담겨 있는 게 보였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라커룸에 들어가서 준비를 마치고 “응원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말고 계세요~”라고 보냈어요. ‘걱정이 무색하게 해내고 멋있게 돌아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빠의 걱정이 불편하지 않아요. 걱정 속에 우려와 응원이 담겨있을 것을 다 아니까요!

앞으로도 걱정은 덜어내고 무한한 응원으로 저에게 힘을 주세요~




한희의 답에서 걱정과 응원의 차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걱정은 현재를 건드리고 응원은 미래를 기다린다.

'너 잘 안될까 봐 걱정돼서 그래'라는 말처럼, 걱정도 미래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걱정은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것들에 관여하는 작업이다. 반면, 응원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응원은 현재를 건드리지 않는다. 응원은 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며 힘을 줄 뿐이다.


'숙제 다 하면 게임하게 해 줄게'는 걱정이 기반이 된 조건제시와 행동강화이고, '숙제를 마치고 게임하면 마음이 더 편하고 즐겁지 않을까?'는 미래의 마음을 바라는 응원이다.

'참아, 그럼 닭갈비 사줄게'처럼 현재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치료 마치고 닭갈빗집 갈까'라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이어서 응원이 된 것 같다.


'두려움을 줄여 줄 응원', '멀리서 바라보는 응원'을 원하는 한희의 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응원은 관여가 아니라 기다리며 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희가 그렇듯,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받은 확인이 그들에게 큰 응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이 한 선택의 부족함을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응원하지 못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선택의 과정에서도, 선택한 후 진행의 과정에서도 자꾸 관여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두려움을 견디고 이겨내어 어렵게 선택한 걸 거칠게 경험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나의 아이가 두려워하지도, 어려워하지도, 거칠게 경험하지도 않길 바란다. 그래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경험칙을 바탕으로 정해진 길과 방법을 제시하며 현재를 관여한다.


나도 이제야 깨닫는 것이지만, 내가 아는 방식을 쓰지 말고 제대로 된 응원을 위해서 어떤 응원이 필요한지 물어보자.

좀 쑥스럽긴 해도 그래야 더 좋은 응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